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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바스 컬처뉴스 Aug 08. 2017

몸 보다 마음이 힘든 직업,
콜센터 상담원의 하루

Life Stories - 펜바스 컬처뉴스

(이 글은 펜바스 컬처뉴스 '데일리 라이프' 취재를 통해 작성된 실제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을 말하는 알파벳은 두 글자다. CS, 혹은 ‘Customer Service’. 콜센터로 출근을 한다. 집은 서울이지만 회사는 부천이라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그래도 40분 정도가 걸리니 그럭저럭 다닐만하다. 두 번 환승하며 지하철역이라도 걸어야지 안 그러면 우리처럼 앉아서만 화장실도 못 가고 꼼짝 않고 일하는 사람들은 운동부족으로 죽을 것이 분명하니까.


어릴 때부터 힙합을 좋아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힙합을 듣지 않는다. 왜? 사람의 말이 너무 많이 흘러나와서다. 등교할 때 항상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등교했었다. 하지만 이 회사를 다니고 한 달쯤 지나서였을까? 이어폰을 끼질 못했다. 사람의 말이 너무 많이 흘러나와서.. 그러다가 다시 이어폰을 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말이 너무 많이 들려서.. 대신 노래가 바뀌었다. 사람의 말이 나오지 않는 클래식으로. 우리는 모두 ‘사람의 말’이 무서워진 사람들이다. 물론 내 삶을 돌아보며 글을 쓰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많은 적응이 끝났다.


우리 콜센터 사람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급한 성격과 다혈질적인 국민성 때문이리라. 그 이야기를 조금 풀어볼까 한다. CS 콜센터는 여러 가지의 형태가 있겠지만, 우리 같은 회사는 한 건물 안에 전화상담원의 공간이 넓게 있고 1 데스크에 1인이 빽빽이 앉아 교육받은 대로 고객을 응대한다. 고정 거래처(기업)이 우리 회사에 사업내용, 고객 응대 매뉴얼 등을 보내면 우리는 빠른 시간 내에 전문강사를 통해 그 내용을 숙지하고 매뉴얼을 항상 옆에 팝업 시켜둔 상태로 고객의 전화를 받는다. 그렇게 전화를 받고, 안내를 하고, 시간이 되면 퇴근을 한다. 얼마나 간단한 직업인가?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중국 사람들을 보며 대륙이 어쩌고 하며  국민성이 웃기다는 식으로 조롱을 하곤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민성도 정말 만만치 않다. 그래도 중국 사람들보다는 밖에서 얌전하고 예의가(가식이) 좀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째서 전화상담원의 목소리만 들으면 그토록 전투력이 상승하고 악랄해지는가? 바깥에서는 아무 말 못 하면서 왜 인터넷에서 댓글 달 때면 지옥의 악마가 되어가는가? 나는 그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이라고 본다.


콜센터의 직원들은 모두 마음이 무너져내릴 것 같은 욕설을 들어본 적이 있다. 아니 많다. 그래서 감정노동의 끝판이 바로 이 콜센터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글에 차마 담을 수 없는 욕설, 성희롱, 인격모독 등의 행위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 참으로 극한 감정노동 직업이다. 물론 이토록 험한 꼴을 몇 번 당하다 보면 쉽게 해탈의 길로 들어서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안전한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목소리가 나온다. 어느 정도 적응하면 험한 마음으로 전화를 건 손님도 내 안내를 듣는 순간 약간 마음이 사르르 녹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요령이다.


직업은 보람을 느껴야 귀천의 귀에 속한다는데 나 같은 경우 고객의 편에 서는 척하며 고객을 설득하고, 원만한 타협점을 찾았을 때가 가장 보람찬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나도 어딘가에선 수도 없이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역지사지의 생각으로 진짜로 고객의 마음에 동감하여 고객의 편에 서서 회사를 대신 상대해본 적도 있었다. 이 또한 보람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목소리가 큰 할머니께서 (아마도 귀가 잘 안 들리셔서 그럴 거라 생각한다, 몇 번이고 되묻는 상황이 있었기에) 금융기업 본사 대출 부서를 사칭한 보이스피싱을 당하던 도중 뭔가 의아하여 우리 쪽으로 전화를 주셨던 적이 있었다. 할머니께서 대출을 받은 적이 없는데, 젊은 여자가 전화를 걸어 회사의 착오로 예약대출이 발생하였고 일부 금액을 상환하시면 할머니에게 돌아가는 피해 없이 처리를 하고, 금일봉을 보상해드리겠다고 하였나 보다. 금액과 계좌번호 등을 정신없이 안내받던 할머니는 바쁘다는 이야기를 하며 30분 뒤에 다시 전화 달라고 하는 기지를 발휘하셨고 나는 그 순간 모든 정보를 꼼꼼히 습득하여 동시에 신고서를 작성, 경찰 수사관에게 자료를 건네드렸었다.


어차피 거기까지가 딱 내 일이었고 어찌 해결되었든지 모르고 그 사건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할머니가 우리 콜센터에 통화를 하신 통화시간을 토대로 나를 찾고 찾아 연락을 주셨고,  할머니의 자녀분이 전화를 바꿔 너무나 감사하다며 꼭 보답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랬던 것이 회사 상급자의 귀에 들어갔고, 나는 그날 저녁 콜센터 상담원으로 살아온 역사상 가장 기쁜 보상을 받았다. 휴가와 보너스, 그리고 사내에서의 칭찬.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행복했던 기억이고 아직까지 내가 상담원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좋은 추억이 되고 있다.


상담원들은 오늘도 힘들다. 마음이 여린 사람들도 많다. 그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친절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 상담원들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고객을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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