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 - 건강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 발리

by Sentimental Vagabond



은현의 Day2


아침이 밝았다. 눈부신 햇살이 문으로 들어왔다. 벌떡 일어나서 샤워를 하기 위해 다시 화장실로 갔지만 불은 여전히 켜지지 않았다. 오전 9시-6시까지만 설마 전기 이용 시간인가 싶었다. 충전을 하려고 코드를 꽂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와이파이를 연결하기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했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말해준 와이파이 이름은 뜨지도 않았다. 짜증이 밀려왔다. 먼저 일어나 어딘가 배회하고 있을 은희에게 어디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연락할 방법이 없어 우선은 슬리퍼를 끌고 숙소 밖으로 나가보았다. 어딘가에는 있겠지. 하지만 그녀를 찾을 수는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꽤 더워서 곧 숙소로 돌아왔고 다시 한번 읊조렸다. ‘게스트 하우스는 다신 안와'. 반갑게도 곧 은희가 돌아왔다.



게스트 하우스 내에 작은 수영장이 있어 물놀이를 하자고 했다. 사실 내 몸에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여기는 외국이니까 하며 당당하게 들어갔다. 첨벙. 첨벙. 수영에 대한 나의 오랜 바람이 있다면 얼굴만 동동 띄우고 수영을 하는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얼굴만 내놓고 수영하려고 하면 계속 가라앉아 영화에서 보던 여유롭게 물안경 없이 수영하는 장면을 연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물안경은 필수인데 은희가 물안경을 갖고 있어 빌렸다. 그 작은 수영장에서 검은 물안경을 끼고 초등학교 5학년과 같은 본새와 하얗고 통통한 몸으로 첨벙 거리며 열심히 놀았다. 다른 건 못해고 얼굴만 내놓고 수영이 가능한 은희에게 부럽다고 했더니 자기는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고, 쨍한 햇빛을 받으며 우리는 여유로운 오전을 보냈다.



마침 주변에 먼저 일어난 외국인들이 있어 전기가 언제 들어오냐고 했더니 지난밤 정전이 됐다고 했다. 곧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오면 해결해줄 거라고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난 그저 발리에는 전기 통금 시간 같은 것이 있는 줄 알았다. 곧 전기가 들어오고 샤워를 하고 와이파이가 되자 이내 이 게스트하우스가 마음에 들었다. 한국 가옥처럼 집이 둘러져 있고 그 안에 작은 수영장과 정자가 있었다. 굉장히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간사하구나 하며 다시 한번 깨달아본다.


샤워를 마치고 은희와 스쿠터도 빌리고 커피도 마시자며 밖으로 나갔다. 사실 둘 다 운전면허는 있지만 운전을 못한다. 하지만 스쿠터쯤이야 작동법만 알면 금방 타겠지 해서, 당당하게 주변 가게로 들어갔다.


‘스쿠터를 빌리고 싶어요, 근데 탈 줄 몰라요. 작동법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의심의 눈초리) 음, 우선 와봐. 이거야'

‘시동을 어떻게 키나요?’

‘이거랑 이거를 동시 눌러'

(한 손으로 다 닿지 않았다. 긴장한 은현. 제발 솓가락아 뻗어라!)

‘부릉!’ 시동이 걸렸다. (휴, 다행이다)

‘앉아, 양손으로 각 핸들을 잡아. 왼쪽 핸들에 달린 건 브레이크야. 오른쪽은 액셀이고. 핸들을 돌려봐'

‘부아아아아앙!!!’ 갑자기 내가 핸들을 돌리자 오토바이가 튀어나갔다.


