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 아니다
“발견된 시체가 하준희인가 뭔가 하는 그 애라고 생각하는 거제?”
주연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혹시나 하고.”
해저터널에서 감쪽같이 사라졌으니까.
“그런데 너도 그렇게 생각해서 나한테 DM 보낸 거 아니었어?”
“어…. 뭐, 맞다. 혹시나 해서…. 니가 그때 엄청 충격 받아서 도망칬잖아, 니가 그 아한테 죽어버리라고 했는데 가가 진짜로 없어져서….”
민정이 그날을 곱씹듯 말했다.
“응.”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주연이 준희에게 죽어버리라고 소리친 건 맞지만, 그 아이가 그렇게 사라져서 그 충격에 고향을 떠나지는 않았다. 주연이 고함칠 때 양민정이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다. 양민정은 쌍둥이 남동생을 데리고 바닷가 산책을 나왔었고, 주연은 준희와 해저터널 미수동 입구에서 다투고 있었다.
“그때 만다꼬 싸았는데? 인평중 다닌다고 거짓말한 것 땜시?”
“….”
아니다. 그것 때문에 다툰 게 아니었다.
“인평중학교에 다니는 아는 애들한테 다 물어봤는데 ‘하준희’라는 아아는 없단다.”
양민정이 그렇게 일러주어서 주연은 좀처럼 말을 섞지 않는 최은영에게도 확인차 물어보았었다. “하준희 찾아서 복수라도 했나?” 뜨거운 오뎅 국물로 샤워를 했으니 호되게 되갚아주지 않았을까, 주연은 그렇게 짐작했었다. 그때 준희도 아마 그래서 잠수를 탔던 게 아닐까…. “그년 어디 다니노? 어느 학교에 다니는데?” 최은영은 성난 표정으로 되물었다.
최은영의 반응에 머릿속이 복잡해진 주연은 입을 다물고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나섰다. 전화카드를 넣고 준희의 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45-로 시작하는 여섯 자리 숫자였다. 따르릉따르릉 신호음이 들리고 준희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준희 친군데요.”
“주연이?”
“아…, 네. 맞아요.”
아주머니는 주연의 목소리를 기억하나 보았다.
“잠깐만 기다리라.” 하곤 수화기 너머에서 “주니야! 주여니 전화 왔다!” 하며 딸아이를 큰 소리로 부르는 음성이 들렸다.
“어. 주여나.”
드디어 통화가 되었다. 준희의 목소리는 태연했다. 몇 주나 잠수를 탄 사람치곤 정말이지 너무나도 멀쩡했다.
“니 삐삐는?”
왜 내 연락 다 씹는데? 삐친 목소리가 비죽 튀어나왔다.
“삐삐 뿌사짔다.”
“어? 와?”
“친구가 실수로 뿌샀다.”
“그래서 연락이 안 된 거가?”
“미안.”
“책방에는 와 안 오는데?”
“내 요즘에 학원 다닌다 아이가. 엄마가 그만 놀고 연합고사 준비하라고 해서.”
그렇다면 그렇다고 미리 언질이라도 줄 것이지…. 참말로 섭섭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주연은 물어봐야 할 것을 물어보았다.
“근데 니 진짜 인평중학교 다니는 거 맞나?”
수화기 너머로 불쾌한 정적이 흘렀다. 주연은 그 정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설마…?
“니 내한테 거짓말했나?”
확인해야 할 것을 확인했다.
“…인평중 다닌다. 거짓말 아니다.”
“그라몬 내한테 이름 가짜로 속인나? 니 진짜 이름 뭔데? 니캉 연락이 안 돼서 내가 알아봤는데 인평중 3학년에 ‘하준희’라는 이름이 없단다 아이가.”
당당하게 묻는 주연의 귀로 준희의 한숨이 흘러들었다.
“니가 우리 엄마한테 내 바까 달라고 내 이름 얘기했을 때 울 엄마가 내 이름 못 알아들으시드나?”
