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일기
얼마 전, 자원봉사 선생님이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늘 좋은 마음으로,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을 챙겨주시는 분인데, 이번엔 누군가 그 선생님을 챙겨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심적으로나마 위안이 될 수 있게 보양식을 전해드리면 어떨까 싶었다.
퇴근 후 회사 근처 흑염소 전문 식당에 갔다. 식당은 산 아래,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흑염소탕 하나를 주문해 포장하고 나오는데, 입구에서 산 새소리와 함께 삐약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커다란 갈색 닭 한 마리가 중병아리 4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처음 식당에 왔을 때, 건물 옆 으슥한 곳에서 닭이 알을 품고 있었는데 그 알들이 부화한 모양이었다.
병아리들은 네 마리 모두 가지각색이었다. 밝은 노란 깃털, 어미 닭과 비슷한 깃털, 호랑이처럼 얼룩덜룩한 깃털, 반반 섞인 깃털 등, TV속 양계장의 병아리들과 사뭇 달랐다. 자연 속에서 자라는 닭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인 건가 싶어 신기했다.
어미 닭은 건물 벽을 따라 위풍당당하게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고, 병아리들은 엄마 닭 주위를 맴돌며 따라다니고 있었다. 어미 닭이 가끔 바닥을 쪼았는데, 병아리들도 뽈뽈거리며 다니다가 어미 닭처럼 바닥을 쪼았다. 닭과 병아리의 산책이라니. 도심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아니, 시골에서도 드물 광경이었다.
그런데 닭의 뒷모습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얼마 전 먹은 치킨과 겹쳐 보이며 ‘저 부위가 봉, 저 부위가 날개, 저 부위가 닭다리가 되는 거구나.’했다. 그런 내 모습이 스스로도 당황스러웠고, 내가 세상에 많이 물들었구나 싶었다. 그러다 ‘내가 먹은 치킨과 저 닭이 다르지 않은데, 어떤 닭은 공장에서 자라 튀겨지고 어떤 닭은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는구나.’싶어, 어디를 봐도 공평함은 없을 거 같은 다른 운명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살아있던 존재를 먹을 때, 그 생애 대한 존중과 희생에 대한 감사로 먹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나 자신에게 당부해 주었다.
그렇게 내가 아주 잠깐의 사색을 하는 동안, 닭 가족은 건물 벽면이 끝나는 곳에 다다랐다. 어미 닭은 더 가지 않고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거기까지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인 거 같았다.
다시 입구에 도착한 어미 닭은 그곳에 한동안 서 있었는데, 직원의 설명에 의하면 입구 옆 풀숲이 그들의 임시거처였다. 그런데 근엄한 어미 닭과 달리 호기심 많은 병아리들이 식당 입구에서 쫄랑거리며 있다가 가게로 하나둘씩 들어가기 시작하는 거였다. 닭가족이 식당에 들어갈 것인가? 이후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엄마 닭은 그런 병아리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방향을 바꿔, 입구 우측으로 걷기 시작했다. 현명한 어미 닭은 어디까지 들어가면 되는지, 어디는 안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병아리들은 재빨리 식당에서 나와 다시 어미 닭을 따라갔다.
어미 닭은 건물 옆에 놓인 의자에 날아올라 앉으며 병아리들을 보았는데, 조금 큰 병아리는 엄마를 따라 날아오르기도 했다. 식당직원이, 어미 닭이 높이를 보고 병아리들이 올라올 수 있는 곳에 올라가며 교육을 시켜준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어미닭은 나는 법, 먹는 법, 안전한 곳을 알려주며 병아리들에게 세상사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닭 다운 모습이었다. 포장되어 오는 치킨이 아니고, 좁은 케이지에 갇혀 평생을 보내는 닭이 아니고, 누군가의 식량이 되기 위해 키워지는 게 아닌, 자연 속에 존재하는 닭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이 닭가족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른 수많은 닭들보다 풍요롭기에 그들이 지금을 기억하기를, 그리고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흑염소탕을 갖고, 닭가족이 있는 진짜 숲을 뒤로하고 다시 빌딩 숲으로 나왔다. 새소리와 풀내음이 가득한 곳이 진짜 존재했는가 싶었다.
자원봉사자 선생님께 탕을 전해드렸는데, 반가워하며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드리길 잘했다 싶었다. 흑염소탕덕에 누군가의 기뻐하는 모습도 보고, 생각지도 못한 자연을 만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