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동화 부문 선정작
은조는 수아 엄마를 따라 현관 옆 방으로 들어갔어요. 하얀색 커튼에 둘러싸인 커다란 침대가 보였어요. 천장과 벽에는 별사탕 전등이 가득했지요.
수아 엄마가 방을 나가면서 버튼을 누르자, 별사탕이 노랗게 빛났어요. 밤하늘 속에 누워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은조는 이 밤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어요.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솔솔 풍겼어요. 저녁을 잔뜩 먹었는데도 또 배가 고팠어요. 은조는 침대맡을 빼곡히 두르고 있는 빨간색 캐러멜을 정신없이 뜯어 먹었어요.
문틈 사이로 말소리가 새어 들어와요. 웃음소리도 섞여 있었죠. 거실 안쪽 방에서 수아 엄마가 수아에게 책을 읽어주는 소리였어요. 은조는 점점 더 작아졌어요. 손톱만 해진 은조가 침대보를 타고 내려왔어요. 잠이 오지 않았거든요.
은조는 거실로 나왔어요. 소파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죠. 이제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수아네 가족이 모두 잠들었나 봐요.
부엌으로 향한 은조는 식탁 밑에서 과자 부스러기를 모으고 있는 누군가와 마주쳤어요. 열다섯쯤 되어 보이는 곱슬머리 소년이었는데, 은조처럼 손톱만 한 키에 머리 아래로는 밤색 개미 몸이 붙어 있었어요.
곱슬머리가 말했어요.
“먹을 걸 찾고 있니?”
“아니. 그냥 심심해서.”
“맞아. 달콤집은 맛있긴 한데 재미가 없어. 우리 방에 놀러 올래?”
은조와 곱슬머리는 벽과 바닥 사이의 작은 틈으로 들어갔어요. 동굴 같은 길을 따라 내려가자 아늑한 방이 나타났어요.
“여긴 우리 가족이 지내는 방이야. 내 이름은 밤구슬이고.”
동굴 방에는 다섯 남매가 살고 있었어요. 하나같이 동그란 배가 구슬처럼 반짝거렸어요.
밤구슬이 밥상 위에 과자 부스러기를 내려놓자, 동생들이 맛있게 먹기 시작했어요.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땋아 내린 막내가 은조에게 부스러기를 내밀었어요. 은조는 다섯 남매 사이에 어깨를 맞대고 앉아 부스러기를 먹었어요.
“수아네 집에 누가 살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우리 집에 수아네가 살고 있는 거지. 흙내음시가 달콤시로 바뀌기 전부터 우린 대대로 이 집에 살고 있었으니까.”
“여기가 너희 집이라고? 근데 꼭 몰래 숨어 사는 것 같아.”
“수아 엄마가 개미를 끔찍하게 싫어하거든. 우리 엄마 아빠도···.”
밤구슬이 동생들 눈치를 살피더니 말꼬리를 감췄어요.
“아무튼 부스러기라도 먹고살려면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아. 개미 몸이 되고 나서부턴 이상하게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그럼 너도 나 같은 사람이었어? 작아지기 전에, 진짜 내 모습 말이야.”
은조는 자기가 원래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 기억하려 애쓰며 말했어요.
“그랬지···. 오래전, 비가 억수로 내리던 밤에 수아네가 우리 집에 찾아 왔어. 여행 중에 갑자기 차가 고장 났다면서. 쫄딱 젖은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부모님이 따뜻한 저녁 식사와 잠자리를 내주셨어. 그런데 그날 밤부터 몸이 줄어들더니, 어느새 이렇게 되어버렸어.”
은조는 깜짝 놀라 자기 배와 다리를 내려다보았어요. 다행히 아직 개미로 변하진 않았어요.
밤구슬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어요.
“우울한 얘긴 그만하고, 이제 슬슬 놀아볼까?”
밤구슬이 몸을 동그랗게 말자, 어린 동생들이 엉덩이로 밤구슬을 밀며 구슬치기 놀이를 했어요. 은조는 남매들과 섞여 신나게 놀았어요. 침대에 옹기종기 누워 밤구슬이 직접 쓴 『용감한 개미인간의 모험』 책도 읽었지요.
막내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어요. 눈을 비비던 은조도 깜박 잠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