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 - 마포구 물개와 용산구 개

by Sentimental Vagabond

은현의 Day 3


어제 오후 우연하게 들른 반스(Vans) 매장에서 불쑥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서핑을 배우고 싶은데 어디 가서 배워야 하나요?’ 직원은 재빠르게 자기 친구가 좋은 서핑 선생님이라며 바로 전화를 걸어주었다. 가능한 시간을 물어보고 금액 이야기를 하고 다음날 오전 6시 30분에 반스 매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예약금 100,000루피아를 걸고 연락처도 모른 채 설마 사기는 아니겠지 하며 매장을 나왔다.



오늘 오전 6시에 일어나 수영복을 입고 선크림만 얼굴에 덕지덕지 바른 채 반스 매장 앞으로 갔다. 아무도 없어서 ‘사기였나?’ 문득 의심해봤지만 여기는 발리니 사기면 어때 라는 마음 편한 소리 하며 바닥에 앉아있었다. 곧 인적 드문 거리에 오토바이 한 대가 도착했다.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 알 수 있었다. 네가 서핑 배우려고 온애, 네가 나 가르치려고 온 애구나. 신나서 총총 가벼운 발걸음으로 해변으로 갔다. 웨트 수트를 줄 줄 알았는데, 얇은 수영복 재질의 반팔티를 주며 웨트 수트는 추울 때나 입는 거라고 했다. 내가 한국에서 배운 서핑 기초와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뭔가 기분이 좋았다. 웨트 수트는 항상 꽉 끼어서 행동하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움직이는 것도 힘든데 이렇게 간편하다니.


퀵하게 패들링과 테이크 오프 하는 법을 배웠다. 역시나 서핑 첫 수업에서 자세하게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구나 하며, 체험 정도의 수준이니 그러려니 했다. 5번 정도 가상 패들링을 하고 바로 바다로 들어갔다. 바투 발롱 비치(Batu Balong Beach)는 암초로 이루어진 바다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닥에 수많은 암초 때문에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다칠까 조심해야 했다. 패들링을 조금 하려고 수면이 낮은 곳에서 걸으려고 했으나 암초 때문에 꼼짝없이 보드에 올라타야 했다. (서핑을 하면 언제나 느끼는 건 패들링이 진짜 힘들다는 것. 아무리 팔을 휘저어봐도 나아가지 않고, 열심히 저은 거에 비해 너무 조금만 나아간다는 것. 패들링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일 수도, 그리고 제대로 된 패들링을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열심히 휘젓고 어느 정도 중간 지점에 다다르자 이지(서핑 선생님)가 밀어준다고 했다. 가만히 대기하다가 Start Paddle!(패들을 시작해)이라고 외치자 열심히 휘저었다. Stand up! 에 맞춰 테이크 오프를 했다. 3년 만에 다시 한 서핑인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테이크 오프에 성공했다! 너무 신났다. 오, 몸은 기억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신나게 탔다. 선생님도 꽤 놀란 눈치였다. 이런 기분이 너무 오랜만이다.


한국에서 죽어라 타도 10번 중에 8번은 실패하던 테이크 오프가 발리에서 이렇게 쉽게 되다니! 그 후에도 계속 성공했다. 다시 라인업으로 패들링을 하면서 생각해봤다. 왜 이렇게 잘되지? 두 가지 이유였다. 첫 번째, 우선 옷이 가볍다. 두 번째, 제대로 테이크 오프 못하고 빠지면 바닥 암초에 발이 찔린다. 너무 현실적인 이유지만 그게 맞았다. 물론 한국이 아닌 발리니 기본 무드 상태가 하이 상태여서 그럴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파도에 밀려 주욱 나가는 그 기분은 정말 짜릿했다.


열심히 서핑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방황하는 은희가 보였다. 은희는 수영장에서 노는 건 좋아하지만 바다는 정말 무서워한다. 망망대해여서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자기는 바다가 정말 무섭다고 했다. 근데 그런 은희가 자기도 서핑을 해보고 싶다고 하니 사실 그녀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서핑을 배우면, 보드와 선생님이 있어서 안전하다고 하지만 선생님이 직접 나를 끌어주는 것도 아니고 밀려오는 파도에서 나를 잡고 같이 파도를 건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물이 무섭지 않은 사람도 지레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은희가 그래도 서핑을 한다고 보드에 올라 패들링을 하는데 대견하면서도 쉽사리 도와줄 수 없어 미안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지가 목청껏 ‘우니, 패들! 패들! 컴 히어!’를 외치며 은희가 사라지지 않도록 도와줬다. 서핑하는 내내 그 이른 아침에 우니와 패들만 100번은 들은 거 같았다.



