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 빨리, 발리로 떠나는 길

by Sentimental Vagabond



은현의 Day 1


비행기 시간 오전 9시 45분. 평소에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시간 오전 6시에 벌떡 일어났다. 밤새 마른 속옷을 부랴 부랴 챙기고 대충 운동복을 걸치고, 혹시나 작별 인사를 하면 강아지가 기다릴 까 봐 무시하듯 후다닥 나왔다.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만큼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널찍한 공항에서 드르륵 캐리어를 끌고 나가면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긴다. (무엇을 위한 자신감인지는 모르겠다, 일종을 우쭐함인가?) 설레는 마음으로 은희와 체크인을 하고 비행기에 올라섰다. 비행기를 타는 건 언제나 힘들다. 좁은 자리에 몇 시간 동안 앉아있어야 하는 생각만 해도 다리가 벌써 뻐근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6시간만 타면 되기에 꾹 참아본다.


6시간 후 무사히 쿠알라룸프르 공항에 도착했다. 발리로 가는 비행기로 환승하기 위해 6시간은 꼼짝없이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공항 특유의 건조함 때문에 평소보다 피로감이 쉽게 쌓인다. 하지만 은희와 스타벅스에 앉아 시답잖은 이야기와 갑자기 못생긴 거 같다며 립스틱을 바르고 귀걸이를 걸어보며 별거 아닌 것에 깔깔 거리며 웃는다.


요가 마니아 은희는 갑자기 소파에서 요가 자세를 하고 갑자기 머리 서기 연습을 하겠다며 근처 기둥으로 가 갑자기 엎드리더니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아무리 외국인들이 무심하다지만 난 분명히 끝쪽에 앉은 한 아줌마가 이상한 표정으로 은희를 쳐다보는 것을 봤다.


물구나무서기


이렇게 우리는 하염없이 6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쿠알라룸프르에서 발리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무릎이 닿을 듯 말 듯한 작은 비행기 창가 쪽에 앉아 폐쇄 공포증이 생기는 것 같았지만 이내 곧 쏟아지는 잠에 3시간을 쉽게 보낼 수 있었다.


새벽 1시, 드디어 발리 공항에 도착하고 미리 여행 사이트를 통해 예약해둔 택시 서비스를 이용해 우리의 첫 번째 도착지 짱구 (Canggu)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 어둡고 인적도 드물었지만 공항부터 일반 길거리에서 알 수 없는 아기자기함과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곳곳에 보이는 라탄 소재로 된 가게들과 주변에 어우러진 열대 우림 나무를 보며, 아 여기가 그 유명하다는 발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3시 정도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도착한 숙소는 게스트 하우스라 이미 모두가 잠든 시간이었다. 까치발을 들고 바로 화장실로 향해 불을 켰지만 불이 켜지지 않아 당황했다. 동남아여서 전기 사용 시간이 정해진 것인가 라고 생각하며 핸드폰 후레시 기능을 켜서 간단하게 양치와 세수만 끝내고 바로 침대로 누웠다. 누우면서 이렇게 생각을 했다. ‘아, 젠장 다시는 게스트 하우스에 안 와.’



은희의 Day 1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출근할 때는 떠지지 않던 눈이 알람도 없이 새벽 6시에 자동으로 떠졌다. 씻고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철도 전광판에 마오는 세계 곳곳의 날씨를 보고 있자면 내가 지구에 살고 있었지 라는 생각이 새삼 떠오른다.


직장인에게 여행이란 어딘가로 멀리 떠나는 것만큼 9시까지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여 돌아오는 평소 내 궤도의 하루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하루라는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시간과 장소를 익숙한 방법대로 쓰지 않을 때에 자연스레 나의 생각들도 기존의 궤도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조금씩 틀게 된다.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1월 23일에 티켓을 끊고 약 9개월 만에 진짜로 떠나게 되었다. 이렇게 긴 시간의 여유를 두고 비행기 티켓을 사본건 처음이었는데 떠나기 전 설렘을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기에 앞으로는 좀 더 여유 있게 비행기 티켓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어쩌면 떠나기 전, 떠나서, 돌아온 뒤에도 계속 이어질 수 있기에.


