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공간에서 행복하고 창의적이며 안식을 얻는가
지난해 10월 내 기억이 맞다면 21번째 집으로 이사했다. 내 나이 29에 7개 도시에 21번이나 홀로 이사를 했다니 꽤 많은 집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그렇게 많은 곳을 부유하며 살았음에도 정착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던지라 내가 살고 있는 공간보다는 나의 동네와 도시에 더 초점을 맞추며 옮겨 다녔었던 것 같다.
성장이라고 표현을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이십 대의 끝에서야 드디어 나의 도시 혹은 동네가 아닌 '나의 공간'에 대해 처음으로 들여다보게 되었고 조금씩 그 모양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는 북유럽이냐 모던이냐 하는 인테리어에 대한 얘기가 아닌 나는 어떤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고 나는 어떤 공간에서 행복하고 자연스러우며 안식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집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공상을 담는 그릇이다
최근 읽게 된 신경과학자이자 디자인 컨설턴트인 콜린 엘러드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간>에서 그가 집을 정의한 문장처럼 집은 우리의 공상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면서 우리의 삶의 양식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올해 여름 각각의 다른 삶의 양식들을 담은 여러 친구들의 집을 방문한 여행을 통해 얻은 힌트들은 '나는 어떤 공간에서 행복하고 창의적이며 안식을 얻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첫 번째 공간은 크리스와 로라 부부 그리고 초등학생 월터가 사는 집이다. 월터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뒷마당에서 학교 운동장이 보이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크리스네는 매일 저녁마다 온 가족이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는 뒤뜰, 그리고 크리스&로라의 거실과 월터의 거실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부부의 거실은 따뜻한 노란색 계열의 벽에 부부가 모아 온 LP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그 곳에서 주거니 받거니 곡을 선곡하는 부부의 모습이 참 따뜻해 보였다.
그리고 요리를 좋아하는 가족 답게 부엌 중앙에 크게 자리 잡은 아일랜드 키친과 부엌에서 연결된 뒤뜰에는 언제든지 바비큐를 할 수 있는 그릴이 준비되어 있었다.
부부의 공간과 아치 하나를 두고 마주한 월터의 공간은 월터의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월터가 직접 그리고 만든 작품들이 전시공간처럼 꾸며져 있는 벽면과 월터의 작품들 아래로 꽉 채워진 장난감 선반을 보니 다 큰 어른인 내가 꼬마인 월터가 부러워질 정도였다.
음악 연주를 좋아하는 월터를 위해 피아노 말곤 아무 가구도 놓여 있지 않은 월터의 거실 바닥에서는 월터의 형제 같은 강아지와 마음껏 뛰어놀고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히어로가 되는 상상을 하며 종횡무진 뛰어다닌다고 했다. 부부는 월터를 위해 만들어준 놀이터에서 예술적 상상력이 풍부하고 마음이 따뜻하게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더 큰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두 번째는 엄청난 수집광이자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 피트와 아만다의 집. 마블 만화책이나 희소한 서적들, LP판, 닌텐도 등 별별 아이템들을 수집하는 피트와 아만다의 집은 도서관에 온 것처럼 집을 찾아온 모든 이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었다. 펑크락과 헤비메탈을 좋아해 청혼을 할 때도 블랙다이아몬드 반지를 주었다고 한 부부의 취향대로 다소 어두 침침한 조명과 벽에 걸린 실험적인 아트 액자 등 곳곳에서 그들의 냄새가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거실에서 나선형 철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공중목욕탕처럼 생긴 이상한 공간과 루프탑이 나오는데 흡연자인 피트와 두 고양이들을 위한 놀이터라고 했다. 다소 기괴하지만 너무 귀여운 이 커플을 위한 세상에 하나뿐인 완벽한 집 같아 보였다.
세 번째는 부부가 함께 핸드페인팅 사인(sign) 회사를 운영 중인 크리스찬과 아일린의 집. 요리광이자 친구들을 초대해 푸드 파티를 즐기는 정 많은 크리스찬과 식물을 좋아하고 패브릭 디자인을 취미로 삼는 아일린의 취향이 적절히 잘 어우러진 곳이었다.
