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필체 검사는 화요일로 이어졌다. 전주희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짓씹으며 반드시 색출하겠다고 엄포했다. 반으로 자른 교실의 앞쪽에서 그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한 전주희는 약이 오를 대로 올라와 있었다. 이년도 아니고 저년도 아니고, 이놈도 아니고 저놈도 아니고.
“니 것도 좀 보자.”
방금 막 등교한 이하나가 책상 위에 무겁지 않은 책가방을 던지다시피 내려놓았을 때였다.
“뭐?”
“니 공책 좀 줘봐라.”
“….”
손바닥을 내민 전주희의 당당한 요구에 이하나는 어이가 없다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전주희는 짝다리를 짚으며 가늘게 다듬은 눈썹을 천천히 들어 올렸고, 이하나는 턱을 치들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두 사람 사이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는 순간이었다.
편지의 필체는 이하나의 것이었다.
“씨이발!”
“내가 안 적읏다.”
“이 미친년이…! 니 디질래?”
“내가 안 해따니까아!”
전반적으로 오른쪽으로 기운 필적은 자음과 모음이 각지기보다는 둥글었고, 과도한 띄어쓰기 없이 글자는 촘촘하게 이어졌다. 이응이 다른 모음보다는 비교적 큰 편이며, 치읓과 히읗의 꼭지가 가로획과 직각이었다. 다르게 본다면 다를 게 볼 수도 있지만, 같게 본다면 한없이 같은 필체일 수도 있었다.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아이들은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서로 눈치만 보았다. 해준은 그러거나 말거나 차분하게 1교시 수업을 준비했다.
“차렷. 경례.”
폭풍의 전야처럼 조용하고 고요하게 오전 수업이 지나갔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태풍이 휘몰아칠까, 숨죽인 채 긴장하던 아이들은 도시락을 꺼내면서도 신난 표정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몸을 움츠리고 말을 삼키며 상황을 주시했다.
“내가 안 캤다 안카나.”
“그짓말한다.”
“내가 만다꼬?”
이하나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투로 도시락통을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평소였다면 전주희를 포함한 여섯 명의 급우들과 함께 도시락을 깠을 텐데 교실 뒷문으로 걸어갔다. 그때 “어데 가노?” 왕민석과 “있어 봐라.” 오경준이 가세했다. 이하나가 눈을 부라리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해준은 거기까지만 감상하고 앞문으로 빠져나갔다.
그 후로 하나는 반에서 나대지 않았다. 약한 아이를 괴롭히지도 않았고, 눕다시피 앉지도 않았으며, 시끄럽게 목청을 돋우지도 않았다. 평화로운 학급 분위기를 위해 해준이 손 봐야 하는 미꾸라지는 더러 남았지만 이제 막 1학기가 시작되었다.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천천히 기회를 봐서 세심하게 지느러미를 뜯어 버리면 될 터였다.
해준이 도서관에서 빌린 심리학책에 의하면 그러했다. 어떤 행동에 동조하는 주변인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행동은 과격해진다고. 혼자였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단체가 되면 죄책감 없이 감행할 수 있다고. 그러니 똘똘 뭉쳐 하나의 덩어리가 된 녀석들을 서로 찢어놓으면 되리라.
중간고사를 치른 해준은 세진입시학원에 등록했다. 이하나를 포함한 4인방이 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모두 그 학원에 다녔기 때문이었다.
“니는 특별반이다.”
학원 사무실 직원이 봉투에 든 학원비를 세며 말했다. 해준은 까맣고 말간 눈을 끔뻑이며 직원을 가만히 응시했다.
“왜요?”
“니 전교 4등, 반 1등이다 아이가. 우리 학원은 반 3등까지는 전부 특별반이다.”
가지고 오라고 해서 가져간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를 가리키며 직원이 부언했다. 하지만 해준은 일반반에 가야 했다.
“제 친구들이 다 일반반에 있는데요?”
“그래서? 친구들이랑 같은 반에서 공부할끼라꼬? 안 된다, 마. 니는 특별반이다 안 카나.”
“그냥 일반반으로 가면 안 돼요?”
“어, 안 된다. 학원 원칙이다. 일반반이랑 특별반이랑 진도가 천지 차이다.”
두어 번 더 설득하다가 해준은 관두었다. 특별반으로 등록한 해준은 쉬는 시간만 되면 일반반에 도장을 찍듯 찾아갔다. 거기엔 M자 이마가 있었다.
“영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