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밴쿠버에 대해서는 지난 세 개의 글을 통해 간략하게 설명한 바 있다. 지금부터는 밴쿠버 이외에 내가 여행한 북미의 다른 도시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중 첫 번째 도시는 바로 미국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 시애틀(Seattle)이다.
시애틀은 스타벅스의 탄생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만추" 등의 촬영지로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도시다. 덧붙이자면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의 본사가 이곳에 위치하고 있고, 한국인 축구선수 김기희가 축구팀 '시애틀 사운더스'에서 뛰고 있다.
시애틀은 도시 인구가 2018년 기준 74만 5천 명 정도로 워싱턴 주와 태평양 연안 북미 북서부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광역 시애틀의 인구는 400만에 육박한다). 한편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증가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시애틀은 미서부 해상 무역의 거점이자, 첨단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다.
나는 올해 1월 말,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 다니는 친구를 만나러 3박 4일 일정으로 시애틀을 방문했다. 밴쿠버에서 시애틀까지는 버스로 3~4시간가량 소요된다. 밴쿠버에서 시애틀까지 육로로 이동하게 되면 중간에 캐나다-미국 국경을 지나야 하는데, 이때 버스에서 내려 짧은 검문을 받게 된다. 나는 검문을 받은 뒤 국경세 6달러를 지불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시애틀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시애틀은 밴쿠버와 매우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오래된 듯한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시애틀은 지리적으로 서쪽에는 엘리오트 만(Elliott Bay)을, 동쪽으로는 워싱턴 호(Lake Washington)를 끼고 있어 1년 내내 강변을 따라 이동하는 무역선들을 볼 수 있다. 또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철 내내 안개가 자주 끼고 비가 많이 오는 날씨를 보여준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나에게 있어 시애틀의 첫인상은 밴쿠버와 상당히 비슷했다. 집의 모양, 도시의 구조, 길거리의 분위기, 심지어 프랜차이즈 가게들까지 밴쿠버와 너무나도 흡사했다. 밴쿠버와 결정적으로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시애틀에는 우버가 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밴쿠버에서는 우버가 불법이다!).
첫째 날 밤에 시애틀에 도착하여 여독을 푼 뒤,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차이나타운으로 이동해 점심식사를 했다. 북미의 대도시들에는 대체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중국인들은 19세기 중후반부터 북미로 이주하기 시작해 서부횡단철도 건설 등의 대규모 사업에 참여하면서 점차 북미 지역에 집단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자생적으로 형성된 차이나타운들은 이후에 유입된 중국인 이민자들이 해당 도시에 정착하기 위한 기점 역할을 하면서 점차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어갔다. 현재 북미 지역의 차이나타운들은 도시 내 중국인 커뮤니티의 거점일 뿐 아니라 도시의 주요 관광자원으로써 기능하고 있다. 특히 차이나타운은 맛있는 중국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좋다.
점심식사를 한 후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으로 이동했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각종 로컬 푸드들을 파는 일종의 재래시장이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시애틀의 대표 관광명소로서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건너편에는 시애틀 관광의 핵심 장소라 할 수 있는 스타벅스 1호점(Original Starbucks)이 위치하고 있다. 매장의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는데, 수많은 관광객들이 매장 안과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 역시 대략 20분을 기다린 후에야 매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매장 안에는 테이블이 없었고, 모든 음료는 테이크 아웃(take out) 형태로 제공되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해 마셨는데, 맛은 평범한 스타벅스 커피와 같았다.
스타벅스 1호점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어떻게 특정 브랜드의 본점이 그렇게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관광지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스타벅스는 1971년, 시애틀 다운타운의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 1호점을 오픈했다. 하지만 5년 뒤인 1976년, 기존의 1호점은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고 현재의 자리로 이관하게 되었다. 이후 스타벅스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로 성장하게 되었고, 시애틀의 1호점은 스타벅스 신화의 상징적 장소로서 홍보되기 시작했다. 특별히 관광 자원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시애틀 시의 입장에서 스타벅스 1호점은 도시의 관광 산업을 견인하는 중요한 관광 자원이었다. 추측하건대, 시애틀 시 당국은 스타벅스 1호점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커피의 수도'로서 도시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구축하려 했을 것이다. 시애틀 다운타운에는 거의 블럭마다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스타벅스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1호점만이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스타벅스의 초창기 로고 역시 관광객들의 방문 욕구를 자극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스타벅스와 시애틀의 사례는 하나의 기업이 하나의 도시를 어떻게 '디자인'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스타벅스 1호점 앞에서 시애틀 대관람차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케리 파크(Kerry Park)로 이동하여 시애틀의 전경을 한눈에 담았다. 케리 파크는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데, 그곳에 오르면 시애틀 다운타운과 항구, 그리고 날씨가 좋다면 레니에 산(Rainier Mountain)까지 또렷하게 조망할 수 있다.
