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 - Follow the Flow

by Sentimental Vagabond


은현의 Day 5


고작 하룻밤 이 숙소에서 보냈을 뿐인데, 그새 적응하여 어젯밤은 조금 덜 무서워하며 잠들었다. 언제나 그랬듯, 환한 햇살 받으며 조식을 먹으러 갔다. 어제와는 다르게 조금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으로 보이는 한 외국인 가족들이 있었는데 우연하게 백인 아주머니랑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자기들은 호주에서 왔고 가족들이랑 여행을 왔는데 자기 아들의 여자 친구와 그녀의 어머니도 같이 왔다고 했다. 사돈도 아니고 아들의 여자 친구와 그녀의 어머니와 같이 오다니. 서구인들의 관계 확장성은 한국인으로서는 가끔 정말 상상이 가지 않는다. 호주와 발리는 가까워서 이미 발리만 10번도 더 넘게 왔다고 했다. 근데 아들의 여자 친구와 그녀의 어머니는 발리가 처음이라 이곳저곳 다녀야 한다고 했다. 부럽다. 우리는 중국, 일본과 가까워도 10번을 다닐 만큼 자주 갈 시간과 돈이 없는데 그녀와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가 매우 다르게 느껴졌다.


아주머니가 떠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꽃과 향이 듬뿍 담긴 큰 쟁반을 들고 한 직원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와얀이 블레싱(Blessing) 받고 싶냐고 물어봤다. 우리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받고 싶다고 했다. 양손 가지런히 모아 눈을 감았다. 물을 머리에 몇 방울 떨어뜨리더니 이마에 쌀 몇 알을 붙여주었다. 이마에 쌀 붙은 모습이 조금 웃겼지만 이렇게 나의 하루에 축복을 빌어주다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발리 사람들은 매일 아침 기도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의 안녕을 위해 이렇게 블레싱을 받는다. 하루의 시작이 너무 정성스럽기만 하다.


식사를 마치고 이 숙소에서 마지막 수영을 했다. 이곳에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웠지만 아직 발리 여행이 끝난 것은 아니니 아쉬워하기보다는 다음 숙소를 기대하며 우리는 떠났다. 숙소를 떠날 때에는 친절한 와얀이 오토바이로 태워준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또 새롭게 소개받은 닭고기(Ayam) 맛집이 있어, 새로운 숙소에 짐을 놔둔 후 그곳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간 숙소는 고급 리조트 호텔이었다. 하지만 고급 호텔에 감탄할 틈도 없이 우리는 짐만 프런트에 맡긴 후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닭고기 맛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가는 맛집은 우붓 중심지에서 좀 벗어나 실제 발리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였다. 나를 태운 오토바이 아저씨는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지만 너무 따뜻한 사람이었다. 어설픈 영어로 나에게 발리 음식, 동네 등에 대해서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할아버지가 마치 손녀에게 이 동네 저 동네 보여주는 것 같았다. 뒤통수만 보고 탔지만 희한하게 아저씨 뒤통수마저도 웃고 있는 거 같았다.



이내 닭고기 맛집에 도착했고 은희와 나는 또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주변의 경관도 소박한 게 너무 아름다웠고 들어간 가게도 너무 정감이 느껴졌다. 마치 서울 근교 어딘가 들판에 뜬금없이 있는 닭백숙집 같은 느낌이었다. 가장 좋아 보이는 정자 같은 곳에 냉큼 앉았다. 여기도 역시 바비 굴링 집처럼 닭 부위별로 손질된 음식을 밥 위에 올려주는 한 접시 집이었다. (발리는 이렇게 먹는 게 일종의 백반 형식인 거 같다) 은희는 돼지고기를 제일 좋아한다면 나는 고기 중에서는 닭을 제일 좋아한다. 치킨, 닭백숙, 닭볶음탕 심지어 제일 좋아하는 반찬은 계란말이다. 우리의 필명은 여기서 만들어진다. 은희는 돼지를 좋아하니까 박바비, 나는 닭을 좋아하니까 계아얌. 바비는 인도네시아어로 돼지이고 아얌은 닭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또 이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맛있게 밥을 먹었다.



음식을 먹는 내내 어린 시절 필리핀에서 보냈던 시간이 기억났다. 동남아 특유의 향과 맛들, 특히 필리핀에서 자주 먹었던 과자가 돼지껍질 튀김 과자였는데, 발리에서 보니 매우 반가웠다. 음식을 먹는데 중간에 학생들이 먹으러 왔다. 외국 아이들과 현지 아이들이었는데 유창한 영어 실력을 보니 인터내셔널 스쿨을 다니는 학생들 같았다. 필리핀에서 자주 현지 밥이나 간식을 먹으러 친구들과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참으로 행복했는데, 이 어린 친구들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너무 강렬하게 떠올랐다.



