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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Jun 10. 2024

0606 현충일

2024년 여름일기

오늘은 현충일.

집에 있는 날이다. 현충일이라고 하지만 특별한 감정은 없었고 그저 쉬는 날 같았다. 날은 좋았고 하루가 내 것 같았다.


오늘 일기는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 명색이 여름일기인데 여름 내용을 하나 쓰기로 했다.

창가로 가 엄마가 심어놓은 식물을 보았다. 요새 훌쩍 자란 게 보였더랬다. 가까이 보니 작은 열매가 달려있었다. 토마토였다. 아직 녹색이고 자그마했다. 열매가 된 지 얼마 안 된 크기. 여름이 지나면 붉게 되겠지 싶었다.


‘여름에 어울린다. 오늘은 이거다. 나중에 또 붉게 자란 모습도 담아야지.’

마침맞은 소재를 찾아 뿌듯했다.


저녁 시간. 목요일에 늘 보는 ‘한국인의 밥상’을 보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은 현충일 특집으로 꾸며졌다. 한 할머니가 나왔는데, 22세의 오빠가 전쟁에 나가 돌아오지 못했는데 얼마 전 유전자 검사로 유해를 찾아 오빠를 위한 음식을 만드는 내용이었다. 과거 회상 장면, 전쟁기록 장면, 할머니의 내레이션이 나왔다. 마음이 먹먹해지고 있었다. 잊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 전쟁이 있었고, 누군가는 지금도 그 전쟁의 고통을 기억하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보시며,


“아버지도 저렇게 어딘가에 묻혀있으시겠지…”


하셨다.

그랬다. 우리 엄마도, 외할머니도, 그러니까 우리 집도 전쟁의 영향을 받은 집이었다.


외할아버지는 625 전쟁 때 행방불명되셨다. 외가는 파주. 하루는 남한군이 하루는 북한군이 오가며 싸우던 전장지에 한가운데였다. 혹 납북되셨을 수 있어 오래전 KBS 이산가족 찾기에도 나갔었고, 통일부에 DNA와 인적사항도 남겨놓았다. 하지만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징용되어 있던 곳에 폭탄이 떨어졌는데 그때 돌아가셨을 거라 했다. 같이 끌려갔던 동네분은 탈출해서 나왔는데, 외할아버지는 그러지 못하셨고 이후 폭탄이 떨어졌다 했다. 외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되어 끌려갔어도 기적처럼 돌아오신 분이었는데, 한국전쟁으로 돌아가셨던 거다. 하지만 유해는 찾지 못해, 아직도 생사를 알지 못하는 행방불명의 상태이다. 외할아버지의 묘도 가묘로 아직 비어있다.


얘기를 들어보면 외할아버지는 참 다정했던 분이셨던 거 같고,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를 참 많이 좋아하셨던 거 같다. 한 번은 외할아버지가 강제징용 당했을 때 외할머니가 아기인 엄마에게 새 한복을 입히고 할아버지를 보러 갔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외할아버지가 엄마를 안고 참 이뻐했었다고 했다. 아마 그게 엄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외할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이리라.


조용히 밥을 먹으며 티브이를 봤지만 엄마가 먹먹해하는 게 느껴졌다. 난

“외할아버지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했다.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그리고 조용히 티브이를 보며 계속 밥을 먹었다.


티브이에선 유복자였던 다른 출연자가 나와, 한 주민의 신고로 부친이 발견되었고, DNA검사로 아버지 유해를 찾았다 했다. 당시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도 아버지가 있다’하고 소리치고 싶었다며 절절한 감정을 말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상실감과 결핍으로 힘들었을 시간과 세월이 느껴졌다.

아마 엄마도 그런 것이 있었겠지. 외할머니와 엄마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은 사랑을 줬다고는 하지만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을 거였다.

외할아버지를 찾을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면 엄마도 깊이 어딘가에 묻혀있던 상실감이나 서러움이 풀어지고 사라지지 않을까.


아침에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현충일이 그저 휴일이 아니란 걸 저녁때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전쟁이 있었고, 그로 인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엄마의 어린 고모와 삼촌은 동네에 묻혀있던 지뢰가 신기해 보다가 한순간에 사라지셨다. 엄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자녀 셋을 잃었고, 외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어린아이를 키워야 했으며, 엄마는 아빠 없이 자라야 했다.

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전쟁이 없었다면, 외할아버지가 계셨다면, 엄마의 삶이 그리고 외할머니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의 삶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나와 상관없다 느꼈던 현충일이, 오늘 그렇게 내게 이야기를 건넸다.



‘한국인의 밥상’이 끝나고 다른 프로를 틀었는데, 출연진들이 게임을 해서 경비를 내는 여행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아 채널을 이내 돌렸다. 상을 치우고 조금 있으니 북중미 월드컵 예선 축구경기를 했다. 결과는 싱가포르에 7:0 대승.

짧은 시간, 한국전쟁에서 월드컵예선 대승까지. 수십 년간 우리나라도, 오늘 저녁시간 우리 집도, 영화처럼 짧지만 긴 시간을 보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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