캐리파크에서 내려와 해가 지기 전에 모팝(Museum of Pop Culture)으로 향했다. 이곳은 근현대 미국 팝 문화의 여러 상직적 기념물들을 전시하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복합 문화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끊임없이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중앙 홀을 지나면 기타 전시관, 과학관, 호러 전시관, 로맨스 전시관, 판타지 전시관, 뮤직 룸, VR 체험관 등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들을 만날 수 있다. 입장료가 다소 비쌌지만 충분히 가 볼만 한 가치가 있는 박물관인 것 같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다니는 친구에 따르면 이 박물관이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후원을 받아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이크로소프트 직원인 내 친구는 할인가에 입장할 수 있었다!
모팝 주변은 시애틀의 대표적인 관광지구 중 하나로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을 포함한 여러 관광지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시애틀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스페이스 니들의 전망대에 올라가기 위해 이곳을 반드시 한 번은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스페이스 니들 전망대의 입장료가 다소 비싸고, 더 좋은 야경 뷰가 있다는 친구의 말 때문에 나는 스페이스 니들 전망대에는 올라가지 않았다.
다음날에는 느지막이 일어나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줄여서 UW),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벨뷰(Bellevue)를 구경했다. 워싱턴 대학은 미국 북서부에서 가장 큰 대학으로, 1861년에 개교한 유서 깊은 학교이다. 워싱턴 대학은 개교 후 48년째 되는 1909년, 시애틀에서 열린 알래스카-유콘 태평양 박람회의 개회 장소로 선정되며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다. 세계적 규모의 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해 그에 맞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지어졌고, 그 결과 현재 워싱턴 대학교 캠퍼스의 골격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워싱턴 대학은 현재에도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워싱턴 대학에서 가 볼만한 장소로는 레니에 산을 정면으로 조망할 수 있는 드럼헬러 분수(Drumheller Fountain), 미니 홀(Meany Hall)과 수짤로&알렌 도서관(Suzzalo and Allen Libraries)을 볼 수 있는 레드 스퀘어(Red Square), 인문대학이 위치한 더 콰드(The Quad) 등이 있다.
워싱턴 대학 관광을 마친 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캠퍼스로 향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빌딩 형태가 아니라 대학처럼 캠퍼스가 형성되어 있다. 캠퍼스의 넓이만 해도 대략 74만 제곱미터에 달하며, 건물의 수가 100여 개에 이르는 초대형 규모이다. 대략 3~4만 명의 직원들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 다니는 친구 덕분에 무료로 캠퍼스 투어를 할 수 있었다. 친구로부터 설명 들은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직원들에 대한 수준 높은 복지와 직원들 사이의 자율성이었다. 우선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직원 복지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업무에 필요한 모든 시설은 최첨단으로 구비되어 있었으며, 말단 개발자인 내 친구조차 개인 작업실을 갖고 있을 정도로 직원들에게 최상의 업무 조건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또한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한 편의시설도 놀라운 수준이었다. 거의 모든 건물 내에 직원들을 위한 게임기, 탁구장, 심지어 녹음실까지 설치되어 있었으며, 직원들은 각 층에 비치된 미니 바에서 얼마든지 무료로 제공되는 음료를 꺼내 마실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직원 사이의 수평적 관계와 자율성을 상당히 강조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사에는 정해진 출근시간이 없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오전 9시 정도에 출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 시간을 정확히 지킬 필요는 없으며 조금 늦는다고 해도 처벌을 하거나 눈치를 주는 일은 없다고 한다. 또한 직원들 사이에 직급이나 나이 차가 많이 나더라도 최대한 수평적인 관계에서 일할 수 있도록 회사 차원에서 많이 배려를 한다고 한다. 수직적이고 위계질서가 엄격한 한국의 기업문화와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밸뷰, 스타벅스 리저브 등 몇 군데의 장소를 더 둘러본 후 나의 시애틀 여행은 끝이 났다. 시애틀에서 밴쿠버로 오는 도중에 국경에서 잠깐의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큰 문제없이 밴쿠버로 잘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사실 시애틀에 친구를 만나러 갔기 때문에 친구와 회포를 푸느라 도시를 온전히 즐기지는 못했지만, 시애틀은 분명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다음번에 시애틀을 방문할 때에는 좀 더 그 도시 자체를 온전히 즐기고 싶은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