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이야기
1.
겨울이 끝나갈 즈음. 베란다 구석에도 평화가 내렸다. 너의 한가로운 표정에도, 나른한 침묵과 말랑한 살갗에도, 남은 날들의 두려움과 지난날들의 고단함이 문신으로 박혀있다. 어쩌랴 때로는 단념도 희망이 되는 것을.
내일 다시 서로의 어깨를 풀더라도 오늘, 너의 기침소리 들리는 바람 부는 오후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다. 더 이상 자라지 못하더라도, 물집 잡힌 발꿈치에 걸린 세월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아름답다.
2.
오래전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본다.
주말 오후 아이들의 작은 운동화와 슬리퍼의 묵은 때를 벗고
베란다 창문 옆에 옹기종기 모여 늦은 햇살을 받고 있는 모습.
어디론가 미지의 세상으로 달려갈 아이들의 신발은
닥쳐올 난관과 어려움에 서성일 두 발을 언제고 보호하겠다는 듯
믿음직한 뒷모습으로 서있다.
기술이 너무 좋아져 이제 작은 충격에도 갖가지 소재로
발을 보호한다고 글로벌기업들이 광고를 한다.
삶이 변하며 인간을 발전시켜주었던 발은
이제 돌보아야하는 존재가 되었다.
50만 년 전 동물가죽으로 발을 감싸는 발싸개로 처음 착용했던 신발은 점차 딱딱하고 발을 보호하는 기능을 첨가시키다가 현재에 이르렀다. 수렵 채집인과 농경인 표본의 상대적인 골밀도를 측정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농경생활이 시작되며 골밀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신발은 발의 장시간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발의 아치를 평평하게 만들었다. 발의 내부 근육을 거의 쓰지 않거나 잘못 쓰게 되어 내부 근육이 약해진다. 발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되었지만 내부로부터의 건강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땅이 어떤 굴곡을 지니고 있고 딛고 서있는 곳의 질감이 어떠한지
느끼는 것을 원천봉쇄당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보이고 듣는 것만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이해하다보면
냄새와 촉감이 사라진 관계만이 남는다.
우리를 보호하기보다
조용히 단절과 소통이 사라진 세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신발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