다시 시내로 가기 위해 가게 주인에게 오토바이로 데려다 줄 만한 사람이 있냐고 물어봤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가게에서 없다고 했다. 은희와 나는 인터넷이 되지 않아 그랩을 부를 수 없어 우선은 배도 부르고 슬슬 걸어 나가자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직감적으로 시내까지 걸어갈 수 없을 걸 알았다. 그래서 우선 눈에 보이는 가게에 들어갔다. 오늘 오후에는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는 서핑을 하루만 한 것이 너무 아쉬워 다시 짱구에 가서 서핑을 하기로 했고, 은희는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다른 요가원에 가기로 했다. 와이파이가 연결되고 잠시 한숨을 고르고 그랩을 불러 짱구로 향했다.


갑자기 서핑을 다시 하러 가기로 한건 정말 아쉬워서였다. 나는 내가 물속에서 노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 서핑을 하는 내내 정말 행복했다. 패들링으로 팔은 너무 아프고 2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온몸이 녹초가 되었지만, 알 수 없는 에너지가 흘러넘쳤고 스스로도 내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행복의 정수를 맛본 지 오래되었는데 후회하기 전에 다시 한번 더 해보고 싶었다. 전날 이지한테 다시 연락해서 오늘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짱구에 도착해서 이지를 만나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파도가 전보다 높고 좀 위험해서 겁을 먹었지만 그래도 다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설레었다. 하지만 파도가 센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패들링을 해도 나아가지 않았고 파도가 매우 세고 자주 밀려 들어와 보드가 몇 번이나 뒤집어졌는지 모른다. 가까스로 라인업에 들어갔고, 이지가 보드를 밀어주었으나, 성난 파도에 겁을 지레 먹었는지 제대로 테이크 오프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찌나 파도가 강한지 어렵게 라인업까지 갔는데 나는 다시 해변 근처에 가까워졌다. 그래도 다시 패들링을 했다. 한 번의 테이크 오프를 위해. 점점 라인업에 도달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체력은 바닥을 쳐간다. 몇 번 시도를 했지만 이전과 같이 잘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괴감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냥 놀려고 하는 건데 뭘.


거의 끝무렵에는 너무 지쳐서 해변 끝쪽에서 떠돌아다니자 이지가 왔다. 자기 발을 잡으라고 했다. 라인업까지 나를 데려가 주었다.이지가 정말이지 구원자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쉽게 라인업에 도착하다니, 내 팔은 숟가락만 들고 먹을 줄 알지 하등 쓸모없어 보였다. 절치부심하며 테이크 오프를 했지만 나는 이내 물속에 고꾸라졌다. 그리고 이지가 말했다. '넌 너무 지쳤어' 껄껄 부정할 수 없어 억지로 더 타지 말고 집에 갈 채비를 하기로 했다. 언제나 좋은 파도만 쉽게 탈 수 없다, 이런 파도도 타고 저런 파도도 타는 거다. 나는 어차피 전문 서퍼도 아니니 그냥 이렇게 탈 수만 있다는 것에도 감사하고 즐거웠다. 다시 이제 은희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은희가 빨리 보고 싶었다. 오늘 서핑은 물도 많이 마시고 힘들었다고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랩을 타고 다시 우붓으로 갔다. 몸은 힘들었는데 피곤하지는 않았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는데 문득 가족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리 와서 둘째 날에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1시간 정도 차 안에서 가만히 창밖만 바라보니 가족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들과 같이 살며,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고 같이 여행을 다니고, 이야기를 나누는 삶. 사실 현재 우리 가족은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핵가족이다.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부모님과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 모든 삶의 척도 이자 기준인 가족. 부모 자신들도 그런 삶이 중요하여 본인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즐기기보다는 우리 자식들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희생한 사람들이다. 오빠와 나의 안위와 성공의 곧 그들의 삶의 행복이자 성공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보다는 사회의 기준이 중요해서 우리 가족은 우리 삶의 소소함과 질을 높이는데 중요한 대화를 많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게 가족이란 , 생물학적 관계 말고는 크게 다가오는 것이 없었다.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희생은 감사하지만, 반대로 부담스러워 쉽게 가족을 만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발리에 오니 문득 가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나만의 가족을 만들면 되니까,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내 가족을 만들면 되니까. 우리 사회는 어쩌면 가족은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가족을 갖지 못하게 척박하게 만드는 아이러니함을 자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20대 초반에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솔로의 삶을 지향하는 커리어 우먼 사만다의 영향도 조금은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나도 조금은 결혼을 하고 싶은 것 같다.