크리스찬과 아일린의 집에서 가장 재밌는 공간은 크리스찬의 작업실과 뒤뜰 그리고 곳곳에 놓인 식물들이었다. Keystone sign & design이라는 회사를 운영 중인 부부는 별도의 사무실 대신 집 2층에 작업실을 마련해 놓고 도안 작업 등을 한다고 했다. 1층은 거실과 부엌, 3층은 베드룸으로 사용하고 2층 전체는 철저히 작업 공간으로 분리시켜 개인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공간에서도 분리를 두어 효율성을 높인다고 했다.
여성스럽고 섬세한 취향을 가진 아일린은 거실, 침실, 화장실 등 거의 모든 공간에 스킨답서스 화분을 걸거나 놓아두었다. 보통 캐릭터가 없는 화장실에도 스킨답서스 화분 두 개가 자리하고 있으니 공간이 살아 있는 느낌을 주어 나도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에 스킨답서스를 걸어 두었다.
그리고 바비큐 광인 크리스찬과 아일린은 뒤뜰을 바베큐장으로 만들어 봄, 여름철이면 매일 저녁 친구들을 초대해 바비큐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방문했던 날도 거대한 바비큐를 열어 주었는데 자연스럽게 옆집에 살고 계신 부부(게이 부부)도 놀러와 늦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공간>에서 인간은 행복한 순간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을 분비한다고 하는데, 이는 공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서 나의 세로토닌 공간은 어디일지, 내 공간을 어떻게 바꾸어야 세로토닌의 분비가 늘어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나보다 삶의 방향과 생각이 뚜렷한 친구들은 이미 본인들의 세로토닌 공간을 잘 찾은 듯 보였다.
열흘 남짓의 여행 동안 대여섯 친구들의 집에서 식사나 파티를 하기도 하고 숙박을 했었다.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정교하게 다듬고 꾸며놓은 친구들 집의 방문은 나의 공간과 그 공간 속에서의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게되어 나도 나만의 '세로토닌 공간'을 찾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세로토닌 공간은 '독서공간'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나 늦게 퇴근하거나 침대에 앉아 책을 읽다 보면 나태해져 금방 잠이 들기 일쑤였는데 4단 책장을 구매해 침대와 책 읽는 공간을 분리시켜 만든 작은 독서공간에 빈백과 독서등을 두어 잠깐이라도 책 읽기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홈바' 기능을 하는 아일랜드 키친을 들였다. 평소 커피나 와인, 맥주 마시는 걸 좋아하고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만 공간 배치상 만드는 과정은 많이 즐기고 집중할 수 없었는데 아일랜드 키친을 들이면서 확실히 준비과정에도 좀 더 공을 들이고 재미를 찾게되었다. 마지막으로는 곳곳에 식물과 좋아하는 액자들을 걸어둔 것이다. 사소하고 적은 비용이지만 액자들을 걸어두니 좀 더 취향이 반영된 공간으로, 식물들로는 생기가 있는 공간으로 살아난 느낌이다.
콜린 엘러드 교수의 말처럼 장소는 우리를 감정에 휩싸이게 하고 우리의 움직임을 지시하고 우리의 의견과 결정을 바꾸며, 때로는 우리를 숭고하고 종교적인 체험으로 이끌어 주기도 한다. 또한 공간은 아이의 행복한 미소를 보고 따라 웃으며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과 유사한 방식으로 우리를 행동하고 느끼게 만들어 준다.
나의 공간을 찾고 만드는 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결혼을 하고, 가족이 늘어나고 하는 새로운 삶의 국면을 맞이하게 될 때마다 그 때에 맞는 나만의 공간들을 또 들여다 보아야 할 것 이다. 나의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어쩜 공간 속에 놓인 내 안을 들여다보라는 것과 같은 얘기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