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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탕

스트레스에는 역시

by 정확한느낌

대학생 시절, 식사 메뉴 정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야 새롭지 학생식당 김밥도 질렸고 학교 근처 밥집들도 그만 가고 싶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다고 때우는 식으로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만두로 배를 채우기도 싫었다.

그날도 공강 시간에 뭘 먹을까 친구랑 근처를 배회하다가 등굣길 버스정류장 오가던 골목까지 들어가게 되었는데 우연히 처음 보는 음식 사진이 실린 입간판과 마추 지게 되었다. 매일 지나다니던 건물이었는데 식당이 2층이어서 몰랐었다. 메뉴를 주욱 보는데 당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세 글자가 눈에 띄었다.


'마라탕'


마라탕이 뭐고.. 또 마라샹궈는 뭐야?

몰라? 한 번 가볼까?


낯선 음식에 전혀 거부감이 없었던 우리는 흔쾌히 계단을 올랐고 가게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었거나 한 팀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국말이 서투른 직원 언니야가 어서 오세요라며 주방 발을 걷으며 총총 나왔다.

우리에게 먹는 방법을 아는지 물었고 처음 방문이라고 답하니 이리 오라며 손짓했다.

바구니를 쥐어주며 "먹고 싶은 거 여기 담아서 주세요. 탕으로 해드려요 샹궈로 해드려요. 맵기 조절 어떤 거로 해드릴까요. 고기 추가하시나요." 단계별로 질문을 했다. 볶음이라는 말에 샹궈로 주문했고 양이 모자란 듯싶어 사이드 메뉴로 꽃빵을 추가했다.


마라샹궈 나왔습니다-

손잡이 달린 널찍하고 얇은 냄비에 아까 골랐던 재료들이 빨갛게 볶아져 나왔다. 찜통에 찐 꽃빵은 뽀얗고 통통한 모습으로 나왔다.

둘이 긴 젓가락을 손에 쥔 상태로 얼굴을 갖다 대고 유심히 관찰했다. 알싸한 향기가 벌써 코부터 찌르고 들어왔다. 호기심 반, 걱정 반 크게 한 젓가락 들어 면치기를 시도했다. 보통 맛으로 주문했는데 꽤나 매콤하다. 따뜻하고 부들부들한 꽃빵을 결대로 찢어 샹궈를 소복이 쌓는다. 와앙- 진실의 미간은 찌푸려졌고 이 날부터 우리의 마라사랑은 시작되었다. 거의 튀긴 꽃빵만 먹었던 터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꽃빵조차 촉촉한 반전을 주었고 먹으면 먹을수록 뱃속이 얼큰해졌는데 이상하게 스트레스는 날아갔다.

그런데 희한하게 자꾸만 혀가 얼얼해졌다.


혀는 안 매운데, 느낌이 이상해. 상한 건가?

어! 나도 나도 혀 끝이 얼얼해. 그런데 맛있어.


지나가던 직원 언니가 무심히 알려줬다. "그게 '마라'라서 그래요. 향신료가 얼얼하고 매워요."


여러 가지 향신료로 기름을 낸 향유를 베이스로 팔각, 정향, 생강, 산초 등 향신료를 넣고 고추, 두반장 등으로 맛을 내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마라 소스의 매력. 요즘에는 중국당면, 넓적당면, 분모자, 푸주, 건두부 등 다채로운 재료가 많이 생겨 씹는 맛까지 보장한다. 극강의 쫄깃거리는 면의 식감은 엄청나게 중독적이다. 간혹 땅콩소스도 주는 곳이 있는데 건더기를 푸욱 찍어먹으면 진한 고소함이 부드럽게 퍼진다. 마라는 어느 날에 먹어도 맛있다. 추운 날에는 국물 있는 탕으로 속을 풀고 더운 날에는 매콤하게 볶은 샹궈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이면 여태껏 쌓였던 응어리가 싸악 씻겨 내려간다. 입술은 양념으로 발갛게 맨질 거리고 입속은 얼얼한데 젓가락을 멈출 수가 없다. 여기에 꿔바로우까지 더한다면? 단짠의 무한 굴레에 스스로 빠지고 만 격이다. 너무 맵다 싶으면 달콤하고 바삭한 꿔바로우로 진정시키고 입 안이 새콤달콤 해졌다 싶을 때 다시 화끈한 마라를 먹는다.


꽤나 오랜 시간이 흘러 머릿속에서 그 가게가 잊힐 때쯤, 그 친구가 말해주었다.

마라샹궈가 대한민국을 흔들고 나서 그 사장님은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아 자리를 옮겼고 두 층을 통째로 쓰는 부자 사장이 되었다고 말이다. 너무나도 궁금해 다시 가보았지만 아쉽게도 그때 그 충격적인 맛이 나지 않았다.

그 집 이후 무수히도 많은 마라집을 다녀봤지만 솔직히 예전의 그 집만큼 맛있게 매운 집을 만날 수가 없었다. 추억의 맛일까, 내 입맛이 레벨업을 한 걸까.









한 번씩 꼭 생각나는 마라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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