새로운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묶는 방은 좋았지만 서울 어딘가 유명 호텔 같았다. 와이파이도 잘되고 샤워실도 깨끗하고 모든 생활 물품이 정갈하고 편하게 정리되어있었다. 드라이기도 있어 은희는 엄청 놀랬다. 은희와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서울로 돌아가기 2일밖에 안 남았는데 점점 서울 도시 생활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고. 이제 다시 돌아갈 시간을 재촉하기라도 하는 듯.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우선 배가 너무 고팠다. 오늘은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 있다. 야시장이다. 야시장은 로컬의 끝판왕이다. 심지어 우리가 가는 야시장은 외국인도 많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호텔에 요청하여 차를 타고 야시장에 도착했다. 은희와 나는 신이 났다. 하지만 흥분해서 다 먹기 전에 우선 무엇이 있는지 스캐닝을 하기로 했다. 꼭 먹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았다. 박소 국수 (Bakso, 박소는 일종의 고기 완자), 돼지고기 사테이 (Sate Camping, 사테이는 꼬치), 닭고기 사테이 (Sate Ayam), 옥수수(Corn).


첫 번째 음식으로 박소 국수를 먹었다. 레몬 그라스 향이 가득했는데 양이 너무 적었다. 하지만 다음 음식도 먹어야 하니 오히려 잘됐다고 했다. 급하게 먹고 다음 음식 깨기를 했다. 연기가 가득한 닭고기 사테이. 매운맛 안 매운맛 각각 5개씩 10개를 시켰다. 초등학교 불량식품 닭꼬치 맛이 났다. 하지만 맛있었다. 그리고 바로 돼지고기 사테이를 깨러 갔다. 돼지고기 사테이는 야시장까지 운전해준 호텔 직원이 강력 추천한 음식이다. 그래서 더 기대되었다. 10개를 또 샀다. 진짜 맛있었다. 정말 발리 여행 중에 제일 맛있었다. 장조림같이 짭짤한 테 땅콩버터가 들어가 음식 맛이 풍부해지며 단짠의 극치였다.


아무 길거리에 앉아 먹다가 야시장에서 흘러나오는 전통 음악에 흥이 난 은희가 춤을 추었다. 너무 웃기다. 은희는 언제나 음악과 춤을 사랑한다. 옥수수를 먹기 전에 디저트를 파는 곳이 있었다. 하얀 긴 식빵에 여러 가지 잼을 발라 버터에 노릇하게 구운 로티 바카르(Roti Bakar)이다. 강렬한 버터 향기를 거부할 수 없었다. 바닐라 잼과 초코잼을 골랐다. 이건 정말이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행복했다.


배가 너무 부르지만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었다. 옥수수다. 옥수수는 내가 필리핀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 중에 하나다. 찐 옥수수에서 노란 가염 버터를 가차 없이 발라 소금을 솔솔 뿌려먹었는데, 정말 말도 안 되게 맛있다. 마약 옥수수와 견줄만한 맛이다. 발리에도 그런 비슷한 옥수수를 팔길래 아무리 배가 불러도 그것만은 먹어야 했다. 살짝 탄 옥수수에서 버터를 발라주었다. 한입 먹었다. 필리핀에서 먹었던 그 맛은 아니었다. 살짝 실망했다. 하지만 여기는 필리핀이 아니니 실망은 접어두기로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먹으니 맛있다. 옥수수 자체가 맛있다. 한국 찰옥수수랑 달리 초당 옥수수처럼 아사삭 하게 씹힌다. 행복했다. 이 모든 음식을 먹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30분이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시장 출입구에 있는 아저씨들에게 택시를 불러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아저씨는 시장 내 주차비를 걷는 사람들이었다. 오토바이, 차를 몰고 와 주차장에서 나가는 사람들한테 돈을 받는다. 근데 아저씨들이 너무 즐거워 보였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은희가 말을 걸자 갑자기 은희한테는 같이 셀카를 찍자고 했다. 어쩜 저리 행복할까, 돈 받는 일이라 행복한가? 배부르게 먹고 아저씨의 신난 모습에 은희와 나도 더 신이 났다. 맛있는 음식도 마음껏 먹고 아저씨랑 춤도 추고.



은희랑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운 것이 없었다. 비행기표와 가서 묵을 숙소 그게 전부였다. 우리는 지도 한번 보지 않았고, 심지어 도착해서는 로밍도 하지 않은 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그냥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니면서 우리만의 플로우대로 여행을 했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요가하고 싶으면 요가하고 서핑하고 싶으면 서핑하고, 그저 그렇게 우리의 마음대로, 이렇게 우리 마음대로 가는 대로 할 수 있는 날이 고작 하루 남았다. 남은 하루도 그저 그렇게 마음을 따라 여행을 하기로(Follow the Flow) 하며 잠이 들었다.




