'돈'과의 종전을 선언하다
삼십 년간 치른 전쟁은 패색이 짙다. 패배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죽기 살기로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열 살까지는 놀이와의 전쟁, 밤낮없는 전쟁에도 지치지 않던, 모두가 승자였던 전쟁이었다. 스무 살까지는 공부와의 전쟁, 화생방전을 능가하는 매운 평가 앞에서 눈물 콧물을 쏟으며 겨우 살아남았다. 어리바리한 사회초년병 때는 적군인지 아군인지 구분도 못 하고, 보이는 대로 총을 겨눴었다. 제대로 쏠 줄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 이후로 속된 말로 쩐과의 전쟁 중이다. 휴전도 없고, 후퇴도 없는 살벌한 전쟁이다. 허술한 작전 탓이었는지, 애당초 승산 없는 전쟁이었는지 도대체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전진해도 거리를 좁힐 수 없는 적, 전략이란 걸 이리저리 바꿔봐도 적은 언제나 비웃기라도 하듯 새로운 포탄을 투하한다. 백기라도 들고 싶다. 주변을 둘러보니 맥없이 전사한 전우들과 쩐의 포로가 된 전우들이 보인다. 대개는 나처럼 보잘것없는 총 하나 들고 어깨가 빠지도록 쏘아대지만, 적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 채 수북이 쌓여가는 탄피만 내려다보고 있다.
쩐과의 전쟁을 치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쩐의 유혹은 쉽게 뿌리치기 어려웠다. 가질수록 더 갖고 싶게 만들었고, 좀처럼 만족이란 걸 모르는 그런 상대였다. 자기만 바라보라고 시도 때도 없이 앙탈을 부리는 질투심 많은 연인처럼 집착하게 했다. 너 없이는 못 살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너 때문에 못 살겠다고 서로에게 총을 겨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전쟁을 끝내야 할 때가 된 듯하다.
전쟁을 치르면서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발밑에 쌓여있는 탄피들은 승산 없는 전쟁을 치르느라 잃어버렸던 시간이었다.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 나를 돌아보지 못한 시간, 감사를 몰랐던 시간이었다. 여태껏 실체도 없는 적과 싸우고 있었던 거다. 온전한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했던 혼자 하는 전쟁이었다. 쩐 없이 살아가기 힘들겠지만, 그보다 쩐으로 살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음먹기 따라 적군도 아군도 될 수 있는 바로 그 '돈'을 이제부터 '쩐우'라고 불러볼까 한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평화롭게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어볼 생각이다.
오늘부로 쩐과의 종전을 선언한다. 총 대신 펜을 든 소리 없는 전쟁터, 총알 대신 위로와 웃음이 터지는 그곳에 발을 내디뎌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