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일기
2024.06.18.(화) 맑음
퇴근 직전, 어떤 사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 사람으로 인해 불편했던 기억과 기분이 떠올라 그런 건지, 불편한 경험을 한 그분의 기분이 느껴져서인지, 내가 그 사람에게 갖고 있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인지, 그냥 그런 대화가 불편해서였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집으로 가던 중 잠시 친구네 들렀고, 엄마와 같이 보러 가라며 공연표를 선물 받았다. 그 친구덕에 피아노 공연도 종종 보는데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귀한 선물까지 받다니. 선물도 선물이지만 그 마음이 더 고마웠다.
정말 집으로 가는데, 8시가 됐는데도 아직 태양의 기운이 느껴졌다. 역시 하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주차 후 복잡한 마음과 친구의 선물을 품고 집으로 올라갔다.
13층. 때앵. 드르르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어디선가 희미하게 김치찌개 냄새가 났다. ‘누구네서 저녁으로 김치찌개를 해 먹나 보다’ 싶었다. 그렇게 복도를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김치찌개 냄새가 조금씩 진하게 느껴졌다. ‘냄새 좋다. 맛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저 앞에 우리 집 문이 열린 게 보였다. 설마 설마 하며 집으로 들어갔는데, 그 ‘누구네’가 우리 집이었다.
와우!
살면서 어디선가 나는 김치찌개 냄새를 맡으며 맛있겠다고 한적은 많은데 우리 집인 적은 처음이었다.
맛있게 냄새나는 그 김치찌개를 먹게 되다니.
얼른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식탁에 앉았다.
오랜만에 먹는 된장김치찌개였다. 된장하고 멸치를 넣어 끓이는, 깔끔하고 김치찌개의 감칠맛이 살아있는 경기도식 김치찌개이다. 우리 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매력만점 김치찌개.
며칠 전 당근에서 받은 김치로 끓인 거라 했다. 당근에서 받길 잘했다 싶었다.
식탁엔 김치찌개까지 9첩 반상이 있었다. 토마토 계란 볶음, 배추김치, 꽈리고추 새송이버섯 간장조림, 해조류 무침, 마늘장아찌, 블랙올리브, 토마토와 계란과 치즈 그리고 블랙 올리브가 들어간 피자모양 반찬, 김무침.
엄마가 요리를 좋아하셔서 새로운 반찬도 잘 만드시고, 특히 나물 반찬을 잘하신다. 그 덕에 난 늘 풍성히 나물과 반찬을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물도 좋아하고 말이다.
식사 시작!
김치찌개와 계란은 찰떡궁합. 어떻게 이런 맛이 날까. 이건 세계 사람 누가 먹어도 인정할 만한 조합임이 틀림없다.
반찬을 모두 맛보며 김치찌개를 완찌개(?)했다.
한국사람이라 그런가, 역시 우리나라 음식이 최고란 생각이 자주 든다. 다양하고, 질리지 않고, 건강적으로도, 맛으로도 훌륭한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해주어 맘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음식을 먹는 건 어쩌면 영혼을 채우는 하나의 방법
복잡했던 마음을 중화시키고, 괜찮은 현실로 돌아오게 해 준 고마운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이 있어 그래도 지낼 수 있고, 이런 시간으로 사는 게 진짜 사는 거다란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과 별 상관없는 이들로 인해 마음 어지럽고 복잡해지고 싶지 않다.
내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를.
매번 이런 근사한 저녁을 먹고 있거나 먹을 수 있는데,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던 시간이 한동안 있었다. ‘이 시간을 좀 더 소중하게 여기고 집중해서 보내야지.’란 생각이 자주 든다.
오늘 나의 저녁 시간은 매번처럼 근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