은희의 Day 5


우붓의 첫 번째 숙소를 떠나 두 번째 숙소로 옮기는 날이다. 8시쯤 조식을 먹으러 갔다. 밥을 먹고 있는데 신들께 올리는 의식을 진행을 하고 와얀이 우리도 블레싱 받고 싶냐고 물어봐서 우리에게도 함께 해주었다. 성수를 머리에 뿌리고, 쌀알 같이 생긴 것을 이마에 붙여 주었다. 매일매일 아침마다 하는 간단한 의식이지만 오늘 하루는 왠지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떠나기 전 간단히 수영을 하고, 숙소 곳곳에 놓여있던 메리골드 꽃들을 욕조에 띄워 반신욕도 했다. 맡겨 놓았던 빨래도 찾고 짐을 챙겼다. 이틀 사이 정들었던 우리의 첫 번째 숙소와 너무나도 따뜻하던 발리 직원분들이었다. 정말 천국 같은 곳이었기에, 다음번에 남편과도 꼭 오고 싶다 생각했다.


와얀이 추천했었던 바비굴랭이 너무 맛있었어서, 와얀에게 로컬 사람들이 가는 와룽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와얀과 우리 사이의 매직 워드인 “로칼 로칼”을 외치니, 사얀 쪽 근처에 있는 와룽을 소개해 주었다.


부다페스트 호텔의 로비보이를 닮은 우리 숙소의 남자 직원이 우리를 다음 숙소로 태워주기로 했다. 양귀에 꽃잎을 꽂고 있었는데 미소가 너무나도 따뜻한 청년이었다. 와얀과 다른 직원들에게 몇 번이고 “마카시”라고 인사를 했고, 와얀과 직원분들은 늘 그랬듯 따뜻한 미소와 함께 “사마 사마”라고 답해주었다. 모터바이크를 타고 다음 숙소로 이동을 했다. 체크인 시간이 좀 남아있었기에 짐만 맡기고 바로 와얀이 말해준 WMJ(Warung Men Joel)로 태워달라고 했다.


매일 아침 종교의식을 마치고 귀에 꽃을 꽂는다고 했다


좁은 논 옆으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 와룽에 도착했다. 모터바이크를 태워준 직원들에게 얼마를 페이 하면 될까 물어보니 수줍어하며 쉽사리 가격을 말하지 못하는 듯했다. 사원 앞에 넓은 가든에 듬성듬성 테이블과 정자들이 있었고 동네 사람들이 한적하게 점심을 먹고 있었다. 치킨을 포함한 여러 재료를 밥 위에 올려먹는 나시 캄 푸르(Nasi Kampur)가 메인인 와룽(작은 레스토랑)은 가족들이 운영하고 있는 듯했는데 아버지로 보이시는 분이 메인 요리사 같아 보였다.


뷔페식으로 원하는 치킨요리와 누들 야채류 계란 등을 얘기하면 밥 위에 올려 담아주는 형태였다. 마당에는 건강해 보이는 닭들이 엄청 많이 뛰어다녔는데, 직접 기른 닭들로 요리를 하는 듯했다. 신선하고 맛있는 요리에 한 접시를 후다닥 해치웠다. 오늘도 우리의 ‘로칼 로칼’ 매직은 통했다. 바비굴랭 집에서는 내가 더 빨리 해치웠는데, 아얌 집에서는 은현이 더 빨리 접시를 해치웠다. 나는 돼지고기를 더 좋아하고, 은현은 닭고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박바비(돼지), 계아얌(닭)이라고 별명을 부쳐주었다. 입에 찰싹 들러붙는 귀여운 별명이었다.



식당에서 좀 걸어 나와 카페에 앉아 좀 쉬다가 은현은 짱구로 서핑을 하로 가고, 나는 우붓에서 요가를 하기로 했다. 그랩으로 짱구로 갈 차를 불러 나는 숙소에 먼저 내리고 은현은 짱구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여 요가복을 갈아입고, 요가원 근처로 향하는 숙소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숙소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첫 번째 숙소보다 조금 더 높은 지대에 위치한 숙소 연지 뷰가 엄청 좋았으며, 올림픽 수영 경기를 해도 될 만큼 넓고 긴 수영장과 절벽 위에 위치한 또 다른 수영장이 있는 멋진 곳이었다.