새벽부터 서핑으로 칼로리를 버닝 하고 우리는 늘어진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밥을 먹으러 갔다. 그렇게 열심히 탔는데도 희한하리 만큼 배가 고프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틈만 나면 허기져서 군것질했던 거 같은데, 역시 다 감정적 허기였나 보다. 브런치 카페에 가서 은희는 배고프다며 오믈렛을 먹고 나는 커피를 마셨다.


옆 테이블에 금발 백인 가족이 있었다. 평소에 아기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유난히 예뻐서 자꾸 눈길이 갔다. 세 가족이 햇살 가득한 오전부터 여유롭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보니 나도 문득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결혼과 자녀에 대한 환상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스스로 놀라웠다. 다만 조건은 있었다. 도시보다는 여유로운 자연이 있는 곳에서 살 것. 도시에서 살다 보면 가족을 꾸리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과한 교육열로 경제적인 부담은 물론이고, 한참 놀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할 시기인데 점점 더 텅 비어져가는 놀이터,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면 틀렸다고 생각해 결국 점점 부담과 스트레스만 늘어가는 아이와 부모. 이런 환경에서 가족을 꾸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도 키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곳은 여유로워서인지 마치 이 곳에 사는 가족들은 모두 행복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것도 여행자의 환상이며,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중산층 이상의 백인 가정이 휴양지에 놀러 온 모습이다. 진짜 발리 사람들의 모습은 아니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 우붓으로 넘어갈 준비를 했다. 짐을 싸고 시간이 조금 남아 카페에 앉아 있다가 그랩(Grab)을 불러 우붓으로 이동했다. 서핑의 여파 때문인지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우붓에 거의 다 왔다는 소리에 잠이 깼다. 들어가는 초입에 나무가 머리 위로 길게 쏟아져 내려 우붓 특유의 아름다움을 자랑했고 절벽 밑으로 보이는 사원들은 보기만 해도 신비로워 보였다.


우리 숙소는 좁은 길 언덕에 있어 차에서 내려 스쿠터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다행히 친절한 그랩 기사 아저씨 덕분에 호텔에서 미리 마중 나와 있었다. 작은 스쿠터에 짐을 싣고 뒤편에 앉아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세가 조금 어색해서 무서웠는데 이내 곧 시원한 바람과 함께 빠르게 달리니 기분이 좋았다. 서핑 다음으로 짜릿할 만큼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더구나 그 좁은 길을 오토바이 운전사가 너무 자유롭게 드나드는데, 너무 잘 타서 감탄이 절로 났다.



이전에 우연히 ‘우붓은 논밖에 없는데 좋다'라고 쓴 글을 봤는데, 주변 논을 보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주변에는 경작지 밖에 없는데, 너무 아름다웠다. 열대 나무들의 위엄과 파란 하늘이 그 아름다운 경치를 한층 더 끌어올리는 것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발리 사람들은 미적 감각이 좋은 것 같았다. 한국처럼 개발한다고 무작정 주변 경관 생각하지 않고 콘크리트를 붓는 것이 아니었다. 나무로 정성스럽게 만든 집들과, 간판을 쓸 때도 아무런 페인트 색으로 칠하지 않고 꽃 색깔에 맞는 색으로 쓰는 등 이 주변 환경을 존중하는 것 같았다.


꽤 오랜 시간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고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 말. 아.름.다.웠.다. 이번 우리 발리 여행에서 가장 좋은 곳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우리가 묵었던 이 숙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오리, 닭, 기니피그, 토끼를 키우고 숙소는 나무로 지어져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 법한 근사한 숙소였다. 도착하자 숙소를 관리하는 와얀(Wayan)이 우리를 환대해줬다. 파파야와 파인애플을 갈아 만든 신선한 주스를 주면서 이용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우리가 앞으로 조식을 먹게 될 이 키친 또한 너무 훌륭해서 은희와 나는 마냥 신이 났다.


와얀이 우리가 묵을 방을 안내해주는데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느라 잘 따라다니지 못했다. 이곳저곳 사진 찍기 정신없었다. 곧 방에 도착하자마자 은희와 나는 호들갑이라고 할 정도로 크게 신이 났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화장실은 유리가 없고 바로 숲으로 뚫려있었다. 외부 화장실이다! 밖에서 샤워해야 하는데 이게 웬 영화 타잔을 찍나 싶었다. 좋은 의미로 말이다. 2층으로 올라가서 근사한 테라스와 이어진 침실, 한층을 더 올라가면 작은 다락방처럼 침대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신나 어쩔 줄 몰랐다.