너무 놀라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곧장 따라온 아주머니가 내리라고 하더니 ‘미안, 넌 탈 줄 몰라서 못 빌려줘'라고 했다. 그렇게 단호하게 거절당한 게 너무 오랜만이었지만 너무 웃긴 나머지 미안하게도 웃는 얼굴로 미안하다고 하고 돌아왔다. 우리는 결국 이번 여행 동안 뚜벅이의 길을 걷기로 한다.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근처 아무 커피집에 들러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걸어보자고 한다. 바람이 휙 불었다. 갑자기 은희가 ‘아!’하더니 눈에 뭔가 들어갔다고 했다. 눈을 한참 비볐으나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아파 인공 눈물이라도 좀 넣자고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은희는 가는 동안 조심스레 할머니처럼 내 팔을 잡았다. 숙소에 가서 인공 눈물을 들이부었는데도 쉽게 이물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은희는 평소에 자기가 겁이 많다고 했는데 난 이 일을 통해서 얼마나 은희가 겁이 많은지 알았다. 눈에 있는 이물질이 계속 사라지지 않자 은희는 엉엉 거리며 자기 실명되면 어떡하냐고 했다. 좀 많이 당황했다. ‘어떻게 먼지 때문에 실명이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말을 했다가는 은희가 화낼까 봐 아니에요 하며 다독였다. 은희가 너무나 심각해서 웃겼다. 하지만 웃을 수 없었다. 면봉을 가져달라고 해서 밖에 있는 아무 여자애한테 면봉 좀 달라고 했다. 면봉을 들고 와 눈꺼풀을 뒤집자 그 안에 먼지보다 작은 검은색 무엇이 있었다. 이거다! 하고 면봉을 넣었는데 순간 눈을 깜빡여 검은색 이물질을 제거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은희가 눈이 괜찮아졌다고 했다. 의아했다. 면봉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15분 동안 눈에서 놀던 먼지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괜찮다고 하니, 은희 눈이 갑자기 더 불편해지기 전에 상황을 수습하고 나가는 게 중요했다.


서둘러 나가서 옷을 좀 사자고 했다. 몸에 자신이 없는 나는 평소 서울에서 입던 휴양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어 조금 부끄러웠다. 발리에 있는 가게들은 생각보다 세련되었다. 흔희 동남아 시장에서 파는 강렬한 색과 강렬한 디자인을 떠올렸지만 오히려 한국에서 파는 옷들과 비슷했다. 오랜만에 여자 놀이해서 즐거웠다. 이렇게 쇼핑을 해보는 게 얼마만인가. 은희와 나는 취향이 얼추 잘 맞아 들어가기도 전에 저 가게 이쁘다며 죽이 잘 맞았다. 그렇게 들어간 옷가게에서 나시티와 펑퍼짐한 하얀 바지를 샀다. 그리고 바로 입고 나갔다. 그 순간 자신감 뿜 뿜이었다. 이제 나도 발리에 어울리는 옷을 입었구나. 발리에서 좋은 점 하나를 찾았다. 아무거나 입어도 상관없다는 거. 내 몸뚱이가 뚱뚱해도 나보다 더 뚱뚱한 언니들이 더 과감하게 입고 다닌다는 거. 난 그에 비하면 작고 통통한 아시아인일 뿐이었다.


우연하게 구글 지도에서 찍힌 요가원을 보았다. 한번 들려서 구경하자고 들어간 요가원이었는데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건 영화에서나 볼법한 공간이었다. 나무로 지어진 요가원에 찬란한 꽃과 푸른 나무들이 우거져있었다. 우리는 너무 신이 났다. 여기가 정말 발리라는 곳이구나. 스케줄을 알아보고 수업은 시작 전에만 등록이 가능하다고 하여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늘 저녁 수업을 기대하며 나왔다.


뭐할까 하다가 바다로 걸었다. 걷다 보니 배고파서 이름 모를 비치 클럽에 들어갔다. 바다 앞이어서 그런지 나름 그래도 레스토랑인데 모두 다 벗고 있었다. 누군가는 레스토랑 내 수영장에 들어가 있거나 어떤 이는 침대에 누워 태닝을 하고 책을 읽으며 여유로운 한때는 보냈다. 우리도 바닥에 앉아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하고 배고프니 음식도 시켜 먹으며 쨍한 한 낮을 보냈다. 가만히 앉아서 사람 구경만 하는데도 재밌었다. 은희는 이곳은 동남아인데 서양인만 많은 게 불만이라고 했다. 이 곳은 인도네시아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더 많아야 할 곳이지만 동남아 사람이라고는 웨이터들 말고는 없었다. 은희가 문득 그렇게 말하니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마치 제주도에 한국인은 없고 중국인만 있는 것과 조금 비슷한 거 같았다. 물론 우리는 인종이 비슷해서 이 정도의 이질감이 들지는 않지만.



해를 많이 쐬니 우리는 급 피곤해졌다. 숙소로 돌아가서 좀 쉬다가 요가 수업을 돌아가기로 했다. 숙소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 다시 옷을 갈아입으니 금세 개운해졌다. 스쿠터만 있었다면 1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우리는 뚜벅이라 10분 넘게 걸어야 했다. 하지만 그 길마저도 그새 익숙해져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총총 걸어가고 있었다. 한국이 아니니까 다 괜찮았다.


