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게 되는 도시

by Peppone



질문은 간단하다.

“광주 살이, 행복하신가요?”


이 질문이 불편해졌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답일지도 모른다.




이미지 캡션

2025 광주사회조사 결과를 다룬 기사 화면 캡처.

충장로를 걷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통계보다 먼저

이 도시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2025 광주사회조사 결과가 나왔다.

삶의 만족도는 낮고, 걱정은 늘었다.

일자리는 부족하고, 임금 만족도는 조사 항목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저축은 줄고, 생계 부담은 커졌다.

내 집을 마련하기까지는 8년 이상이 걸린다.


이 모든 문장은 새롭지 않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숫자로 확인되었을 뿐이다.



충장로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은 비슷하다.

급하지도, 들떠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여유가 있는 표정도 아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

버티는 얼굴이 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다.

피로다.


화가 나기에는 너무 오래 참아왔고,

기대를 걸기에는 이미 여러 번 실망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말을 아낀다.


누구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조차

괜히 설명이 필요해지는 분위기.

아무 편도 아니라는 말이

의심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건 토론이 사라졌다는 신호다.



조사는 이렇게 말한다.

정주의사는 높지만,

정주 만족도는 낮다고.


떠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여기서 잘 살고 있다는 느낌도 없다.


이 상태는 폭발 직전도, 회복도 아니다.

침전이다.


도시는 조용하고,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삶을 정리한다.

말 대신 계산을 하고,

기대 대신 거리를 둔다.



요즘의 불안은 소리 내지 않는다.

대신 체력처럼 빠져나간다.


정책을 논할 힘도,

비전을 비교할 여력도 줄어든다.

그래서 간단한 말이 오래 남는다.


“지금 힘들죠.”

“이건 당신 탓이 아닙니다.”

“당장 뭔가 드릴게요.”


그 말이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간단해서

사람들을 붙잡는다.


하지만 사람들 스스로도 안다.

그 말이 오래 가지 않을 거라는 걸.



그래서 더 말하지 않게 된다.

누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지도,

누구를 크게 비난하지도 않는다.


이 도시는 지금

분노의 도시가 아니다.

말할 힘이 줄어든 도시다.


그리고 그건

가장 늦게 알아차리지만

가장 먼저 위험해지는 상태다.



얼마 전,

광주에서 혼인신고를 하면

청년세대에게 200만 원을 지급한다는

카드뉴스를 보았다.


결혼을 축하하는 정책이라고 했다.

청년을 위한 지원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청년들이 느끼는 건

축하보다 계산이다.


200만 원이 필요한 이유가

사랑 때문이 아니라

생활 때문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동구에 한해서

결혼을 하면 천만 원을 준다는 말도 있었고,

아이를 낳으면 지원금을 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때도 사람들은 계산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계산기를 내려놓았다.


결혼이 늦어진 이유도,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도

돈 한 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액은 바뀌었다.

천만 원에서,

이백만 원으로.


하지만 바뀌지 않은 게 있다.

그 정책들이

왜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는 점이다.


이건 축하가 아니라

신호에 가깝다.


이 도시는

사람들이 왜 떠나는지보다

어떻게 붙잡을지만 먼저 계산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카드뉴스를 보고도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웃지도,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저

말을 아낀다.



사람들이 더 말하지 않는 이유는

복잡해서가 아니다.


불쾌해서도,

이해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그저

징그럽기 때문이다.


삶이 이렇게까지 계산의 대상이 되는 순간,

결혼도, 출산도, 정주도

정책 카드 한 장으로 호명되는 순간,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는다.


도망치지도 않는다.

싸우지도 않는다.


그저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이 오래된 원도심에서 산다는 것은

원래라면 필요 없었을 관계들을

매일같이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행정 때문에,

행정의 동선 때문에,

행정의 판단 때문에

불필요한 대면이 반복된다.


다른 구역에 살면서

차를 몰고 와

동구청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공무원들.


인근의 오래된 집들을 헐고

그 자리에 만들어진

관용 주차장들.


이게 원도심을 살리기 위한 풍경인지,

아니면 정리된 행정을 위해

사람을 비워내는 과정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정주권이 사라진 이 구역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결국 남는 것은

주차장과 행정뿐이다.



이 도시에서 사는 일 자체가

행정을 견뎌야 하는 일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설명하려 하면

의심받고,

질문하면

대치로 규정된다.


권리를 말했을 뿐인데

태도가 문제라고 하고,

질문을 했을 뿐인데

범죄자 취급을 한다.


그 순간 알게 된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이 생활 위로 내려와 버린 상태라는 걸.


그 피로는

분노로 터지지도 않고,

설명으로 풀리지도 않는다.


그저

축적된다.



이 시각,

금동에서였다.


정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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