비행기 보딩을 앞두곤 부모님과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보통 남편과 함께 여행을 하기에 부모님께만 전화를 드리는데, 이번엔 남편과 하는 여행이 아니니 남편에게도 연락을 했다. 평소 겁이 아주 많은 나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만약 이 비행기가 추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자주 하는데 그래서 꼭 비행기에 오르기 전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꼭 한 번씩 안부를 전한다.


약 30만 원 정도에 구입한 에어아시아 발리행 티켓은 쿠알라룸프르에서 가는 길엔 6시간, 오는 길엔 꼬박 하루의 레이오버를 해야 하는 티켓이다. 혼자였다면 이렇게 긴 레이오버가 많이 지루하고 힘들겠지만 나는 은현과 함께라 든든하다. 은현과 함께 있으면 우리는 늘 깔깔 웃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에서 쿠알라룸프르로 향하는 시간 동안 미뤄왔던 지난번 여행기와 가게 관련(스티키 리키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몇 가지 콘텐츠의 브런치 글들도 정리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 인도 리시케시에서 25일간 요가를 한 기록의 독립출판물과 김영하 작가의 신간인 ‘여행의 이유’도 읽었다. 특히나 ‘여행의 이유’는 이번 내 여행은 어떤 여행이 될까? 여러 생각을 하게 해 준 비행기에서 읽기 아주 좋은 책이었다.


엉덩이가 아주 뻐근해질 때쯤 쿠알라룸프르에 내렸다. 아침에 일어난 이후 비행기에서까지 프로틴 바 하나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에 배가 몹시도 고팠다. 공항 라운지 레스토랑에서 프라이드 누들을 시켰는데 너무 맛이 없어 버거킹에서 와퍼를 사 먹었다.


그래도 다섯 시간 반이 남았다. 공항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가 은현과 요가를 했다. 스트레칭도 하고, 급기야 벽에 기대 물구나무서기도 했다. 가방에서 수경을 꺼내 수경을 쓰고 깔깔거리기도 하고, 귀걸이를 꺼내 귀걸이도 껴보고 립스틱도 발라주고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다 보니 시간이 빨리 지났고, 발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보딩 게이트로 향했다.


발리로 향하는 비행기는 이상하리만치 건장한 서양 남성들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마치 전쟁터나 군대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탄 느낌이었다. 후에 출국심사장에서 그 건장한 남성들을 하나같이 서핑보드를 들고 있었다.


밤 비행기로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하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을 때 짙게 깔린 어둠은 낯선 곳과 여행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키는데, 그 두려움은 다음날 아침 환한 해가 떴을 때 설레임을 배로 만든다.


자정이 넘어서 발리에 드디어 도착했다. 예상보다 많이 딜레이가 되어, 픽업 신청을 해둔 기사분이 기다리다 이미 가셨으면 어떡하지? 게스트하우스 체크인이 새벽 1시까지라고 했는데 아무도 없어서 길바닥에서 자면 어떡하지? 이런 불안한 상상들을 하며 입국장으로 나왔다. 다행히도 은현의 이름을 들고 있는 픽업 기사분을 바로 만날 수 있었다. 미리 신청해둔 픽업 서비스 밴을 타고, 우리의 발리 첫 번째 목적지인 짱구로 향했다. 늦은 밤이라 밤늦은 비행기를 탄다면 앞으로 픽업 서비스를 미리 신청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발리 여행은 딱히 정해진 것들 없이 은현이 좋아하는 서핑과, 내가 좋아하는 요가를 하기로 했기에 첫 번째 숙소는 서핑을 할 수 있는 짱구로 정했다. 이름도 서핑 노매드! 새벽 1시에 체크인이 마감이라고 했는데, 새벽 3시에 도착하여 마음을 졸이며 게스트하우스 앞으로 향했는데 다행히도 주인분이 나와 계셨다. 깜깜해진 숙소에서 소곤소곤 체크인을 하고 바로 우리 방을 안내받아 불도 켜지 않고 들어갔다. 알고 보니 남녀 혼성 사용 믹스드 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둠 속에 손을 더듬어 우리가 이틀간 묵을 2층 침대를 찾았고, 은현은 1층에 나는 2층에 자리 잡았다. 천장이 높은 발리 집이라 그런지 2층 침대도 무지 높이 위치해 있었는데 나는 굴러 떨어지면 어떡하지 걱정을 하다가 금세 씻지도 않고 잠이 들었다.


새벽3시, 드디어 발리 첫 숙소에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