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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 아이스크림

여전히 망설이는 그러나 결국은 쉬운

by 정확한느낌

차를 타고 한참 달려 도착한 곳.

논과 밭을 지나고 퇴비 냄새를 맡아야지만 갈 수 있었던 곳. 그곳에 가야지만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추로스, 구슬 아이스크림, 슬러시.

슬러시는 빨갛고 시퍼런 색소 때문에 먹으면 엄마가 싫어하셨고 추로스와 구슬 아이스크림은 집 근처에서 접하기 어려웠다. 일 년 중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그날은 달달한 군것질을 먹어도 눈 감아주는 특별한 날이었다.


지붕이 아래쪽으로 곡선을 띄고 있는 구슬 아이스크림 부스는 지나가면서도 괜히 시선이 꽂혔다. 비싸다는 생각에 사달라고 말하기가 괜히 껄끄러웠다. 엄마가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두리번거리면서 맛을 골랐다. 네댓 가지 큰 원기둥 모양의 통에는 동글동글하고 알록달록한 아이스크림이 종류별로 진열되어있다. 초코를 좋아해서 거의 초코 딸기인지 초코 바나나인지를 골랐을 거다. 한 번뿐인 기회이기에 신중해야 한다. 고심 끝에 맛을 고르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는 직원이 컵에 드릴까요 모자에 드릴까요 물어본다. 모자에 달라고 한다. 그래야 다 먹고 난 모자 그릇은 집까지 가져갈 수 있다.

조심스럽게 받아 들고 한 스푼 떠서 호로록 들이마셔본다. 아이스크림이 알알이 딸려온다. 되도록이면 손바닥에 받쳐 들기보다는 모자챙 부분을 잡고 있어야 빨리 녹는걸 그나마 늦출 수 있다. 혓바닥 위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차가운 구슬들은 어느샌가 녹아 없어진다. 그렇다고 이걸 아끼겠다고 느리게 먹다가는 구슬들이 녹으면서 엉켜 덩어리 째 붙기 때문에 재밌는 식감을 놓칠 수 있다. 적당한 속도가 중요하다.


지금은 관광지는 물론 집 앞 편의점에서도 구슬 아이스크림을 판매한다.

뒷사람 기다릴까 봐 급하게 고를 필요도 없고 옆에서 재촉하는 사람도 없다. 심지어 이제는 원하면 두 개나 먹을 수도 있고 몇 개 더 구매해서 집에 두고 언제든지 꺼내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만큼 쉽게 손이 가지를 않는다. 어린 내가 하염없이 바라만 보던, 그리운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눈빛으로만 훑고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만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은 터무니없이 쉬운 일이라고. 그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과거에 어려웠던 일이 여전히 버거울까.

망설이던 그 걸음이 아직도 무거울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나 여태껏 암담할까.

매몰되지 않고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1cm라도 전진은 전진이다. 그 힘들었던 마음도 시간도 결국은 흐려져 갈 것이고 가벼이 증발될 것이다.

달콤함을 맛보고 싶으면 아이스크림 가게로 가야 한다. 오랫동안 망설였지만 훗날 뒤돌아보면 까짓 거 그냥 해봤지 라며 미소 지을 수 있는 날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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