멋진 요가원으로 들어갔다. 수업을 등록하고 2층 신비한 요가원으로 올라가는데 계단마저도 아름다웠다. 예쁜 배경으로 사진을 찰칵찰칵 찍었다. 정말 별거 아닌데 이런 거에도 우리는 이렇게 신나 하다니 도시에서 삶이 얼마나 퍽퍽했나 싶다. 2층 요가원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이런 요가원이 한국에도 있다면 나처럼 요가에 관심 없는 사람도 요가를 시작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플로우대로 사람들은 몸을 풀었고 남녀 할 것 없이 자신의 심신에만 오롯이 집중했다.


요가 인스트럭터에 말에 따라 요가를 하는데 운동신경이 꽤 좋은 나로서는 사실 그리 어려운 동작은 없었다. 다만 호흡이 어려웠다. 요가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호흡인데 평소에 잘만 쉬던 호흡이 스스로 의식하고 동작에 맞게 심호흡을 해야 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리고 자꾸만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는 내 정신을 다시 제자리로 데려오는 것 또한 엄청난 도전이었다. 선생님이 집중하라고 하는데 집중하라고 할수록 더 딴생각만 들었다. 유연하다고 자부했는데 이건 유연한 게 전부는 아니었다.


동남아 여행의 꽃은 마사지다.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환상적인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홀딱 벗은 몸으로 침대로 누워 마사지 시간을 즐겼다. 압이 센 마사지를 좋아하는데 담당 마사지사의 압이 아주 좋았다. 다 받고 나서 일어났는데 온몸이 녹는 줄 알았다. 몸의 부기가 다 빠져 다리도 가벼워졌고 레깅스를 입는데도 답답한 느낌이 없었다. 첫날에 받은 마사지는 여행 내내 받은 마사지 중에서 최고의 마사지였다. 다시는 이런 개운함을 찾을 수 없었다.



은희의 Day2


2층 침대에서 굴러 떨어질까 걱정이 되어 3시간도 채 못 자고 새벽 6시쯤 눈이 떠졌다. 다시 잠자리에 들어볼까 하다가 숙소에서 걸어 가까운 바다에 혼자 나가 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바투 볼롱(Batu Bolong) 해변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이미 서핑을 하거나 조깅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어린아이, 젊은 사람들까지 그들이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발리는 마치 건강한 사람들만 올 수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발리에 빨리 오고 싶었는데, 딱 맞는 곳을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변을 한 바퀴 산책하고 숙소 근처 카페에서 오믈렛에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부터 서핑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 해변으로 조깅을 나가는 사람, 말을 타는 사람. 카페에 피워둔 향냄새와 함께 카페 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졌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 일어난 은현과 숙소 내 풀장에서 수영을 좀 하고, 숙소 앞 바이크 렌털 가게에 모터바이크를 빌리러 갔다. 은현이 운전을 하기로 했는데 우리 둘 다 모터바이크를 운전해 본 적이 없어서, 빌리기 전에 바이크 운전을 할 수 있을지 한번 시도를 해봤다. 은현이 시동을 걸고 부앙 소리를 내고 급출발을 하며 비틀거리자 모터바이크 가게 아주머니가 당황하시며 "노노 노 바이크"라고 외치며 바이크 렌털을 거부당했다. 우리는 그 상황이 너무 웃겨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고, 발리 사람들은 초등학생들도 바이크 운전을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왜 못할까 자책하며 우선 걸어 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빌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강한 햇빛에 지쳐 눈에 보이는 가까운 카페에 앉아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어느 방향으로 가볼까 찾아보았다. 짱구 해변으로 이어지는 메인 스트릿 쪽에 가보기로 했다. 카페 계산을 하고 메인 스트릿 쪽으로 발길을 옮긴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눈에 모래알 같은 것이 들어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알을 굴려보고, 물도 끼얹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병원에 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은현에 부축을 받아 우선 숙소로 돌아가서 응급처치를 하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와 누워 눈에 식염수도 넣어보고 여러모로 노력을 해 봤지만 여전히 눈에 뭔가 들어가 있는 것이 나오지 않고 걸려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눈 두 덩이를 까고 은현에게 보여주면 뭐가 있는지 보라고 했더니 까만색 뭔가가 있다고 했다. 숙소에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면봉을 빌려다 줄 수 있냐 했고, 빌려온 면봉으로 요리조리 먼지를 제거해 보다 보니 걸리던 것이 없어진 느낌이었다. 너무 다행이었다. 도착한 첫날부터 병원에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순간 마음이 덜컥했다.