짐을 풀고, 여유롭게 이 의자 저 의자에 다 앉아보았다. 그러다 곧 수영하러 가자며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작은 수영장으로 향했다. 정말 주변 경관이 다했다는 말이 이런 말인가 싶었다. 풀은 작았지만 부족하지 않았다. 가만히 수영장 턱에 얼굴만 올리고 풍경만 봐도 행복했다. 은희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것이 수영장에서 개헤엄 치는 건데 은희는 스스로 나는 ‘용산구의 개!’를 외치면 개헤엄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웃겨서 우리는 물속에서 한참이나 웃었다. 은희는 ‘용산구 개! 은현이는 마포구 물개!’ 은희가 개헤엄 치는 사진을 찍어뒀어야 하는데 아쉽다.



갑작스러운 허기로 로컬 음식을 찾아 나가 보기로 했다. 로컬 음식을 찾으러 나갔지만 우붓 지도도 한번 안 들여다본 우리는 걸어도 걸어도 계속 시내 중심에서 쳇바퀴를 도는 느낌이었다. 걷다 보니 시장에 있는 작은 가게가 있었다. 우리로 따지면 남대문 시장에 백반집 같은 느낌이었다. 외국인 2명이 나란히 앉아 밥을 먹고 있길래 은희가 ‘Is it good?’이라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너무 뚱한 표정을 짓길래 아 아닌가 싶었지만, 서양인들은 아시아 음식이 매우 낯설 수 있어 저런 거라고 생각했다.


나시고랭, 돼지고기 꼬치, 새우튀김, 돼지고기 볶음을 시켰다. 우리는 배가 너무 고팠다. 그리고 다 먹었다. 아주 훌륭한 맛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 굶주림에는 상한 음식도 맛있다며 먹을 수 있었다. 밥만 먹는데도 우리는 즐거웠다. 은희가 마침 앉은자리 뒤편으로 옷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은희의 오늘 옷차림이 마치 그 옷가게 사장님 같았다. 껄껄거리며 우리는 신나게 밥을 먹었다.



이제 배를 채웠으니 조금 걷자고 했다. 우붓은 짱구보다는 번화했지만 옷가게들은 대체로 짱구보다는 별로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기자기한 샵이 있어 들렀다. 질 좋은 천으로 만든 옷들과 소품, 패브릭이 가득했다. 예쁜 옷이 있었지만 사이즈가 안 맞아 서로 웃기다며 폭소만 터뜨리고 이내 아쉬워하며 내려놓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패브릭이 너무 예뻐 그냥 가기 아까워 피크닉 때 깔아 두기 좋을 만한 천을 하나 샀다. 금액은 우리나라 돈으로 15,000원 정도였는데 정말 아깝지 않았다.


쇼핑하는 도중에 한 가게 점원은 우리한테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봤다. 그러더니 큰 미소를 지으며 이민호를 아냐고 했다. 당연히 안다고 했다. 발리에서 유명한 사람이냐고 했더니 가게 점원 모두 이민호를 좋아한다고 했다. 갑자기 이민호 덕분에 언니들과 친해졌다. 처음에는 우리한테 관심이 없다가 이민호랑 같은 한국인라고 하니 언니들이 우리에게 급 관심을 보였다. 한류가 이렇게 대단한 것이구나 싶었다. 포장을 해줄 때 붙여주는 패브릭 스티커가 이뻐서 은희가 하나만 줄 수 있냐고 했더니 갑자기 통째로 보여주며 원하는 만큼 가지라고 했다. 대한민국 만세! 를 외치고 싶은 순간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쇼핑했던 가게는 발리의 유명 전통 공예인 ‘바틱(Batik)’ 가게라고 했다. 특정한 패턴과 모양으로 염색하는 기법 중에 하나인데 만드는 모든 과정은 수공예로 진행한다. 어쩐지 너무 예쁘다 했다.


간단하게 발마사지를 받고 숙소로 돌아갔다. 스쿠터를 타고 가야 하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 마사지샵에 있는 사람들한테 우리 숙소에 가야 하는데 태워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들들 이것저것 알아보더니 가능하다며 자기 친구들 오토바이를 태워줬다. 정말 발리는 좋은 곳이다. Grab 어플이 사실은 필요 없다. 밤공기를 마시며 시원하게 숙소까지 도착했다.