숙소에서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은현이 짱구에서 만나기로 한 서핑 선생님이지에게 왓츠앱으로 메시지를 보내 은현을 만나게 되면 메시지를 달라고 했다. 3시쯤이 되어 셔틀버스를 타고 세 번째 요가원인 래디언틀리 얼라이브로 향했다. 셔틀버스는 매시간마다 사라스와 띠 사원 주차장까지 운영을 하는 듯했다. 3시 셔틀버스를 탄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스무 살의 젊은 드라이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도착했다.


사라스와띠에 내려 10분 정도 걸으니 래디언틀리 얼라이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듣고 싶었던 4시 Yin & Yang 수업을 등록하고 요가원 내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우붓 요가 하우스나 요가반과는 좀 다르게 수련을 오래 하거나 인스트럭터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수업 시간이 다 되어 내가 등록한 수업이 진행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고가 굉장히 높고 탁 트인 전면에는 나무들이 빼곡히 보이는 아주 멋진 공간이었다.



영국 악센트를 쓰는 Christ Fox라는 분이 선생님이었다. 본격적인 수업 시작 전에 자기 옆에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웃고 안 아주라 고했다. 내 옆에 있는 호주에서 온 여자 친구와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자 친구와 짧게 인사를 나누고 안아주었다. 간단한 몸풀기를 하며 Yin & Yang 수업을 시작했는데, 몸풀기 동작이 흔한 요가 동작이 아닌 꽤 이상한 동작들이 많아서 다들 의아해하며 따라 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선생님이 이 수업에서는 우리는 요가 이기전에 사람으로서의 Movement(동작)를 먼저 할 것이며, 수업에 기대했던 것들이 있었다면 기대는 버려두고 그냥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Leave expectation, Just Experience it)


찻잔을 손위에 들고 있다 생각하고 요가 블록을 손 위에 올린 뒤 떨어트리지 않고 여러 가지로 움직이는 동작들과, 몸에 쌓은 부정적인 에너지를 털어내 주는 움직임 등 여태까지 보통 요가 수업에서 해 본 적 없는 자류 로운 움직임을 이어나갔다. 그러면서 크리스 선생님은 요가가 하나의 박스 라면 굉장히 큰 박스인데, 우리는 아사나라는 작은 박스 안에 갇혀 움직이고 있다며 자신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요가라는 작은 박스를 스스로 깨고 나가길 바란 다고 했다. 웃고 즐기며 땀 흘리는 가운데 행복한 요가 시간이 끝났다. 선생님이 해줬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가슴에 잘 간직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서핑을 하러 간 은현이 너무 보고 싶었고, 래디언틀리 얼라이브에서 함께 요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를 마치고 모터바이크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짱구에서 서핑을 마치고 은현이 먼저 도착 해 있었다. 오늘 저녁 로컬 야시장에 가기로 했어서 샤워를 하고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야시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드라이버에게 야시장에서 젤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봤더니, 사테 캄빙(Sate Kambing, 돼지고기 꼬치), 사테 아얌(Sate Ayam, 사테 아얌)을 추천해 주었다.


넓은 공터에 신나는 인도네시아 음악이 흘러나오고 여러 종류의 음식들과 옷 등을 파는 텐트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가족, 연인 등 정말 많은 발리 사람들이 모여 야시장을 즐기고 있었다. 은현과 나는 도장깨기를 하듯 빠른 속도로 텐트들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우선 박소부터 시작해 사테이 아얌, 사테이 캄빙을 먹고 디저트로 팬케익 같은 로티와 옥수수까지 30분 안에 모두 먹어치웠다. 양손 가득 맛있는 음식을 들고 먹으며 야시장을 돌 아자니 콧노래와 춤이 절로 났다. 특히나 달고 짠 땅콩소스에 찍어먹는 사테이 캄빙은 오래도록 기억이 날 맛이었다.


호텔로 돌아갈 택시를 부르기 위해 주차장서 주차비를 받고 있는 아저씨에게 택시를 불러줄 수 있냐 물었더니 자기 친구에게 전화해 주겠다고 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신나게 일 하고 계셔서, 택시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노래에 맞춰 같이 춤도 추고 셀카도 찍으며 긍정적인 발리니스의 기운을 한껏 받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요가 선생님이 수업 때 했던 얘기처럼, 발리에 와서는 기대를 내려두고 흐르는 대로 여행을 하고 있다. 지도도 없이 길을 잃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그들의 말에 따라 아무런 의심 없이 그곳으로 가보고. 정해진 목적지 없이 그냥 연결이 되는대로 따라가 보는 이 여행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그리워졌다. 내일은 또 어디로 우릴 이끌게 될까 기대를 하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