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부터 적당한 오후까지 점심시간이 껴 있는 시간대였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시점은 어김없이 점심때였고 우리는 배를 채우고 돌아오고는 했다.
학원은 큰 원룸이 두 개 붙어있는 구조였고 비슷한 나이대별로 한 반이 되었다. 내가 있던 반은 여자 선생님 두 분이 담당해 주셨다. 지금 와서 떠올려보면 갓 대학생이 된 이들이었다. 5살 정도면 아우 형님 부를만한 터울이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게다가 신분이 달랐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은 아이와 어른처럼 좁힐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있는 관계였다.
한 선생님은 까무잡잡하고 씩씩했다.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를 분석했고 고칠 점이 있으면 집어서 얘기해 줬다. 검은 티와 워싱이 들어간 청바지를 즐겨 입었다. 다른 선생님은 하얗고 유연했다.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를 항상 반묶음 하고 다녔다. 입꼬리는 언제나 옅게 올라가 있었고 조용조용하게 부족한 점을 알려줬다. 나는 말수가 없는 학생이어서 딱히 질문도 하지 않았고 피드백을 받아도 대답 정도만 했다. 도착해서 할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마저 끝낸 뒤 짐을 챙겨 나오는 학생이었다.
그런 내가 뜻밖의 곳에서 호기심이 발동한 적이 있다.
이 선생님들이 점심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올 때, 꼭 손에 무언가를 쥐고 들어왔다. 처음에는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거기까지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그 음료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차가웠는지 플라스틱 컵 겉면에 물방울이 옹기종기 매달려 이내 컵홀더를 적셨다. 빨대로 한 모금씩 마시는데 투명하고 까만 액체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물처럼 마시는 걸 보니 약처럼 쓰지는 않을 거고 까만색이니 달지는 않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만 할 뿐이었다. 왜 먹는 걸까, 콜라도 아닌데 왜 간장처럼 거무튀튀할까, 왜 다른 음료는 먹지 않을까 혼자서 대답 없는 질문을 했다. 컵홀더가 보라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어도 찰랑거리는 불투명한 검정 액체 음료는 그대로였다. 그 음료를 들고 내 자리로 와서 봐주실 때면 "저, 선생님 근데요 저건 뭐예요? 뭘 먹고 있는 거예요?"라고 물어보고 싶은 욕구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소심했던 나는 이내 질문을 삼켰다. 맨날 웃고 있던 긴 머리 선생님한테 물어보려다가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만뒀다. 그 학원을 다니는 동안 결국 질문 한 번을 못해서 음료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 채로 방학이 끝나버렸다.
가끔씩 여름날의 그것을 보면 그 시절 내가 생각난다. 그토록 숫기가 없어 궁금한 것도 물어보지 못했던 내가. 그리고 그 선생님들은 지금쯤 뭘 하며 살고 있을까 하는 막연한 그리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