숙소 문을 딱! 여니, 낮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무서움만 남아있었다. '장화 홍련'같았다. 귀신이 좀 나올 것 같았다. 커튼을 닫으려는데 창문에 개구리가 딱 붙어 있어 까무러쳤다. 화장실을 열었더니 욕조에도 개구리가 있었다. 나는 파충류를 싫어하는데 서울에서 볼일이 없다가 이렇게 발리 와서 실제로 보니 내가 얼마나 끔찍이 파충류를 싫어하는지 알았다. 은희는 물을 무서워하고, 나는 파충류를 무서워하고, 여행에서 자신을 발견한다고 하는데 이런 거구나 싶었다. 파충류 말고도 분위기가 너무 스산해서 계속 은희 보고 곁에 있어달라고 했다. 물에서는 누구보다도 당당했는데 개구리 앞에서 작아지는 나를 보고 은희가 웃었다. 잠은 잘 수 있겠지?



은희의 Day 3


모닝 서핑을 하기로 한 날 아침이 드디어 밝았다. 6시쯤 은현이 깨워 급하게 수영복을 입고 인스트럭터와 만나기로 한 반스 매장 앞으로 갔다. 약속했던 인스트럭터가 매장 앞에 없어 순간 10초 동안 은현과 우리 사기당한 건가 하는 의심을 했었다. 의심을 하던 찰나 누가 봐도 서퍼로 보이는 인스트럭터가 스쿠터를 타고 우리 앞으로 왔다. 우리는 6시 반으로 알고 있었고, 인스트럭터는 6시라고 알고 있었어서 조금 엇갈렸었던 것 같았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반스 매장 바로 코앞에 위치한 바토 볼롱 해변으로 향했다. 우리를 파도 위로 이끌어 줄 인스트럭터의 이름은 ‘이지’라고 했다.


비치에는 이미 모닝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핑 샵에서 서프보드를 받고 래시가드를 빌려 입었는데 처음 들어보는 서핑보드가 생각보다 너무 무겁고 커서 놀랐다.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이라고는 하지만 백사장에 보드를 눕혀두고 보드 위에 어떤 자세로 올라타는지, 어떻게 패들을 하는지, 어떻게 스탠드업을 하는지 이 3가지를 반복적으로 연습했다.


나는 굉장한 물 쫄보인데, 물에 대한 정확히는 바다에 대한 공포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다.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외할머니 집이 길만 건너면 바다인 울진에 있었고, 10대의 모든 여름을 그곳에서 보냈는데도 어쩜 이렇게 바다가 익숙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딱히 큰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30 넘게 수영을 못하는 것이 스스로도 안타까워 몇 해 전 주민 센터에서 수영을 배웠었고, 깊이를 아는 수영장에서는 그래도 간단한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래사장 위에서 연습을 할 때는 왠지 잘할 수만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샘솟았다. 기초 교육이 마무리되어갈 때쯤 선생님이 질문이 있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수영을 못해도 괜찮냐? 우리는 얼마큼 깊은 곳까지 들어가냐? 나는 바다가 너무 무섭다.라고 했다. 선생님은 수영을 못해도 괜찮고, 지금은 간조라서 물이 얕으며 자기가 옆에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키며 “Don’t Panic”이라고 했다.


드디어 서프보드를 들고 바다로 나갔다. 고정된 상태의 모래사장과 달리 무릎까지 오는 얕은 곳에서도 생각보다 파도가 커 컨트롤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이미 나는 패닉 상태였다.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선생님과 은현보다 뒤처지고 있는 나를 보며 선생님은 “은희, 컴 히얼, 패들”을 몇 번이고 외쳤다. 나는 분명히 패들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선생님과 은현이 있는 반대방향으로 가거나 서프보드가 다시 육지를 향해 돌려져 있었다. 분명히 모래사장 위에서 할 때는 쉬워 보였는데 말이다. 패들 자체도 쉽지 않았지만, 거센 파도와 바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계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며 생각하지 말고 그냥 패들을 하라며 또다시 선생님이 소리쳤다.


무기력한 상태로 서프보드 위에서 혼자만의 사투를 벌이는 동안 은현은 물 만난 물개처럼 보였다. 선생님과 저 멀리 나아가더니 금세 첫 번째 파도를 잡아타고 스탠드업 상태에서 유유자적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은현을 바라보며 부러운 마음보다는 신기한 마음이 더 많이 들었다. 나에게 이렇게 무서운 바다와 파도가 은현에게는 즐거움의 대상이라는 것이 말이다. 무서움과 두려움은 결국 바다에 있기보다 바다를 향한 우리들의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것일 텐데.


