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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Aug 13. 2024

작은 씨앗, 작은 점들이 모여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첫해에는 그저 빨리 꽃을 보고 풍성한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 여러 종류의 모종을 사다가 정원에 심기를 반복했다. 이제 막 정원일을 시작한 초보 정원사에게는 이미 발아가 끝나 성장한 모종을 심는 것이 훨씬 쉽고 편했다. 이미 싹을 틔운 모종은 정원에 심기만 하면 어느새 금방 꽃을 선사했다.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니 겨우내 목이 빠지게 새로운 봄을 기다리게 되었다. 새로운 봄이 오길 기다리는 동안 정원 역사수업, 설계 수업 등 다양한 정원 수업들을 듣고 정원 관련 여러 서적들을 사다가 공부를 하기도 하고, 선진 정원 문화를 배우러 영국과 일본으로 정원 여행도 다녀오게 되었다.


여행을 다니거나 장을 보러 가거나 할 때 씨앗들이 눈에 보이면 다가올 새봄을 기다리며 하나둘 사모으기 시작했다. 씨앗은 가격부담도 크지않고 보존기간도 길어 하나둘 사 모으다 보니 열패키지가 넘는 씨앗들이 모여있었다.  


날이 풀리기만을 기다렸다가 봄비 소식이 있기 전 정원에 이런저런 씨앗을 뿌렸다. ‘봄비여 마법을 부려다오’ 속으로 기도하며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버선발로 뛰어나가 정원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햇빛이 뜨면 햇빛이 뜨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내가 심은 씨앗에 영양분을 주겠지 하며 들여다 보길 열흘쯤이 지났을까? 여기저기 초록 새싹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모종을 심어두었을 때는 그저 꽃이 피기만을 기다렸는데, 씨앗을 심어 두고 나니 매일 아침 그 작은 새싹들이 흙을 뚫고 올라와 조금씩 자라는 걸 지켜보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씨앗 종류마다 새싹이 피는 때는 다르지만 조금씩 더디게 각자 씨앗의 시간대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아무런 모습도 그려지지 않던 작은 씨앗을 심었다가 초록잎이 자라나는 걸 보니 애플 설립자인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한 유명한 연설문이 생각났다.


무작위적이고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삶의 작은 점들이 뒤돌아보면 어느 순간 연결되는 지점이 온다는 것. 지금 당장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사소한 경험일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때는 그저 작은 점에 불과했던 과거의 여러 선택과 경험이 앞으로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한 ‘점을 연결하는 것(Connecting Dots)’를 나는 조금 바꾸어 ‘인생의 씨앗'이라고 부른다.


수능 점수 맞춰에 갔었던 독어독문학과였지만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 왜 하는지 모르고 했었던 회사 말단시절 수많은 일들, 갑작스러운 병과 입원,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누군가와의 만남, 우연히 떠났던 어디론가의 여행 등등 달거나 혹은 쓴 삶의 순간순간들은 내 삶의 씨앗들이 되어 어느 때엔가 나도 모르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러나 꼭 그 꽃의 모양이 남들이 이야기하는 ‘성공'일 필요는 없다. 그저 내 삶이라는 정원을 풍성하게 해 줄 한송이의 꽃일 뿐.


초보 정원사에게 봄의 하루하루는 매일이 분주하다. 오늘도 뿌려둔 씨앗들이 얼마나 자라고 있나 눈이 뜨자마자 버선발로 정원에 나가본다. 정원에 자라나고 있는 작은 초록점들이 어떻게 연결될어 나의 정원이라는 작은 우주를 이루게 될까 매일이 설레이는 하루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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