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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Oct 24. 2021

쓰다

글쓰기의 트라우마



쓰다: 머릿속의 생각을 종이 혹은 이와 유사한 대상 따위에 글로 나타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 혹은 일상에서 겪은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나 이야기들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들 때가 종종 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기록하는 것은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발견된 만 오천 년 전, 혹은 훨씬 그전부터 인간이 지녀온 자연스러운 욕구였기에, 내가 가진 쓰기에 대한 욕망 또한 인간으로 가진 자연스러운 창작의 욕구와 욕망인 것 같다.


이런 자연스러운 글쓰기 욕망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주저하게 될 때가 많다. 내가 쓰기를 주저하게 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는듯하다.


첫째는 잘 쓰지 못하는 것 같아서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글을 잘 써야 한다고 한 적이 없고, 글쓰기로 먹고사는 직업 작가도 아니기에 잘 쓸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심리상담을 시작하게 됐는데, 심리상담을 하면서 나 스스로도 놀라웠던 것은 ‘잘해야 된다’라는 강박이 생각보다 너무 크고, 스스로에 대해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었다. 


내가 써둔 글을 타인의 글과 비교하며 스스로 내 글쓰기의 형편없음에 대해 질타할 때가 많았다. 내가 쓴 글을 보며 내 생각의 깊이 없음과 유식하지 않음이 탈로 나는 것만 같고, 용두사미적인 형태의 글을 보며 나의 별로인 구석들이 보여 내 글에서 나의 민낯을 보는 듯하는 불편함과 부끄러움이 자주 들곤 했다.


최근 오은영 박사님의 글이나 프로그램을 즐겨 보게 되며, 내 지금의 모습을 나의 어린 시절 성장과정과 퍼즐을 맞춰보다 글쓰기를 주저하게 되는 두 번째 이유를 찾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어쩌다 학교 대표로 시 단위 백일장 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백일장의 주제는 가을 혹은 노을을 주제로 시나 산문을 쓰는 것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글이 써지지가 않았다. 제출 시간이 코앞까지 다가왔는데도 백지상태로 있는 나를 보며 옆에 있던 같은 학교 상급생 언니가 말을 걸어왔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산문은 어려울 거 같고 시를 써봐. 최근에 노을 본거 기억나는 거 없어?" 

"음, 얼마 전에 가족들끼리 이모네 갔다 오는 길에 엄청 멋진 노을을 본 적이 있었었는데.."

"그 노을이 어떻게 생겼었는데?" 

"음, 거대한 붉은 용 같기도 했고, 엄청 커다란 장미 꽃다발 같기도 했던 것 같아."

"그래, 그거네. 하늘이 안겨준 장미 꽃다발 얘기를 시로 써봐"


그 언니의 도움으로 제출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휘리릭 시를 써냈다. 하늘 위 장미꽃 한 다발, 하늘은 누구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려고 하는 걸까? 나도 저런 장미꽃을 선물로 받아봤으면 하는 내용의 시였다. 학교 대표로 나오게 됐는데, 백지상태로 제출하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백일장 대회를 마쳤다. 


그런데 얼마 뒤 교장선생님이 집으로 연락을 주셨다. 내가 쓴 시가 시대회에서 장원을 수상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고 자랑스럽고 기뻐하는 부모님을 보는데 시험에 컷닝을 하고 백점을 받은 것 마냥 마음 한편이 불편해졌다. 이건 명백히 나의 실력이 아닌, 언니의 도움으로 상을 받게 됐기 때문이었다. 장원급제 후 학교에서는 글쓰기를 잘하는 아이로 소문이 나게 됐고, 학교를 대표로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있으면 항상 불려 가 글을 쓰게 되었다. 그 덕에 소년한국일보 기자로도 활동도 해보고 여러 가지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지만, 마음 한구석엔 내 실력이 아니라는 죄책감과 함께 그 실력이 들키면 어떡하지 하는 글쓰기에 대한 불안이 시작되게 되었다.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한 뒤 글쓰기와 관련된 또 다른 트라우마가 생기는 사건이 생기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또 도내 국어 경시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국어 경시대회는 대회 전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포함 몇 권의 지정된 도서를 사전에 읽고, 대회에서 주어진 주제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이었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포함해 책들이 쉽게 이해가 되지도 않아 불안한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를 했다. 


대회날 초등학교 때 겪었던 백일장 대회 트라우마가 생각이 났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제출 시간이 코앞에 닥쳐올 때까지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고 있었다. 경시대회에는 도와줄 상급생 언니도 없어 시계를 보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시간이 촉박해져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수레바퀴 아래서 주인공인 한스에게 그냥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주제는 있었으나 양식에 대한 제한이 없었고, 학교 대표로 나와 백지로 낼 수는 없었기에 남은 시간 최대한 빨리 분량을 쉽게 써 내려갈 수 있는 것이 편지였다. 뭐라도 써서 내긴 했지만, 속으로는 연신 망했다를 외쳤다. 누가 경시대회에 나와 편지를 쓰는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제출한 원고를 돌이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집으로 연락이 왔다. 경시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축하를 하는 전화였다.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편지 형식의 글이 너무 창의적이어서 점수를 크게 받게 되었다고 했다. 기뻐하는 부모님을 보며 나는 또 한 번 당황스러움과 죄책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창의적인 게 아니라 쓸 말이 없어 칸을 채우려고 편지를 쓴 것이라고. 


얼떨결에 수상한 국어 경시대회 덕분에 공부로 소문난 자립형 사립고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 두 번의 글쓰기 대회를 통해 부모님에게 나는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는 글을 잘 쓰는 똑똑한 딸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글쓰기의 즐거움보다는 잘 쓴다는 것을 증명해내야 된다는 강박과 일종의 글쓰기 트라우마가 생겨버린 것 같다. 


이런 나의 글쓰기 트라우마를 오은영 박사님께 털어놓는다면, 오박사님은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셨을까? 


"충분히 잘 썼고, 잘 쓸 수 있어요. 그리고 좀 못쓰면 어때요? 글쓰기로 인해 즐거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하시지 않았을까. 이는 글쓰기가 즐거우면서도 잘 쓰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이 앞서는 나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이제 그 어떤 글쓰기 대회에서도 증명해낼 필요가 없다. 이제는 '쓴다'라는 것의 원초적인 즐거움을 더 찾고, 나의 생각과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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