앞으로 전혀 나아가고 있지 못하는 나를 보며 선생님이 계속 내 이름을 목놓아 외쳤다. 그런 내가 답답하고 안쓰러웠는지 나에게로 가까이 와서 보드를 뒤에서 밀어주기도 하고, 내 앞에서 먼저 패들을 해가며 자기 발을 잡고 따라오라고 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나를 보며, 한 번이라도 내가 파도를 타보면 좋겠다고 포기하지 말고 해보자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두려움이 즐거움으로 바뀌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건 나였다.


선생님이 떠먹여 주다시피 하여 파도를 3번이나 타볼 수 있었다. 한 번은 누워있는 상태에서 파도가 밀어주었고, 또 한 번은 무릎을 꿇고 파도를 탔고, 또 한 번은 어설프지만 테이크 오프를 하여 파도를 탔다. 발리에서 태어나고 자라 서핑만 20년을 한 선생님이라 그런지 나 같은 물 쫄보도 인생 첫 서핑에 테이크 오프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신비한 능력이 있었다. 파도를 탄다는 것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자연이 만든 후룸라이드를 타고 가속을 받아 물 위에서 나아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신세계적 경험이었다. 왜 그렇게 다들 서핑에 빠지게 되는 것인지 그 맛이 어떤 것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보드를 들고 다시 백사장으로 나왔다.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꼭 발리에 오겠다고 약속했다.이지 선생님은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나중에 발리에 오면 메시지를 하라고 했다. 본인은 계속 여기 있을 테니. 그리고 잘했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나를 포기하지 않고 그 경험을 하도록 만들어준 이지 선생님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학창 시절은 잘 모르겠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선생님 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요가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원더랜드의 선생님들과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핑의 세계로 이끌어준 선생님, 인생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 또한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변을 떠나기 전 꼭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모래사장에서 시르사 아사나(머리 서기 요가 자세)를 하는 것이었다. 요가 수련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에게 가장 어려워 보이고 절대 안 될 것만 같았던 자세 중 하나였다. 발리에 오기 전 계속 수련을 하며 발리 해변에서 멋지게 시르사 아사나를 하는 나의 모습을 백번이고 천 번이고 머릿속으로 그렸었다. 그리고 1년이 넘는 수련 끝에 시르사 아사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은현에게 멋지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고 발리 해변을 배경으로 드디어 시르사 아사나를 했다. 서핑 후 기진맥진한 몸으로 머리 서기를 하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상상 속에 그리던 나의 모습을 실제로 만난 날이 오다니 혼자서 괜히 뭉클했다. 머릿속으로 그려오던 나의 모습은 늘 현실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내가 꿈꾸는 나의 모습을 계속해서 그려나가야겠다 생각했다.



해변을 걸어 숙소 근처에서 간단히 밥과 커피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와 우붓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짐을 챙겨 숙소에서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 우붓으로 출발했다. 우붓으로 가는 길엔 관광지를 벗어나 발리 현지 사람들이 사는 삶을 간접적으로나 엿볼 수 있었다. 사원에서 결혼식을 하는 모습, 라탄 가구를 만드는 모습, 논에서 일하는 모습 등


