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정원사가 되고 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인 크리스마스만큼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입춘'. 입춘은 나의 음력생일인 2월 4일 무렵 찾아오는데, 길고 긴 겨울 끝에 찾아오는 입춘은 이름과 다르게 여전히 매서운 바람이 불고, 겨울의 한가운데처럼 느껴진다.
입춘은 이름 때문에 “봄이라며 왜 이렇게 추워?”라는 오해를 종종 받지만, 사실 입춘의 뜻을 살펴보면 봄에 들어서는 입(入) 춘이 아니라, 봄을 세우는 입(立) 춘이다. 왜 우리 조상들은 봄을 세우는 입춘(立春)이라 불렀을까 늘 의문이었는데, 정원을 가꾸면서 그 의문이 점차 해소되었다.
24절기력은 하늘의 해를 중심으로 세다 보니 하늘과 땅의 시차가 존재하는데, 1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을 기점으로 태양의 길이는 조금씩 길어져 동짓날 이후 하늘은 이미 봄을 맞이하기 시작했다면, 동지 이후부터 서서히 지구가 데워지며 천천히 땅에도 봄이 도착하게 되는 땅의 봄날, 그날이 바로 ‘입춘’이다.
농경사회에서 24 절기는 해의 달력이자 농부의 달력이었다. 해의 흐름에 따라 언제 씨를 뿌릴지, 언제 모내기를 하고, 추수를 할지를 입춘부터 대한까지 쭉 따라가며 한 해의 농사를 지었는데, 정원을 가꾸는 일도 농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입춘 시기에 우리 조상들이 건강과 풍년을 빌며 행했던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 풍습을 나도 따라 해 본다. 흔들리는 돌다리가 있으면 몰래 돌다리 아래 돌을 괴어놓는다던지 적선공덕행은 말 그대로 아무도 모르게 좋은 일을 해놓는 것이다. 나도 입춘즈음에 조상님들을 따라 몰래 길에서 쓰레기를 줍는다.
이렇게 봄을 적선공덕행으로 시작하면 내가 쌓은 공덕이 다시 나에게 덕으로 돌아온단다. 꼭 나에게 덕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몰래 작은 선행을 행하며 느끼는 기쁨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입춘날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 써진 입춘첩을 대문밖에 붙이고, 긴 겨울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 기지개를 쭉 한번 켜고 정원으로 나간다. 겨우내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던 정원에 장갑을 끼고 앉아 땅을 고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편에 고이 두었던 정원 도구들도 점검한다. 바람이 차도 흙을 만지니 비로소 봄이 온 것만 같다.
겨울 동안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올해의 정원의 모습을 생각하며 챙겨둔 씨앗이며, 구근이며, 모종들도 하나둘 정원으로 가지고 온다. 그렇게 올해의 정원을, 나의 새로운 봄을 세우기 시작한다. 올 한 해는 계절을 따라 어떤 순간들을 정원에서 맞이하게 될까 부푼 마음으로 입춘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