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운동 이야기
밤의 까마귀가 지배하는 어둠의 시간, 델리 인디라 간디 공항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해둔 숙소가 있는 '빠하르간지'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빠하르간지 근처역에 내려서 간이 이동수단인 오토릭샤, 일명 '툭툭'을 잡아탔다. 기사가 어디론가 데려갔지만 어둠이 내린 인도 도로는 차와 오토릭샤의 라이트 말고는 거의 보이질 않았다. 여기저기 이동하는 중에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이곳이 어디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어느 정체 모를 골목 입구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자신을 경찰이라 소개한 건장한 남성이 툭툭을 막아서며 최근 인도에서 열린 축제기간동안 호흡기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져서 여기 빠하르간지 거리 자체가 여행자들이 못 들어오도록 폐쇄 되었다는 것이다. 코로나도 없던시절 한참 전의 이야기다. 나는 아프리카를 종단하고 이란을 거쳐 지금 인도에 도착한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거친 여행자다. 가볍게 무시하고 오토릭샤를 나오려는 순간 그 건장한 남성이 나를 힘으로 밀쳐내면서 억지로 다시 툭툭으로 밀어 넣었다. '뭐지? 사기꾼은 분명 말로만 사람을 홀리는게 아니었나? 이렇게 외력을 쓰는 사기꾼도 있나? 싶었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경찰이면 신분증을 보여달라고했다. 그 남성이 뭔가 신분증 같은걸 보여주긴 했는데 몽땅 힌디어로 쓰여있는지라 일반 민증인지 경찰신분증인지 도무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여기가 정말 빠하르간지 입구인지도 모르겠고 한밤중이라 어둡고 거리에 사람은 없고 나는 장거리 여행에 너무 지쳐있고 배는 고프고 집중력마저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심카드를 못샀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이나 비상연락을 해볼 수도 없었다. 이때 툭툭 기사가 근처에 자기가 아주 저렴한 호텔을 안다며 만약 숙박요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툭툭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래서 믿어볼까 하는 마음에 그렇게 하자고 다시 어딘가로 이동했다. 한참을 이동해서 어딘가 다 쓰러져가는 낡은 호텔 로비인듯 사무실인듯 말듯 보이는 곳 앞에 내려주었다. 로비에서 직원이 말하길 현재 모든 호텔 방은 꽉 차있고 가장 저렴한 호텔방이 120달러 란다. 내가 사전에 예약해둔 호텔은 하루밤 숙박비가 5달러 정도 되었던 터. 델리의 물가와 여기 호텔의 상태를 감안하면 터무니 없는 가격이었다.
'당했다.'
이 사기꾼들과 스스로에게 화가났는지 순간 이성을 잃고 욕을 하면서 문을 세게 밀치면서 나왔는데, 아뿔싸. 내가 문을 너무 세게 밀었는지 문이 벽과 강하게 부딪히면서 문 손잡이와 그 주변 부분이 박살이 나버렸다. 그 순간 주변에 있던 건장한 남성들이 바로 몰려들었다.
"너! 내가 봤어! 너 그거 부셨지 ! 물어내야돼 !"
아차. 사기 당한 것도 모자라 실수로 문을 부숴버려서 꼬투리까지 잡히게 생겼다.
'침착하자.'