짱구에서 우붓까지는 약 1시간이 걸리는데, 가는 길에 내 나이 또래 쯤으로 보이는 드라이버 프레디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레디는 9살 난 딸과 4살 난 아들이 있다고 했다. 9살 난 딸은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꽤 유창하다고 했고, 프레디도 딸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를 배워 기타로 자주 친다고 했다. 꽤 말이 잘 통하는 프레디에게 발리 사람들은 보통 언제 결혼을 하는지, 발리를 떠나고 싶어 하지는 않는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 요가는 하는지 등등 이것저것 발리와 발리 사람들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발리 사람들의 주 수입원은 농업과 관광업이고, 1970년대 정부 주도로 관광인프라 개발을 시작하며 관광지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발리 사람들은 대부분 발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발리에 산다고 했다. 대구에서 태어났던 나는 하루라도 빨리 대구를 벗어나 서울로 가고 싶었었는데, 발리를 떠나지 않는 대부분의 발리 사람들은 그것이 선택이었는지 혹은 선택지가 없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론 나는 왜 그렇게 내가 있는 곳을 늘 떠나고 싶고 벗어나고 싶어 할까? 나의 불만족 때문인 걸까? 나의 본성인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또 한편으론 이동성 혹은 지리적 유동성은 어쩌면 예로부터 인간의 권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은 늘 이동을 해왔고, 이제 지구를 넘어 달로 가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힘 있는 나라들은 늘 원래 그들이 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개척하고 정복하려 애를 썼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오지 혹은 낯선 곳으로 갈수록 많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현지인 아니면 생활이 윤택한 유럽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디의 말에 따르면 발리 사람들은 25~30 사이에 보통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바로 자녀를 가진 다고 했다. 나도 3년 전에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가지는 것이 여전히 힘들고 고민이 된다고 얘기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지 않은지 물어봤더니 “I love them and I follow the flow(나는 그들을 사랑하고, 그냥 흐른 대로 맡겨)”라고 대답을 했다.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는 삶, 과연 그것이 나는 가능할까? 그는 가능하고, 내가 가능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친절하고 유쾌한 프레디 덕분에 1시간이 금방 흘렀고, 우붓의 첫 번째 숙소 근처에 도착했다. 1.5km 정도 구간은 차량이 접근 불가능한 아주 좁은 논밭길이라 미리 마중 나와있던 숙소 직원의 스쿠터 뒤에 타고 숙소로 향했다. 좁고 구불구불한 논밭길을 달려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오, 마이 갓!


넓은 논밭 사이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에 나올법한 목조 건물의 주택과 수영장, 가지, 토마토 각종 야채 텃밭, 오리, 닭 등 가축들까지 작은 천국을 축소해 놓은 것만 같은 곳이었다. 숙소 직원의 환대와 갓 만든 파파야 주스를 한잔 건네받았다. "와 씨 너무 좋아" 욕이 나올 만큼 모든 것이 좋았다.



숙소 체크인을 기다리는 동안 좀 나이가 있어 보이시는 숙소 여직원분인 와얀에게 밥 먹을 만한 곳을 추천을 해 달라고 했다. 그분이 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오가닉, 베지테리안 레스토랑들을 추천해 주시길래, “No Organic, No Vegeterian, We want Babi guing(노 오가닉, 노 베지테리안, 우린 바비 굴링 를 원해)”라고 했다. 그랬더니 우붓 타운에 있는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바비 굴링 레스토랑을 소개해주시길래 우리는 “노 포리너, 로컬 피플”이라고 얘기했더니, 엄청 환하게 웃으시며 “아~ 유 원투 로칼로칼”하며 오전부터 오후 4시까지만 문 여는 로컬 바비 굴링 스폿을 소개해 주셔 내일 가보기로 했다.


직원분의 안내를 받아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도 우리는 “와 씨 미쳤어, 왜 이렇게 좋아? 천국이야?”라며 믿을 수 없는 환경에 너무나도 좋아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숙소를 구경했는데, 무려 3개 층으로 되어있고, 사방으로 논밭이 보이며 특히 가장 탄성을 질렀던 것은 자연 안에 있는 욕조와 샤워 화장실이었다.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앉아서 이런저런 얘길 하며 좀 쉬다가 수영을 하러 갔다.


수영장은 생각보다 깊었는데 물을 좋아하는 은현은 벌써 신이 나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은현에게 “너는 마포구 물개, 나는 용산구 개”라고 하며 또 깔깔 웃어댔다. 수영장 난간에 기대어 논밭을 바라보다가 “은현님, 우리 어제 스쿠터에 치여 죽어서 알고 보니 지금 우리 천국에 와있는 거 아니에요?” 했더니 은현은 “은희님, 저 이런 천국이라면 그냥 죽을래요”했다.


수영을 하고 숙소에서 좀 쉬다가 우붓 타운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스쿠터를 타고 들어왔던 논밭길을 걸어 나가 보기로 했다. 로밍을 하지 않아서 인지 이번 여행 내내 딱히 지도를 보지 않고 발길 닫는 대로 걸어 다니고 있었다. 논밭길을 걷는 내내 은현은 연신 셔터를 눌러냈다. 나는 코코넛 나무 사이를 걸으며 코코넛이 떨어져 죽는 사람이 많다고 했던 하루키 수필의 문장이 떠올랐다.


우붓의 메인 스트릿은 뭔가 이상했다. 가게들이 즐비하는데 갑자기 사원이 있다. 갑자기 사원 같은 건물에서 스쿠터를 타고 나오기도 하고 사원 같은 문을 지나 들어가 보면 공중화장실이 있기도 했다. 후에 로컬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모든 가족들은 가족 사원이 있다고 했다. 결국 사원에 사는 집이 있고, 사는 집에 사원이 있는 셈이었다. 인도네시아는 90%가 이슬람교이지만 발리는 약 인구의 2%에 해당하는 힌두교가 지배적인 곳이다.


