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동화 부문 선정작
어느덧 새벽이 깊었어요. 잠에서 깬 은조가 수아네 부엌으로 돌아왔어요. 배웅을 나온 밤구슬에게 은조가 말했어요.
“정말 특별한 밤이었어. 날 가족처럼 대해 줘서 고마워.”
“가족이 별거니? 같이 먹고 자면 다 식구지. 우린 이제 한 가족이야.”
밤구슬이 씨익 웃었어요.
밤구슬은 새로운 가족을 환영하는 춤을 췄어요. 방금 만든 전통이라면서요. 달빛이 비치는 부엌 바닥을 무대 삼아 엉덩이를 빙빙 흔들었어요. 엉덩이에서 반사된 빛이 벽에 부딪히며 나비 무늬를 만들었어요.
은조도 구슬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고 또그르르 식탁 밑을 굴렀어요. 밤구슬와 한 가족이 된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했지요.
그때였어요.
커다란 파리채가 순식간에 밤구슬을 덮쳤어요.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서는···. 내 집에 불결한 개미가 돌아다니는 꼴은 정말 참을 수 없어!”
수아 엄마가 납작해진 밤구슬을 휴지에 싸서 화장실로 걸어갔어요.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은조는 식탁 다리 뒤에 몸을 숨겼어요.
밤구슬이 춤을 추던 자리에 수아 엄마가 소독약을 뿌렸어요. 걸레로 박박 문질러 닦다 말고 한 곳을 노려보았어요. 수아 엄마는 은조가 앉았던 의자에도 소독약을 뿌려댔어요.
은조는 마치 자기 몸에 소독약이 닿는 것 같아 부르르 어깨를 떨었어요. 수아 엄마가 콧노래를 부르며 방으로 들어가자, 은조는 온 힘을 다해 동굴 방으로 달려갔어요.
은조와 동굴 방 식구들은 수아네 부엌에 모여 눈물을 흘렸어요.
막내가 말했어요.
“밤구슬 오빠는 참 친절했어.”
다른 식구들도 한마디씩 보탰어요.
“재밌기도 했지.”
“잊지 못할 거야.”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던 은조가 코를 킁킁댔어요. 어디선가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 달콤한 냄새가 솔솔 풍겼어요. 냄새를 좇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식탁 다리에 한 줄로 박혀 있는 빨간 사탕을 보았어요.
문득 할머니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어요.
“하나만 약속하렴. 그 집에 있는 붉은 사탕과자는 절대로 먹지 않겠다고.”
은조는 그제야 할머니와의 약속을 떠올렸어요. 응달집에서의 추억들도 아롱아롱 생각났어요. 진흙에 약쑥을 섞어 만든 집이었지만, 응달집에 사는 동안 은조는 사람들이 말한 쓴 내를 맡아 본 적이 없었어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향기가 가득할 뿐이었죠. 할머니와 이모가 몹시 보고 싶었어요.
배에서 또 꼬르륵 소리가 들렸어요. 배꼽을 문지르는데 느낌이 이상했어요. 아래를 내려다보니, 은조 몸이 개미로 변해 있었어요. 와락 눈썹이 구겨졌어요. 동그랗고 반짝이는 밤색 배를 팡팡 내리치며 은조가 소리쳤어요.
“배고파. 배고파. 너무 배고파서 돌아버리겠어! 이 집을 몽땅 먹어치워도 모자랄 정도야!”
동굴 방 식구들도 은조를 따라 배를 두드리며 아우성을 질렀어요.
“집을 먹어치우자!”
“몽땅 먹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