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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이 아빠 Dec 26. 2016

큐슈에 제대로 빠져든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인스턴트 커피를 내리고, 식빵 한 조각을 먹는다. 손님들이 다 씻기를 기다렸다가 세수를 하고, 슈지상이 오면 전 날 특이 사항을 이야기하고, 산책에 나선다. 이제는 든든한 자전거도 생겨서 멀리까지 갈 수 있게 됐다. 

매일 매일 보는 거링 풍경, 익숙해진 분위기가 내 일상을 시작하게 했다. 이 생활도 정착이 되어가니 하루하루가 무엇을 할 지가 고민이 되었다. 돈벌이가 없어서 그런지 요즘 들어서는 더 가난해 진 것 같다.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점점 생활은 나날이 어려워져 정말로 일을 하고 싶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다보니 어느새 나는 가난해져 있었다.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돌아갈 날을 생각해 놓아서 이내 포기했다. 상담 할 사람이 필요했다. 먼저, 슈지상에게 물어보니 역시 그 물음에 대한 답만은 교묘히 피했다. 불법적인 일을 하고 싶지 않나보다. 고민은 이어졌고, 생활비가 마이너스 되어 갈 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투숙을 했던 한 손님이 제안을 해온 것이다. 

나는 주 2일은 야간에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을 했다. 집을 계약할 때, 하루에 4시간은 근무를 해주는 조건이 있었고, 그 댓가로 집을 얻을 수 있었다. 오후 6시부터 자유롭게 일을 했는데, 하는 거라곤 체크인 고객 맞이 하는 것과 문단속을 하는 것 그리고 손님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게 다였다. 그 날도 그랬다. 한국에서 오신 손님과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던 중 코드가 맞아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여행 주제로 물흐르듯 흘러갔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겠거니 했는데, 도쿄에서 새로운 형태에 여행사를 하고 있다고 하며, 큐슈쪽을 잘 아는 사람이 가이드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이드하면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이 분은 다른 형태에 여행이라며, 친구처럼 같이 다니고, 여행하고 안내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넌지시 나는 어떠냐 했더니, 해보겠냐며 되레 나에게 물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 현실이 됐다. 그 날로 나는 암묵적으로 그 분의 직원이 됐다. 불법적인 취업이었지만, 아무일도 없을 것이고 친구처럼 여행하면 된다고 오히려 안심을 시켜줬다. 

그 일이 있은 후 바로 정식으로 일이 들어오기 전까지 코스들을 짜보기 시작했다. 없는 돈을 쪼개서 기차 티켓을 구매해서 남으로는 가고시마, 서쪽으로는 나가사키, 북쪽으로는 시모노세키까지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여행을 다녔고 코스도 짜보고 중요한 것이나 인기 스팟은 일본 사이트를 통해서 알아 보았다. 사진도 찍어보기도 하고, 배경이 좋은 곳도 사진에 남겨 두었다. 말하는 것도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1주일이 지난 후 처음으로 일이 들어왔다. 여성 관광객 3명을 데리고 큐슈를 함께 했다. 하고 싶은 것과 코스 등을 미리 전달 받았기에 기차로 지하철로 배로 버스로 함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일반 패키지와는 다른 여행이었기에 체력에 부담이 있는 여행이었다. 그래도 대부분에 사람들은 많은 것을 보고 싶어 했기에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2~3일에 일정은 체력과의 싸움과도 같았다. 일정이 끝나고 돌아오면 게스트 하우스에 일도 있었기에 지치기도 했다. 말동무가 생겼고, 같이 여행도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어서 이 점은 즐거웠다. 

한달에 3~4번은 여행 스케쥴이 있었고, 고객들 평판도 좋아 '고맙다, 즐거웠다' 라는 글들도 많아 처음으로 내가 한 일 중에 보람차게 일을 할 수 있었다. 

큐슈에서의 일도 여행도 자리 잡히고, 봄이 돌아올 때 쯤 이제 이 곳을 떠날 때가 오고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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