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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쓸 때, 나는

시답지 않은 시

by 펜 끝

'시'를 쓸 때는 긴 글을 쓸 때와 다르다. 감정이 격정적이거나 말랑거리거나, 아무튼 터지기 직전의 상태임이 느껴진다.


참을 수 없이 끓어오르는 빨간 감정은 욕 한마디 짧게 내뱉고 털어내 듯이 '시'도 내겐 그렇다.

누군가를 향한 말랑하다 못해 흐물거릴 만큼 달아오른 감정도 장황하게 나열하기가 힘들다. 마음이 바빠서인가. 찰나의 감정이 물방울처럼 톡 터져 사라져 버릴까 봐 얼른 그 방울에 어른거리는 알 듯 모를 듯한 그 빛깔을 글로 써본다.


'시'는 나의 경우 퇴고가 무척이나 필요한 일이다. 날 것 그대로인 경우가 많아서 말도 안 되게 과장된 몸짓, 글짓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퇴고는 늘 그럴 듯 나를 주저하게 만든다.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자기 검열 아니면,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기 때문일지 모른다. 모른 척하고 종종 퇴고를 건너뛰기도 한다. 오늘처럼.


'시'는 그렇게 제 역할을 다한 건지 모른다. 한 줄이라도 쓰고 나면 멎었던 숨이 다시 쉬어진다. 막혔던 혈관에 피가 돌 듯 그렇게 다시 생기를 되찾고 하루를 살아낸다.

세련되지도, 명확하지도 않은 글이지만,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시간을 견디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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