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死
제기랄. 또 그 꿈이다.
땅 아래 빗물이 가득 차고, 숨을 쉴 수가 없다. 겨우 숨 쉴 구멍을 찾아 땅 위로 머리를 내민다. 헉헉. 벅찬 숨소리가 나의 세상을 채운다. 비는 곧 그친다. 비가 떠나간 자리에는 강한 폭염이 드리운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숨 막힘. 강한 더위에 마지막 숨을 헐떡거리던 난 구멍을 찾아 두리번거리지만 그뿐이다. 아스팔트로 뒤덮인 이 땅에서는 다시 들어갈 구멍을 찾을 수 없다. 난 그렇게 이 아스팔트 위에 갇힌다. 폭염 아래 조금씩 몸이 말라간다. 말라비틀어진 나의 시체는 이제 곧 조각조각 뜯어져 일부는 개미에게, 일부는 어떤 인간의 신발창에, 또 다른 일부는 쓰레기 받이 속으로 들어간다. 서걱서걱. 마른 내 시체가 뜯어질 때의 아픔이 오롯이 전해진다.
제기랄. 얼마 전부터 계속된 악몽이다. J가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눈을 뜨자 기차 안 창밖 풍경이 펼쳐진다. 푸르른 산과 나무. 서울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이다. J의 악몽이 시작된 건 세 달 전이었다. 무더운 폭염 아래, 말라비틀어진 지렁이를 본 이후부터다. 숨을 쉬기 위해 겨우 땅 위로 올라온 도시의 지렁이는 아스팔트 아래 숨구멍을 찾지 못하고, 결국 장마 뒤 이어지는 폭염 아래 말라 비틀어 죽는다. J가 가장 경악한 건 숨이 막혀 살기 위해 땅 위로 나온 지렁이가, 결국 폭염 아래 더한 괴로움 속에서 숨이 막혀 죽는다는 것이다. 고진감래는 환상이다. 개죽음보다 더한 게 있다면 바로 이 지렁이死 다. 그리고 그 죽음을 본 순간 J는 알았다. '나는 지렁이死를 당할 것이다.'
덜그럭. 연식이 꽤 된 청주행 기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길을 가고 있다. 기차의 움직임 탓에 발아래 놓아둔 가방은 입을 벌리고 있다. 보기 싫은 책 무더기. 9급 공무원 마스터, 9급 공무원 한방… J는 도로 가방을 닫는다. 청주에서 나고 자란 20년의 시간 동안 J는 숨이 턱 막혔다. J의 숨구멍을 막은 빗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열등감, TV에 보이는 서울의 화려함, 밖에서 J에게 스며든 뭐 그런 것들. 숨을 쉴 수 없던 J는 땅 밖으로 나와 서울로 향했다. 공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랐다. 그냥 서울의 한 학원에 가자 데스크에 앉은 여자가 이 책들을 J에게 권했다. 요즘 서울에서 가장 많이들 보는 시험이라나. 그렇게 J는 폭염이 오는 지도 모른 채, 아스팔트 위에 갇힌 지렁이처럼 4평 남짓 고시원에 갇혀 조금씩 말라비틀어져갔다. '내가 죽는다면 작은 침대는 분리수거장으로, 저 옷가지는 화장터로 향하겠지.' J를 이루던 시체들은 그렇게 이곳저곳으로 흩어질 참이었다.
끼이익. 요란한 안내음과 함께 기차가 멈춰 선다. 코 안으로 흙 내음이 들어온다. 안내음을 듣지 않아도, J는 자신이 청주에, 무사히 땅 밑으로 들어왔음을 알았다. 폭염 아래 고시원에 갇혀 마지막 숨을 헐떡일 때였다. J의 눈에 들어온 건 그의 두 발이었다. J가 지렁이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두 발이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두 발로 들어온 것처럼, J는 다시 나갈 수 있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터벅터벅. 기차에서 내린 J는 두 발로, 아스팔트가 덮이지 않은 땅을 걷는다. 가슴을 펴고 조금씩 숨을 들이마신다. 비로소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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