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정의

by Sentimental Vagabond


#1

진짜와 가짜

진짜라는 말을 진짜 많이 한다. 가짜가 아닌 진짜가 되고 싶다. 수련 중에 선생님이 요가에서의 진짜는 '그 자세에 머물러 깊이 숨을 쉬며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호흡 안에서 깊어지는 것. 진짜가 되고 싶다.


#2

숨통이 트인다

하타 명상 수련이 끝나고 사바아사나에서 끝나지 않고, 사바아사나 후 파드마를 짜고 앉아 5분간 호흡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코로 들어오는 숨이 내 몸 구석구석으로 채워지면서 '숨통이 트인다'라는 말이 어떤 말인지 온몸으로 와 닿았다. 몸의 어느 한구석도 불편함 없이 이완된 채 구석구석 숨이 채워지는 느낌, 그 순간 너무나도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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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만의 '정의(Definition)'

매트 위에서 수련을 하던 어느 날 문뜩 '나는 자유를 원한다'라는 마음이 떠올랐다. 그 '자유'라는 갈망이 내 마음속에 들어온 뒤 짝사랑의 열병을 앓듯 '자유'를 갖고 싶다는 것에 마음이 타들어갔다. 그러다 문득 '자유'를 찾기 위해서 내가 생각하는 '자유의 정의'부터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약 없이 인도로 떠난다는 다른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그 친구 역시 자유의 정의를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친구의 현재의 자유는 '내가 나 다울수 있는 것, 그때 그곳에 온전하게 있는 것'이라고 했다.


20대의 나는 '사랑'을 찾고 싶었다. 진짜 사랑. 10년간 사랑을 찾아 헤맸었다. 진짜가 아니었음에도 진짜라고 스스로를 속일 때도 있었고, 헤매다 길을 잃고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고(이별의 아픔을 못 견디고 탈수가 와서), 찾고 찾고 또 찾아도 못 찾아 자포자기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 지난한 과정들을 겪으며 깨달은 것은 사랑도 결국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시기에 있는지에 따라 그 사랑의 모양과 정의가 계속해서 바뀌었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그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말이다.


친구의 결혼식에서 캐나다분인 어머니께서 이런 축사를 했었다. 남편을 만났을 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큰 사랑을 경험했고 본인에게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앞으로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첫 번째 아들이 태어나고 본인의 확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더 큰 사랑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셋째가 태어나면서 계속해서 자신이 한계 지었던 사랑이 더 커지는 것을 발견했다고. 그러다 자식이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족이 생기면서 멈췄던 자신의 사랑이 더 커지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고. 새로운 사람을 가족으로 맞이하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고.


나는 결혼은 했지만 친구 어머니가 말씀했던 것처럼 나의 '사랑'은 다른 크기와 모양으로, 방향으로 계속해서 뻗어나가고 있다. 사랑이 한 사람 혹은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이었다면, 이제는 나 자신과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더 크게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자유로 돌아와 내가 경험했던, 경험하고 있는 사랑과 마찬가지로 자유의 정의, 크기, 모양이 계속 변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자유가 없다.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생각했지만 분명 나는 자유가 있다. 노마드로 살며 자유롭게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것만이 자유는 아니다. 어쩌면 보편적인 사람들 혹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사랑=결혼=행복한 가정>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허상처럼 <자유=노마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자유의 정의보다는 내가 원하는 자유의 정의를 찾아야 한다.


지금 나에게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에 있다. WANT에 머물렀던 것을 DO로 옮겨가는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자유를 느끼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해서 하다 보면 어느샌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는 자유도 갖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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