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 째 이야기_세수를 하다
꽃들이 지고 낮이 길어지면서
수도꼭지 방향에서도 조금씩 오른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손을 발견한다.
적당한 온도를 찾기 위한 몸부림.
그 과정에서 느끼는
“적당히 해!”와 “적당해야지.” 사이의 온도차.
‘대충, 비슷한 정도’라는 무책임한 언급과
‘모나지 않게, 알맞게’라는 은근한 압력이 벌이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의 공포.
‘적당한’의 정확한 눈금을 아는 사람이 없듯
언제나 왼쪽, 아니면 오른쪽인 사람도 없다.
서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
오늘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