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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필피 Oct 07. 2024

김해주니(2)

칭찬 편지

노기가 서린 음색이었다. 수업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아이들의 이목이 선생에게 꽂혔다. 장성웅은 공책 모서리로 이하나의 정수리를 매섭게 내리쳤다. 콱, 하는 소리에서 꽤 아픔이 느껴졌다. 선생은 이하나를 포함해 이하나의 주변에 삐딱하게 앉은 학생들의 노트를 마구잡이로 파헤쳤다.


“이눔의 새끼들이 첨부터 지대로 안 적고 뒤에만 딱 적읏네! 이긋들이 어데서 요행을 부리노?”


장성웅은 페이지를 앞으로 또 앞으로 계속 넘겼다. “이기…!” 그러다 안경알 넘어 작은 눈이 삽시에 번쩍 뜨였다.


“오늘만 그란 게 아니네! 이 쉐키들이 내내…!”


장성웅의 얼굴이 점점 삶은 가재처럼 붉어졌다. 관자놀이가 도드라지고 까뒤집힌 눈이 어둠 속 달빛처럼 차갑게 희번덕였다. 선생은 공책을 쭈악쭈악 처참하게 찢기 시작하고, 화들짝 놀란 학생들은 턱을 떨어뜨린 채 굳어버렸다. 장성웅이 학생 하나를 골라 목덜미를 과격하게 거머쥐었다. 칼라를 와락 잡아당기자, 학생은 모가지가 졸리는 짐승처럼 발버둥 치다 결국 균형을 잃고 교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곁눈질로 뒤편을 흘끔거리던 해준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희생양의 선택은 무작위가 아니었다. 바로 앞에 이하나가 앉았지만 선생은 구태여 팔을 뻗어 이하나가 아닌 그 애의 짝꿍인 남학생을 택했다. 장성웅은 여학생이든 남학생이든 체벌에 있어서는 예외가 없는 모름지기 공평한 선생이었다. 평소에도 치마 교복을 입은 여학생을 복도에 버젓이 엎드려뻗쳐를 시키는 그런 류의 인간이니, 지금 이 상황도 남학생이라서 대표로 때리는 거라고 섣불리 결론지으면 안 되었다.


“이 새끼야, 느그 어무이가 밤낮으로 술집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몬…! 이 쉐키야 니가 정신을 똑띠 채리고…!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바로 저거. 저 이유.


이하나의 짝꿍은 현정무 모자가 지내는 기숙사에 새로 들어온 또 다른 미혼모의 자식이었다. 체구가 좋은 데다가 입이 거칠고 눈빛이 사나워서 또래 아이들을 움츠러들게 하지만, 저 아이의 배경을 아는 선생들은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게 샌드백으로 사용해 버리는 불쌍한 희생양.


쉬는 시간이 다 지나가고 3교시 수업 종이 울리고서야 체벌이 멈추었다. 4교시 수업을 위해 앞문을 열고 입장한 젊은 교사가 눈을 땡그랗게 뜨고서, 나무 바닥에 널브러진 희생양과 씩씩거리며 교실을 빠져나가는 장성웅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영부영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희생양은 허기를 채우는 대신 주변에 앉은 남자애들을 차례차례 쥐어패기 시작했다. 요행은 다함께 부렸는데 본인만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얻어터진 것에 대한 분풀인가 보았다. 희생양은 콧구멍에서 열기를 뿜으며 피가 묻은 주먹을 털었다. 투두둑 교실 바닥에 물기가 떨어졌다. 시발, 시바알, 욕을 해대며 이하나를 포함한 여자아이들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만다꼬 야리노?”


이하나가 어이가 없다며 시비조로 말했다. 희생양은 길게 심호흡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지만, 그날은 조용히 넘어갔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마지막 교시, HR 시간이었다. 해준의 반에는 칭찬 편지함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HR 시간이 되면 반장이 편지함을 열어 누군가를 칭찬하는 익명의 편지를 읽었다. 3학년 1학기 반장은 2학년 2학기 전교 2등을 한 김해준이었다.


“오경준을 칭찬합니다.”


지난주 장성웅에게 오달지게 처맞은 피해자이자 자기를 따르는 친구들을 개 패듯 팼던 가해자의 이름이 해준의 입에서 무심하게 흘러나왔다. 해준이 편지 너머로 반 전체를 눈에 담았다. 모두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오경준을?’이라고 이구동성으로 기함하는 양.


“To 경준. 지치지 않고 떠들어대는 니 밝고 활기찬 그 성격 덕분에 내는 가끔 졸다가도 샘 고함 소리에 잠에서 번쩍번쩍 깬다 안 카나. 고맙데이. 니 덕분에 내는 무슨 지랄을 하든 다 묻히삔다 아이가. 참말 고맙데이.”


이게 칭찬인가? 하는 얼굴들이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쳐다본다. 해준은 편지를 도로 접어 교탁에 올렸다. 마침 오경준은 책상에 엎드려 쿨쿨 자고 있었다. 당사자가 칭찬 내용을 듣지 못해 이날은 또 잠잠하게 지나갔다.

다음 HR 시간이었다. 해준이 편지함을 열었다.


“왕민석을 칭찬합니다.”

“전주희를 칭찬합니다.”


지난주 오경준을 칭찬하던 편지와 비슷하게 돌려 까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다 읽은 해준이 고개를 들고 교실을 한눈에 담았다. 반 아이들의 반응은 다채로웠다.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며 짝지와 속닥거리는 아이들이 있었고, 전주와 금주 칭찬 세례를 받은 애들이 몰려 앉은 1분단과 2분단 뒤편을 핼끔핼끔 곁눈질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누가 적었노?”


전주희가 의자를 거칠게 밀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깻잎 머리를 한 전주희를 만만하게 보는 동급생은 없었다. 전주희는 성큼성큼 교탁으로 다가왔다. 해준을 거칠게 밀치고 편지를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낳자마자 도망친 주희 엄마 덕분에 매를 때려도 엄마가 있단 사실이 새삼 고맙다고? 씨발. 미친나? 진짜! 누가 적었노! 어!”


이마에 찰싹 붙어있던 깻잎이 흐트러졌다. 전주희는 고함을 꽥꽥 지르며 1분단 첫째 줄부터 필체를 검사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왕민석이 가세하고, 지난주 선행의 주인공이었던 오경준도 사태 파악을 완료한 뒤 수색에 합류했다.


“뭐가 이리 시끄럽노?”


월요일 7교시인 HR이 끝나면 담임 선생의 종례가 있었다. 앞문을 활짝 열어젖힌 담임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단박에 정리했다. 해준이 담임에게 묵례하고 교탁에서 내려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전주희, 왕민석, 오경준도 손을 털고 제 자리에 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앉았다.


필체 검사는 화요일에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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