우리는 지도 없이 그냥 우리 느낌에만 의존해서 우붓 길을 탐색해 보기로 했다. 걷다 보니 메인 도로에서 샛길로 나있는 길들이 있었는데, 그 좁은 샛길들로 유난히 발리 사람들이 많이 보여 우리는 샛길들을 조금 더 탐색해 보기로 했다. 북적한 메인 스트릿과는 달리 샛길 안은 꽤 한적했다. 샛길 안도 마찬가지로 빨래방, 슈퍼 옆에 사원이 있었다. 자발적으로 길을 잃고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시장에 다 달았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젊은 여자분 혼자 운영하는 조금은 허름하지만 왠지 맛있어 보이는 인도네시아 음식점에 들어갔다. 메뉴를 살펴보다가 나시고렝과 돼지고기 야채볶음, 그리고 꼬치 스틱과 콜라를 시켰다. 음식을 기다리며 은현과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음식이 나와 먹기 시작했고, 먹다 보니 너무 맛있어서 이미 사람 수보다 더 많은 음식을 먹고 있음에도 새우튀김을 하나 더 시키고 맥주도 마시기로 했다. 그렇게 우린 4 접시의 음식을 시켜 아주 편한 자세로 등받이도 없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웃고 떠들며 계속 먹었다. 그러다 은현이 “은희 님, 지금 옆집 옷가게 주인 언니 같아요. 마감하고 옆집에서 맥주 한잔하고 있는”이라고 해서 우리는 또 깔깔대고 웃었다.



저녁을 먹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우리 밖에 없는 레스토랑에 독일 노부부가 옆에 앉았다. 백발이 희끗한 노부부는 옆에 딱 붙어 앉아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남편 생각이 많이 났다. 남편을 처음 만난 7년 전부터 여행은 늘 남편과 했었기에, 정말 오랜만에 남편 없이 친구와 하는 여행이었다. 20대에는 빨리 사랑을 찾고 싶었다. 정말 많은 남자들을 만나보기도 하고, 괜찮은 남자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이 나의 라이프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라며. 사랑도 사랑이지만 인생이라는 어드벤처를 함께 헤쳐나갈 좋은 라이프 파트너를 빨리 찾고 싶었다. 그렇게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우리는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라이프 파트너이다.


그런데 30대가 되고 나니 자유를 찾고 싶어 졌다. 자유를 갖고 싶어 잠을 못 이루던 날들도 있었다. 내 삶에 ‘자유’라는 정의를 어떻게 내릴 것인지, 그리고 내가 정의 내린 그 ‘자유’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지금도 나는 자유를 찾아가는 그 여정 안에 있다. 다만 남편의 큰 사랑 안에서 자유를 찾고 있어서인지 사랑을 찾아 헤맬 때보다는 훨씬 더 마음이 편하고, 자신감이 크다.



이런저런 생각과 대화를 하며 밥을 먹다 보니 어느새 시장상인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계산을 하고 나가 또다시 길을 잃어 보기로 했다. 가게 밖을 나와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가 코코넛으로만 만든 음료와 디저트를 파는 곳이 있어 들어가 디저트로 코코넛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다 보니 맞은편 가게에 인도네시아 전통 바틱 전문 가게 있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인도네시아의 전통 직물 염색인 바틱은 2009년에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에도 등록되었다고 한다. 수공으로 염색하는 면직 및 견직 의류의 기법·상징·문화는 인도네시아 인의 삶에 오롯이 스며들어 있다. 바틱 가게에는 바틱으로 만든 다양한 소품들과 옷, 바틱 직물을 팔고 있었는데, 여기저기 구경하는 우리를 보며 젊은 여자 점원분이 어디에서 왔냐며 말을 걸었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갑자기 수줍은 소녀의 얼굴을 하고선 이민호의 나라에서 왔다며 반가워했다. 바틱 가게에는 총 4분의 젊은 여성분들이 점원으로 계셨는데, 4분 모두 이민호를 상당히 좋아하시는 듯했다. 그리고 어제 발리에 이민호가 화보 촬영차 왔다고 했다. 이민호 덕분에 우리는 바틱 가게에서 환대를 받으며 이것저것 쇼핑을 했다. 물건들을 작은 종이봉투에 넣어 바틱으로 된 스티커 같은 것을 붙여 마무리를 해줬는데, 그 스티커가 너무 예뻐 구매할 수 없냐 물어봤더니 이민호 때문인지 10개 정도를 손에 쥐어주며, 다음에 발리에 올 때는 이민호를 데려와 달라고 했다.