그건 아니었다. 몇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준희 있어요?”, “하준희 있어요?”라고 물었고 준희의 어머니는 딸의 이름을 바로 알아들으셨다.
“….”
말문이 막혀 대답을 못하는 주연에게 준희가 선뜻 제안한다.
“내일 하교 시간에 맞차서 교문으로 온나. 학원 버스 타기 전에 얼굴이나 잠깐 보자.”
그래. 그러면 되겠다. 인평중학교 교복을 입고 인평중 하교 시간에 맞춰서 인평중 교문을 통과해 학원 차를 탄다면, 그 모습을 주연이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다면, 모든 의혹은 풀릴 터였다.
“그래. 그라자. 5시에 마치제?”
“어.”
“알았다.”
다음 날 3시 40분경 주연이 만화방을 나섰다. 오전에 집에서 나올 때 챙겨온 얇은 잠바를 걸치고, 한겨울 감기에 걸리면 착용하는 하늘색 면 마스크로 하관을 다 덮었다. 야구 모자로 남은 부분에 그림자를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리문 안쪽에 ‘외출 중’이라고 적힌 하얀색 아크릴 표지판을 걸어놓고 문을 야무지게 잠갔다. 사장님껜 급한 일이 있어 두 시간만 나갔다가 돌아오겠다고 미리 허락받아 놓았다.
등하교 시간을 제외하면 미수동에서 인평동으로 직행하는 대중교통은 없다. 시내버스를 타고 인평동으로 가려면 충무교를 지나 육지로 간 뒤, 그곳에서 40번 대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때가 되면 독립하려고 돈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던 주연은 한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육지까지는 걸어서 가기로 했다.
노란색 조명이 안개처럼 자옥한 해저터널을 걸었다. 어정쩡한 오후의 터널은 무척이나 적요하다. 보행자가 없는 시간대는 배달하는 오토바이나 자전거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비록 보도는 아니지만 그럴 때 사용하라고 있는 것만 같은 50cm 높이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터널 양쪽으로 설치되어 있다. 직육면체가 커다란 구렁이처럼 길게 입구부터 반대편 출구까지 늘어진 형태로.
본래 용도는 모른다. 허리까지 오는 높이를 올라가는 계단이 없는 것을 미루어 보아 사람이 사용하라고 있는 목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통영 시민이라면 나이를 막론하고 올라가는 행위를 주저하지 않았다. 올라가지 못하게 지도하는 육경도 없었고, 올라가지 말라고 적힌 경고문도 없었다.
한 사람이 걷기에 부족하지 않지만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가기에는 좁았다. 주연은 설치물로 올라가 습한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은 터널을 걸었다. 휑한 벽면을 타고 울리는 1인분의 인기척은 주연이 자아내는 것이었다. 혼자라서 마음이 놓이지만, 또 혼자이기 때문에 긴장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터널의 내리막길을 한참 걷다 보면 평평한 바닥이 나온다. 거기엔 철문이 하나 있었는데 안쪽에는 강한 노란색 조명이 24시간 켜져 있었다. 한 뼘 정도 되는 문틈으로 안쪽이 보이긴 해도 잠금장치가 걸려 있어서 성인은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따금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주 작은 꼬맹이들이 숨바꼭질하다가 숨는 장소라는 이야기를 양민정이 해주었다. 민정의 쌍둥이 남동생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나를 골탕 먹이려고 종종 들어가 숨었다고 한다.
주연은 노란 방이 있는 철문을 지나 앞으로 쭉쭉 걸어갔다. 드디어 당동으로 이어지는 출구가 드러났다. 바다가 펼쳐진 정류소에서 인평동행 시내버스를 탔다. 당동에서 인평중학교 앞까지는 금방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주연은 교문에서 약 10m 떨어진 커다란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하나둘 운동장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주연은 손목을 돌려 현재 시각을 확인했다. 5시 4분. 종례가 꽤 일찍 끝난 반인가 보았다. 5시 15분.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주연은 눈가에 힘을 주고 호피 무늬 안경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20분 정도가 되자 별안간 교문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저기, 호피 무늬 뿔테! 하준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