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과정을 다 알아야 할까

질문4, 이건용의 <사유하는 몸>에서.

by per se

사유하는 몸 <Body as Thought>

20260205-20260328

페이스갤러리


나는 흔히들 ‘예쁘다’는 평을 받는 그림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투박하고 일그러진 데가 있는 추상이나, 추상이나 구상 사이 그 어디의 작품을 좋아한다. 내가 좋다는 그림들을 보면 어둡고 거친 면이 있을 때가 많다.

전시를 즐기기 막 시작했던 때, 이건용 작가의 작품 중 처음 접했던 것은 여러 색이 섞인 산뜻한 하트가 그려진 대형 작품이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이게... 그렇게 대단한 작품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밝고 경쾌한 파랗고 노랗고 붉은색이 섞여 커다란 하트를 그리고 있는 그 작품은, ‘어떻게 그려졌는지’에 대한 정보를 뒤늦게라도 접하지 못했다면 여전히 그저 그런 그림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그림이, 옆으로 서서 팔을 크게 휘둘러 그린 그림이란다...! 보통은 캔버스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의도한 모양을 그리는데, ‘휘둘러지는 대로’ 그린 그 그림이 그 말을 듣고 나니 다르게 보였다. 팔이 잘 돌아가지 않았다면 또 다른 그림이 되었겠구나- 하며 조금 친근하게 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KakaoTalk_20260221_084623889_18.jpg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처음 보았던 이건용 작가의 작품도, 이것이었다. 지금 보면 또 달리 보이는.

그렇다면 이건용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어떨까 싶어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그의 작품 세계는 다시 한번 멀어졌다. 어떤 맥락과 설명이 없다면 이게 도대체 무슨 작품인가 싶은 실험미술. ‘직관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찾아다니는 나에게 그의 작품들은 조금 성가시다.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물건을 늘어놓는 등의 행위가 갖는 의미란 어떤 것일까. 아니, 의도가 도대체 무엇일까.

그런 성가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이런 것을 알고자 하는 순간 터지는 새로운 감각 기관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낡고 굳은 취향을 가졌더라도 매번 다른 전시 관람의 즐거움을 찾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을 위해서다. 그래서 이건용 작가의 이번 전시가 무척 반가웠다.


어둑한 1층 전시장에는 그의 전체적인 작품 세계와 분위기,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작품을 낱낱이 담은 도록이 비치되어 되어 있는데, 잠시라도 앉아서 들춰보면 좋다. 잘 들어오지 않는다면 ‘70년대의 엄혹한 사회 분위기’라는 키워드를 떠올리며 그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그의 작품은 한 마디로 보통의 문법, 우리가 상식이라 생각하는 작품 만들기의 과정을 한참 벗어나 있다. 목적이 없어 보이지만 결국 목적을 달성해 내는 그의 작품들은 결과를 포착한 사진 한 장이나 몇 줄의 글로 설명하기 어렵다. 사실 전시에 가면 종종 패스하는 것(길어서, 다리가 아파서, 봐도 잘 이해가 안되어서)이 영상 작품인데, 그래서 이곳에 전시된 영상들은 그 과정과 역사를 담았기에 꼭 보는 것이 좋다.


KakaoTalk_20260221_084623889_11.jpg
KakaoTalk_20260221_084623889_05.jpg
KakaoTalk_20260221_084623889_08.jpg
KakaoTalk_20260221_084623889_09.jpg
KakaoTalk_20260221_084623889_04.jpg
KakaoTalk_20260221_084623889_06.jpg
2층에 전시된 작품들. 설명을 읽기 전에 사진과 사진 사이 과정을 상상해보면 좋다.

2층에는 그가 ‘행해 온’ 작품의 결과물들을 주로 담았다. 작품에 대한 설명과 함께 4컷 만화처럼 사진이 되어 있는데, 그 사이사이를 유추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이런 전시 방식의 좋았던 점은 그 행간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고, 아쉬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같은 행위를 반복해도 매번 다른 결과값이 도출되는 장면은 우리 인생을 많이 닮아 있다.


KakaoTalk_20260221_084623889_25.jpg
KakaoTalk_20260221_084623889_24.jpg
<Relay Life> 일부를 촬영한 것. 엎드렸다가 아쉬운 듯 다시 일어나 다른 하나를 또 꺼내 연결하는 등의 모습이 재미있다.


3층 구석에 전시된 영상 <Relay Life>는 1979년 상파울루에서 선보였던 퍼포먼스를 2021년에 재연한 것이다. 몸에 있는 소지품을 하나씩 꺼내어 연결하고 마지막엔 본인까지 몸을 길게 뻗어 연결한다. 좀 없어 보이는 말이지만 ‘이게 무슨 작품인가’의 정점이다. 비꼬거나 낮추어하는 말이 아니라, 어떻게 이런 행위로 작품을 만들고 보는 이들을 생각에 잠기게 하느냐는 뜻이다. ‘What’s in my bag’ 챌린지나, 비행기 탑승 전 소지품 스캐닝 전에 바구니를 찍어 올리는 유행 같은 것을 생각했다. 내가 가진 물건은 나를 구성하고 설명한다. 당연히 나도 그것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사실 그 물건들은 나의 세계를 완성하는 구성품이다. 그것을 직설적인 퍼포먼스로 보여주며 무한함과 유한함을 양면으로 가진 인간 개인의 우주를 떠올려보게 한다.

KakaoTalk_20260221_084623889_28.jpg
KakaoTalk_20260221_084623889_29.jpg
KakaoTalk_20260221_084623889_27.jpg
처음 본 분들이라면 '어떻게 그려진 것인가'라는 과정을 상상하며 감상해보시길.


커다란 하트. 붓으로 긋고 가운데를 지운 듯한 그림. 무얼 한 건지 알 수 없는 사진들. 이 작품들을 여전히 ‘결과’로만 보고 있다면 어떨까. 과정을 모른다면 그저 그런 작품일까. 혹은 과정이 없다면 이것은 무의미한가.

모르겠다. 흔히들 서사 없는 성공 스토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듯이, 과정 없는(정확하는 과정을 모르는) 결과물에는 아무런 끌림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건용 작가와 같은 대작가의 이름이 아니라면 솔직히 굳이 한 번 더 들여다보려고는 하지 않을지도... 그렇게 여전히 게으른 관람객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것이 남았다’는 사실보다 ‘이러한 시도를 했었다’는 역사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진다. 더 깊은 이해 없이 사랑에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스쳐가는 어렵고 난해한 예술을. 때로 내가 나를 알고 싶어서 걸어온 ‘과정’을 돌아보듯이.



월요일 연재
이전 03화왜 하나를 잘하면 다른 것도 잘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