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화난 기록 ― 지나가지 못하는 차선

by Peppone

신호 대기 중에 멈췄다.

차선 위에 서 있을 때,

좌측으로 하얀 벽이 길게 보인다.


그 자리는

학동 참사가 있었던 자리다.


만약 반대편 차선을 타고 있었다면

그 벽은 우측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쪽 차선을 타는 게 여전히 망설여진다.


그 차선을 따라 내려오던 차량이

철거 과정에서 무너진 구조물에 휘말려

버스를 덮쳤고,

사람들이 죽었다.


인도 보수, 차로 통제,

주택 철거 이후의 공간 활용은

각각 개별 사안처럼 처리된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면

이 일대의 공간은 반복적으로

차량 수용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기억이 남아 있는 사람은

속도를 쉽게 회복하지 못한다.

공간은 복구되지만,

공포는 개인에게 남는다.


이 기록은 항의가 아니다.

분노를 부르기 위해 쓰이지도 않는다.


다만

이 도시가 무엇을 빠르게 정리하고

무엇을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는지를

조용히 남겨둔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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