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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계의 유니콘, 벚꽃향

Dior의 SAKURA

부산하면 사람들은 뜨거운 여름, 타오르는 듯한 황금빛 태양, 그리고 푸른 바다와 짭조름한 바다향을 떠올린다. 그러나 내 고향 부산은 내게 온몸을 감싸는 따스한 햇살, 부드럽게 코끝을 스치는 바다향, 그리고 핑크빛으로 환상적으로 굽이친 길을 덮으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더 사랑스럽다.

여기서 잠깐, 누군가 이렇게 태클을 걸지도 모른다.
“왜 봄에 꽃향기가 아니라 바다향이라고 썼느냐?”라고.
그러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고 싶다.
“과연 벚꽃향을 맡아본 적이 있나요?”

스크린샷 2025-08-31 131541.png 달맞이 길의 벚꽃 터널. 봄의 드라이브하기 아주 좋은 곳이다. (출처: 금정신문) 드라이브 코스지도 링크(https://www.visitbusan.net/in)


장미향을 담은 향수는 많다. 그리고 우리는 장미향수와 실제 장미의 향을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벚꽃은 어떨까? 실제 벚꽃향과 벚꽃향을 흉내 낸 향수를 직접 비교해 본 사람이 과연 있을까? 왠지 장금이가 “홍 씨 맛이 나서 홍 씨라고 하였는데, 그럼 뭐라고 하겠습니까?”라고 말하던 장면과도 닮아 있다. 있는 것을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할 뿐인데, 그것을 대체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벚꽃향은 향수계의 유니콘이다.

있을 듯 없고, 없을 듯 있는 향.

세상에는 수십 가지의 벚꽃향 향수가 존재하지만, 장미향수처럼 일정한 공통분모를 가지지 못한다. 말이 ‘벚꽃향’이지, 그것은 대개 조향사들이 벚꽃의 이미지—작고, 달콤할 것 같고, 로맨틱한 색을 지니고, 여린 20대 소녀 같은—를 상상해 빚어낸 것에 가깝다. 결국 있을 것 같지만, 결코 실제로는 찾을 수 없는 향이 되어버린 셈이다.


나는 이런 유니콘을 쫓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병적으로 벚꽃향에 매달렸고, ‘cherry blossom’이나 ‘sakura’라는 이름의 향수를 보면 무조건 사들이곤 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내가 마음속에 간직한 벚꽃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담아내지는 못했다. 어떤 것은 지나치게 진했고, 어떤 것은 너무 평범했다. 벚꽃 특유의 사뿐사뿐한 느낌, 그리고 어떻게든 눈에 담아두고 싶게 만드는 그 덧없음을 향으로 구현한 제품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이 늘 아쉬움이었다.

Y0749427_C099700402_E02_GHC.jpg 네이밍이 유일한 단점인 향수. 탑 노트는 green (풀향), 미들노트는 장미와 재스민, 엔드 노트는 화이트 머스크

끝내 찾지 못할 줄 알았던 벚꽃의 잔향은 의외의 순간에 다가왔다. 그것은 여자 향수가 아닌, 남녀 모두를 위한 유니섹스 향수, Dior의 Sakura였다. 처음 맡았을 때 솔직한 인상은 의아함이었다. ‘이게 정말 벚꽃향인가, 아니면 단순한 풀잎 향인가?’ 그러나 곧 그 풋풋한 느낌은 막 돋아난 새싹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덕분에 향을 뿌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활기찬 봄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향이 익숙해질 무렵이면 다른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건넨다.
“기분 좋은 꽃향기가 나네요. 향수 뿌리셨나 봐요.”
벚꽃의 사뿐사뿐함은 이렇게 드러나는 듯하다. 정작 향수를 뿌린 나는 그 미묘한 감각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타인의 감각 속에서 그것은 봄을 맞이하는 설레는 기분으로 변주되어 있었다.

집에 와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이면, 남은 잔향은 처음의 싱그러움과는 사뭇 다르다. 활기찬 새싹의 기운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은은한 꽃잎의 그림자처럼 여운을 남긴다. 마치 벚꽃이 저물어가는 저녁 하늘 아래 천천히 흩날리듯, 향은 조용히 사라지지만 마음속에는 봄날의 풍경이 오랫동안 머문다.

내일이면 9월의 시작이다. 밤낮으로 선선한 바람이 스며들며 가을이 다가오고, 또 한 해가 저물고 있음을 느낀다.

무더웠지만 빛나던 여름의 기운이 이제는 아쉬움으로 바뀌고, 가을의 쓸쓸함이 서서히 스며든다. 그럴 때일수록 나는 다시 Dior Sakura를 꺼내든다. 향이 머무는 시간만큼은 마치 봄 한가운데 선 듯, 활기와 설렘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다. 꿈같은 여름날의 축제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직장인의 숙명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조금 지겹다면, 벚꽃향으로 잠시 활기를 더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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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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