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나.. 러시아 갔었잖아?
분주한 메인 대로변에서 몇 골목을 꺾어 들어가도 카페가 곳곳에 보인다.
주택가 안쪽이나 대학가 부근에서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카페도 있다. 정감 가는 나무 테이블, 페인트가 벗겨진 손잡이가 그 시간을 대신 말해준다. 이런 곳들은 대게 음료에 더 집중하는 편이라 진열된 케이크는 어딘가에서 납품받아 오는 곳들이 많다. 바스크 치즈케이크나 마들렌, 티라미수 외에도 자주 눈에 띄는 디저트가 하나 있는데 바로 '꿀케이크'이다. 처음에는 생소했다. 케이크의 단맛은 오로지 설탕에서 난다고 생각했는데 꿀을 재료로 했다니. 뭉근한 꿀맛이 나는 케이크라고? 심지어 비주얼은 크레이프도 아닌 것이, 층층이 쌓인 빵 같은 시트가 텁텁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썩 끌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딘가 낯익다. 아 맞다..! 나 예전에 러시아 갔었지?
2019년쯤 근거리 여행지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가 막 뜨는 분위기였다. 일본, 중국, 동남아는 내가 가지 않아도 익숙한 나라여서 끌리지 않았다. 색다른 지역을 찾다가 지도에서 생뚱맞은 러시아가 눈에 들어왔다. 이동 시간도 짧았고 무엇보다 경비가 많이 들지 않아 바로 인원을 모아 다녀왔다.
4박 5일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젖어 들기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버스와 택시는 최대한 멀리하고 각자 카메라를 메고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출국하기 전, 서로 가보고 싶은 곳 몇 가지를 골라 왔는데 그중 하나가 꿀케이크를 파는 디저트 가게였다. 메도빅이라고도 불리는 꿀케이크는 은은한 단맛이 도는 폭신한 식감의 케이크였다. 빵 같은 시트와 크림이 여러 층으로 번갈아 쌓인 모양새였고 맨 윗부분에는 잘게 가루 낸 과자 부스러기가 올려져 있었다. 이후 다른 카페에서 다른 꿀케이크를 먹어보았는데 꿀맛이 나는 케이크일 뿐 크게 감동스럽지는 않았다. 케이크에 담백하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싶지만 그런 케이크였다.
꿀 케이크 옆 배너에서 [냉동보관 용이, 별도 조리 필요 없음, 재고 최소화]와 같은 홍보 문구를 볼 때면 나의 떨림 가득했던 추억이 차가운 현실로 강제 소환되는 기분이지만 동시에 반가운 마음이 든다. 이제는 갈 수 없는 여행지가 되어서일까 한편으로는 아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