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같은 달콤함, Miss Dior by Christian Dior
여자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럭셔리 브랜드가 있다. 나는 Dior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 대학을 막 입학한 나에게 아버지가 선물해 준 가방이 디올의 핑크색 큰 가방과 겉 면은 검은색이고 속은 빨간색인 디올의 장지갑이었다. 그 당시에는 쌈지나 잠뱅이, 쟌스 스포츠, 캘빈 클라인 같은 우리 또래 브랜드의 디자인과 거리가 멀어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배부른 소리였다.
내가 대학생이던 세기말에는 우리나라가 이제 막 세계화를 외치며, 어학연수도 조금씩 가기 시작하고, 배낭여행도 조금씩 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비싼 향수를 조그마한 병에 덜어서 10000원에 팔기도 했다. 그 당시 미니어처 향수를 열심히 모으는 재미도 있었다. 지금이야 샘플로 주는 향수는 빨래 말릴 때 쓰지만 그 당시에는 미니어처 향수 손목에 한 번 뿌리는 것도 귀했다.
화장을 처음으로 배웠다. 시대를 앞서 갔던 엄마와 아빠는 그 당시 샤넬인가? 에스티 로더인가? 에서 돈을 주고 하는 메이크업 강의를 듣게 했지만, 똥손인 나는 화장하고 학교를 가면 친구들이 놀렸다. 패왕별희냐고... 그게 벌써 아주아주 옛날이야기인데 나는 어제 이야기 같다. 결혼을 하지 않은, 아니 못한 나는 정신연령이 그때에 머물러 있다. 더도 덜도 아닌 20살인 그때 말이다.
고3 졸업 직전 면허를 따서 첫 운전을 하고, 첫 여권을 발행해서 유럽 여행을 가고(그때 처음으로 인천 공항이 개항해서 비행기 브리지가 문제가 생겨 비행기 안에 장장 6시간을 그냥 있었다), 잘 생긴 남자를 보면 설레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나중에 꼭 남자와 와야지 싶고, 있지도 않은 남자친구를 위해 미니어처 향수를 사모으던... 그때 그 시절 그대로 나는 머물러 있다.
가끔 결혼한 친구들이나 동기들을 보면 진짜 어른 같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인내하고 희생하고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어쩔 때는 그런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다. 뭐, 나도 내가 이 나이 먹도록 비혼이 될지 몰랐다. 결혼해서 남편이 주는 월급 받고 애 키우며 살림하고, 여유가 있으면 직장 생활도 하면서 그렇게 살 줄 알았다.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약간 피터팬의 나라, 네버랜드에 머무르는 기분이다. 혼자 나이 먹는 것은, 아니 정신연령이 그대로인 것은 정말 달콤하다.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그 자유로움이란 어마 무시한 것이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만 생각하면 된다. 돈이 생기면 세계 어디든 한 달 살기 여행을 갈 수 있고, 여유돈이 생기면 멋진 차를 마음대로 바꿀 수가 있다. 나처럼 뻔뻔한 T라면, 남들 선보는 호텔 양식당에서 혼자 코스 요리를 먹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고, 크리스마스 때는 80만 원에 두 시간 동안 마사지를 받는 스스로에게 선물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유로움도 철저히 책임이 따른다. 기쁜 일을 나눌 수도, 슬픈 일을 얘기할 수도 없다. 모두 내가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가정인데 그 혈연지간인 가족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불안감도 이겨내야 한다.
Miss Dior은 비혼의 달콤함을 가득 담은 향이다. 장미, 은방울 꽃 등등 각종 향기 좋은 꽃들을 원료로 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크리스천 디올은 원래 디자이너이기도 하지만 조향사를 꿈꾼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Miss Dior은 크리스천 디올이 처음 만든 것, 그리고 꽃 향기가 좀 더 강한 것, 달콤한 과일향이 좀 더 강한 것 이렇게 세 가지 버전이 있다. 가끔 결혼한 친구들이 가족들 여행으로 그리고 남편의 사랑으로 부러울 때가 있다. 아니 많다. 그럴 때 나는 달콤한 Miss Dior을 온몸에 잔뜩 뿌려 본다. 철들지 않는 달콤함! 영원히 20대 일 것 같은 달콤함! 미혼자만이 아는 그 달콤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