바틱 가게를 나와 또 이리저리 헤매다가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쇼핑을 하고, 짱구에서 우붓까지 넘어오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 그런지 조금 피곤해졌고 우리는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한 달에 10만 원씩 1월부터 여행 적금을 넣으며 발리에 가서 1일 1 마사지를 꼭 받자고 했었다. 길을 걷다가 깔끔해 보이는 마사지샵에 들어가 발마사지와 어깨 마사지를 받았는데, 어제 받은 마사지와는 다르게 뭔가 부족하다 싶은 느낌이었다. 젊은 여선 마사지사분들이어서인지 어제 아저씨 마사지사보다 힘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은현과 우리는 앞으로 마사지 샵을 고를 때 아줌마 아저씨 마사지사가 있는 곳으로만 가기로 했다.


마사지를 다 받고 나니 9시 반쯤이 넘었고 모터바이크 택시를 이용해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우리 숙소가 꽤 외진 곳에 있어서인지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도 잡히지가 않았다. 은현의 폰에는 그랩 앱이 깔려있지 않아 다운로드를 해야 했는데 마사지샵 와이파이가 너무 약해서인지 앱 설치도 쉽지가 않았다. 그러다 마사지샵 사장님께 모터바이크를 어디서 탈 수 있냐 물어봤더니 그럼 자기 친구에게 물어보겠다 했다. 우리가 그랩으로 바이크 택시를 잡아보려고 애쓰고 있는데, 모터바이크가 준비가 됐고, 얼마에 가능하냐 해서 30만 바트라고 했다. 마사지샵 앞에는 마사지샵 사장님 모터바이크 2대가 대 져 있었고, 은현과 나는 각각 바이크에 올라타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몇몇 대화를 나눴는데, 호텔에서 일을 하시는 분인 듯했다. 길이 생각보다 멀었는지 논밭을 달리며 more more? 이냐며 물어보셔서, sorry, more more, way more이라고 서너 번 반복하다 보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덕분에 편하게 숙소로 돌아올 수 있어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네고 숙소로 들어왔다.


아무것도 없는 논밭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있는 큰 집이 밤에는 조금 무섭기도 했다. 은현은 자꾸 장화홍련에 나오는 집 같다고 했다. 낮에는 분명 센과 치히로라고 했었는데 말이다. 문을 열고 들어왔더니 이상한 개구리울음 같은 것이 화장실 쪽에서 들려왔다. 바다에서는 자기 몸집보다 더 큰 파도에도 웃으며 유유자적하던 은현이었는데, 개구리와 어두운 시골집에 벌벌 떠는 모습이 귀여웠다. 마치 바다에서 한 없이 약해지는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가진 두려움에 대해서도 번갈아가며 확인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같은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에서는 은현이 나를, 정글에서는 내가 은현을 도와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정말 마포구 물개와 용산구 개였다.


우붓에 리조트를 예약하며 우리가 가장 중요시 여긴 것은 욕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둘 다 반신욕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리에 오는 짐을 싸며 입욕제도 몇 개나 챙겼다. 우리의 우붓 첫 번째 숙소에도 아주 예쁜 욕조가 있었는데 장점이자 단점은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었다.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리는 욕실 문을 여니 욕조 끝에 개구리가 앉아있었고, 욕조 너무 야자수 숲으로 반딧불이가 떠다니고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개구리를 무서워하는 은현을 진정시키며, 욕조에 물을 받고 레몬그라스 입욕제를 풀었다. 내친김에 숙소 곳곳에 놓아두었던 꽃잎들도 뜯어 욕조에 넣었다. 허니문에서 볼법한 장면이었다.


욕조 물이 꽉 차고 수영복을 입고 은현과 마주 보며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오늘 하루와 발리, 그리고 우붓에 대하여. 그리고 발리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들에 대하여. 또 우리가 각자 가진 두려움에 대하여. 욕조 물이 조금 식어갈 때쯤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서도 은현은 계속 장화홍련 얘길 하며 사방에 있는 커튼을 다 치기 시작했고, 침대 옆에 있는 거울이 무섭다고 했다. 이렇게 마포구 물개와 용산구 개인 우리의 발리 여행 세 번째 날이자 우붓의 첫날밤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