은현과 다시 메인 스트릿으로 걸어 나가 보기로 했다. 짱구 메인 스트릿으로 가보니 아기자기한 샵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옷도 한벌씩 샀다. 남편과 여행을 할 때는 쇼핑을 하는 것이 꽤나 눈치 보였는데, 여자 친구와 여행을 하니 서로 고른 것을 봐주고 함께 쇼핑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좀 걷다 보니 요가원이 눈에 띄어 들어가 보기로 했다. 더 프랙티스(The Practice)라는 요가원이었는데, 꽃들과 나무들로 가득 차 있는 입구를 따라 걸어가니 마음이 설레었다. '드디어 발리에서 첫 요가 수업을 해보는구나' 요가원 내부에는 여자 친구의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서양 남자들이 가득 소파를 메우고 앉아있었다. 리셉션에서 오후 6시 수업을 등록을 하고 살짝 내부를 돌아보니 자연과 어우러진 웅장한 요가원에 다시 한번 더 너무나도 설레었다.


등록을 마치고 요가원을 나와 바다가 보이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바닷가 바로 앞쪽에 반스(Vans) 매장이 있었는데 서핑보드들이 가득 차 있어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반스에서 내가 구경을 하고 있는 동안 은현이 로컬 점원으로 보이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듯하더니, 내일 오전 서핑 수업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은현이 로컬 점원에게 서핑 인스트럭터를 추천해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친구 중 서핑 인스트럭터가 있어 예약을 한 것이었다. 서핑 인스트럭터와 점원 그리고 은현이 실시간 전화로 대화를 하며 가격과 시간을 조율하고 있었다. 내일 새벽 6시 반에 반스 매장 앞에서 보기로 하고 매장을 빠져나왔다.



반스 매장에서 나오자 바투 발롱(Batu Balong) 해변이 바로 보였다. 해변가로 내려가 좀 걷다 보니 멋있어 보이는 비치 클럽이 있어 들어가 음식과 음료를 시키고 햇빛을 쬐며 좀 누워있었다. 음악과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찬 비치 클럽은 여유가 넘쳤다. 그 속에서 우리도 본격 여행 첫날의 자유와 여유를 만끽하며 시간을 보냈다. 평일 낮시간에 이렇게 한적하게 보낸 게 대체 얼마만일까? 일주일의 시간이 부디 천천히 흘러가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오후 4시쯤이 되어 숙소로 돌아와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요가원으로 향했다. 요가 수업이 열리는 스튜디오는 2층이었는데 대나무로 된 웅장한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스튜디오가 나왔다. 엄청 높은 천장에 대나무로 마감이 된 요가 스튜디오는 마치 신전처럼 웅장했고, 한쪽면은 창문 없이 나무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탁 틔어있었다. 요가 수업 시간이 다되어가자 하나 둘 매트를 펴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수업을 듣는 90%는 서양인들이었다.



남미계로 보이는 여성 요가 선생님이 수업을 이끌었다. 차분하게 하타요가를 이어나갔는데, 수업을 하는 동안 "Centered"를 반복적으로 말하며 계속해서 몸과 마음의 중심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상기시켜주었다. 높은 돔 천장으로 울려 퍼지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마음에도 울려 퍼졌다. 요가 수업의 가장 마지막 자세는 늘 사바아사나(송장 자세)로 끝이 나는데, 발리에서의 첫 요가를 마치고 사바아사나로 누워있으니 이제야 정말 발리에 왔구나라는 것이 실감 났다.


요가 수업을 마치고 요가원 들어오는 골목 코너에 있었던 마사지샵에 가서 첫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은현과 발리에 오는 티켓을 끊고 약속을 했었던 것 중에 하나는 '매일매일 마사지를 받을 것'이었는데, 도착해서 첫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마사지를 받고 걸어서 숙소 근처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으며 첫날이 어땠는지 은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주 오랜만에 나의 즐거움을 위해 온전히 하루를 쓴 날이 저물었다. 즐겁고 또 즐거웠다.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즐거웠고, 햇빛을 마음껏 즐긴 것도, 쇼핑을 한 것도, 요가를 하고 마사지를 받고, 맛있는 것을 먹고, 이렇게 까지 나를 즐겁게 해 준 날이 지금까지 살면서 과연 며칠 정도 있었을까? 그리고 고작 발리에 하루밖에 있지 않았지만 은현과 나 우리 둘 다 발리에 오니 '더 건강해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