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3, 백현진의 <seoul syntax>에서.
Seoul Syntax
20260204- 20260321
PKM 갤러리 별관
무엇이든 하는 것마다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에겐 가수이자 배우 김창완이 그런 사람이다. 자주 듣지는 못했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은근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창창한 목소리를 뽐내던 산울림 시절과의 목소리와는 또 다르다. 그가 아나운서처럼 발음하는 사람이거나, ‘나는 가수다’와 같은 출연 해 가창력을 뽐낼만한 가수는 아니다. 그래서 좋다. 가수로서의 목소리든 DJ로서의 목소리든 적당한 온도와 찰기를 가졌고, 그래서 완벽하다.
거기에 그가 출연한다고 해서 찾아본 드라마가 딱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를 보다 그가 나오면 그 역을 한 마디로 ‘씹어먹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연기도 자기답게 하는구나. 모든 면면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있다기보다는 자기 자리에서 자기 빛을 내는 사람. 나에겐 그가 그렇다.
물론 못하는 어떤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못할 것 같으면 안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잘하는 것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에 다른 것을 도전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손대는 것마다 잘하는 것인지는 모른다. 어차피 그가 못하거나 안 하는 것은 내가 볼 수 없는 면이다. 달이 자체 발광체가 아니라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해 빛나듯이 스타 역시 그런 것이라 해도, 어떤 빛을 발할 것인가는 그 사람의 원래 생김에 달린 것 아닐까. 자기다움을 스스로 잘 비추는 힘이, 김창완에게 있다.
전시와 하나도 관계없는 사람에 대해 자꾸 말을 늘어놓는 이유는 나에게 백현진(여기서는 작가라고 해야겠다) 역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어부 프로젝트’라는 밴드로, ‘방백’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음악 활동을 하더니, 어느새 연기자가 되어 있었던 그. 실은 도대체 저 사람은 몇 살인데 몇 년째 같은 나이로 보이는 걸까 싶었다. 이제는 한 OTT 프로그램 ‘직장인들’에서 안 웃긴데 웃긴 부장님 뻘 역할을 맡아 각종 SNS의 릴스나 숏츠를 장식하고 있다. 그도 늘 메인 자리를 꿰차고 핀 조명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보아온 그는 언제나 자기 역할을 잘하는 사람이다. 특히 부장님 같은 역할은 너무 잘해서 황당하고, 그가 해온 일들이 잘 생각나지 않을 정도다. 그 모습과 대조적으로 리버럴 하고 구성진 그의 노래들을 떠올리고 그 간극을 분석하며 재미를 느끼는 것이 그를 대하는 나의 태도다.
‘미술 하는 사람’으로서의 백현진은 어떨까. 개인전에 가면 그가 하는 일들 중에 거의 유일하게 핀조명을 받고 자기를 내보이는 순간을 만날 수 있기에 서둘러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Seoul Syntax>라는 제목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데, 찾아본 바로는 그가 서울에 살며 느낀 것들을 옮긴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시장에 들어서면 뭔가... 생각했던 느낌이 아니다. 실망했다는 게 아니라, 뭔가 내가 가진 ‘백현진’의 인상과도, 서울에 대한 인상과도 조금 다르다. 일단 무겁지 않고 가벼운 터치다. 파릇한 풀 같은 기호가 많아서인가, 봄 같기도 하다. 작품에 붙여진 제목도 무겁거나 어렵지 않다. ‘출발’, ‘갈팡질팡’, ‘봄’, ‘겨울’, ‘난제’ 등 어렵지 않다. 무엇이건 시작과 끝이 빠르게 교차하는 서울에서의 감정을 산뜻하게 담고 있다. 작품으로는 이런 느낌을 담는 사람이란 말인가!
알쏭달쏭한 서울을 설명하는 일종의 암호를 읽는 느낌으로 1층의 작품을 감상하며 지하층으로 내려가면 작은 드로잉 수십 점과 영상 작품을 만나게 된다. 이 영상 작품- <빛 23>이 아주 압도적이다. 백현진의 노래와 함께 흐르는 이 뮤직비디오는 6~7분가량으로, 특별한 줄거리나 기승전결이 없다.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말을 하다가 안타까운 마음에/ 말을 잃어서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리니 저기 모서리가 있네/ 세 갈래 빛이 저기서 고요히 흐르네/ 그 빛을 따라 고개를 젖히니/ 창문 밖에 있는 태양이 보이네/ 그 태양 아래에는 바로 네가 서 있네/ 너로부터 오묘한 다정한 세 갈래 빛이/ 내 눈 속으로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아주 깊숙이 스며서 머무네/ 머무네 머무네 온통 머무네/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내 눈 속으로/ 아주 깊숙이 스며서 머무네/ 머무네 머무네 머무네 머무네/ 머무네 머무네 뱅뱅 머무네...
원테이크로 촬영되었다는 이 뮤직비디오에서 한예리 배우는 가사 그대로 태양 아래 걷고, 모서리에서 돌며 무엇을 발견하고, 또 걷는다. 클라이맥스에서 눈이 내리고 스미는 광경은 반팔차림과 초록 배경 속에 이질적이고 비현실적이지만, 말도 안 되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서울의 환상, 그게 곧 현실, 그러나 환상. 영상을 감상하는 내내 서울 토박이로 살면서 서울에서 마주한 것들을 주마등처럼 떠올려본다. 이 뮤직비디오를 보며 갖는 바로 이 감정이, 다른 작품들을 읽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그러므로 다시 1층에 올라와 그를 조금 동경하게 된다. 흔히들 ‘차가운 X새끼의 도시’라 부르는 서울을 왜 이리 담담하게 그렸을까. 꿈도 꾸고 좌절도 하고 실망하고 다시 꿈꾸고 더 상처받았을 어느 날들을 이제는 이렇게 풀 수 있단 말인가. 닳아버린 부장님을 그렇게 연기하면서, 한편으로는 작품으로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말을 한단 말인가. 자기 얘기를 이렇게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잘 해내는 사람이, 그가, 부럽다. 왜 하나를 잘하는 사람은 왜 다 잘하는 거야.
당연히, 나는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렇지 않다. 그래도 나도, 그저 영상 작품 속 한예리처럼 빛을 따라가기로 한다. 가끔 한여름 한낮에 차가운 눈이 내리는 풍경이 뺨을 스쳐도, 환상이어도 끝나도 좋을 내 길을 찾아서. 꿈에서 깨어 찐득한 채로 떠올려보아도 결국 그 환상적인 꿈의 뒷맛은 나쁘지 않겠지. 골목 하나 돌듯이 살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장면들에서 영감을 포착하는 섬세함-까지 가진 아티스트 백현진이 부럽다. 그래서 또 한 번 중얼거린다.
“하나를 잘하는 사람은 왜 다 잘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