몰려든 사내들은 진정시키고 다시 호텔 로비로 들어가서 직원에게 화내고 문을 부순건 미안하다고 말했다. 툭툭 기사가 나에게 사기친 것 같아서 내가 순간 너무 화가 났고 저 기사에게 줄 돈을 당신에게 주겠으니 나를 내보내주면 경찰도 부르지 않겠다, 더 이상 문제삼지 않고 난동도 부리지도 않을거라 말했다. 화가났을 때만 유창해지는 나의 영어 실력에 나 조차도 감탄했다. 다행히 문고리 값만 조금 배상해주고 무사히 사무실 밖으로 나왔고 툭툭 기사는 이미 줄행랑을 친 뒤였다. 다행히 지나가는 착한 인도인 남녀 부부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빠하르간지에 도착했다. 인도인 부부가 말하길 내가 당한 사기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라한다. 몇 명이서 짜고 치기 때문에 막상 처음 격는 여행자들은 쉽게 넘어간다고. 생각해보니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고 문을 부수고 나온 저항심 덕분에 오히려 위기를 모면하게 된 것 같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24시간째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허기짐을 채우려 당장 늦은밤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을 사먹은게 화근이었다. 이날 시작된 설사로 밤새 잠을 못이뤘고 더 나아가 인도 일정 내내 설사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한인식당 주인분 덕분에 바라나시행 기차표를 예매하는 것에는 쉽게 성공했지만 바라나시에 도착도 하기 전에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서 그냥 이쯤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이란처럼 사람들이 친절하긴 커녕 길에서 눈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사기꾼처럼 느껴져서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이미 아프리카 종단과 이란에서 경험한 고대운동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해서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매한 기차표야 사실 그리 비싸지 않았기 때문에 델리 주변 유명 관광지를 하루 동안 둘러보면서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도착한 '고대 우물' 아그라센 키 바올리Agrasen Ki Baoli. 지금은 계단에 앉아 사색을 즐기고 데이트를 즐기는 장소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실제 물을 얻는 우물이었단다. 아미르 칸 주연의 발리우드 영화 'PK'에도 등장하는 곳이다. 영화에 등장한 이 사색의 광장 같은 장소가 우물이었다니. 생각보다 깊고 굉장히 규모가 크다. 한때는 많은 사람들의 목마름을 채워줄 역할을 했을 이 고대우물이 현재는 비둘기들의 집이 되었다.
성경에서는 십보라, 리브가, 라헬이 신랑을 만나게되는 장소로 우물이 등장한다. 당시 우물이라는 존재는 고대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에 그들의 하루 일과 중 우물에 가서 물을 떠오는 작업은 생존에 직결되는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우물에 갔는데 마침 신랑이 될 사람이나 그 대리자를 만나게되는 이 이야기가 등장인물만 달라진채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생존을 위해,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물'을 찾아 똑같이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생수의 근원이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신랑이라는 존재로서 나를 신부로 택하여 만나주신 것을 상징한다. 남들과 별 다르지 않은 목적과 노력으로 분에 맞지 않게 우연히 얻게되는 무언가를 '은혜'라 한다. 많은 여행자들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그들과 똑같이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시작한 이 여행에서 만약 그들은 깨닫지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별 다를 것 없는 그리고 오히려 부족한 내가 그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직 '은혜'로 인함이다. 이 은혜를 경험하게 될지 아닐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이 상황과 나의 약해진 몸과 마음에 순응하고 돌아갈지 아니면 저항하고 나아할지.
고대 우물을 떠나 근처에 있는 인도문India Gate를 향해 또 걸었다. 인도 독립을 위해 저항하던 9만명의 전사자들을 위해 만든 이 기념 건축물은 가까이에서 실제로 보면 굉장히 크고 웅장하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저항한 그들앞에 한없이 작아진다. 이 큰 문을 지나 셀카를 찍어보니 이젠 제법 여행자 티가 좀 난다. 나 자신을 바꾸고 싶다고 시작한 여행의 시작점이 다시 머릿속을 스치며 저항의 의지가 샘솟는다. 나는 이미 어젯밤 문을 부쉈고 오늘 문을 나왔다. 곧장 짐을 챙겨 바라나시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침대칸을 타고 이동했는데 피곤했는지 금방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여전히 열심히 기차는 달리고 있다. 아침식사는 이란에서 샀으나 아직도 남아있는 피스타치오와 대추야자열매로 해결했다. 고대 페르시아 군대에서는 전쟁때 병사들에게 하루 식량 보급으로 말린 대추야자 열매 한개를 줬다고 한다. 그만큼 영양소가 많다는 이야기일거라 여길 뿐 사실이라고는 믿지 않는다만, 설마 그랬을까 하는 일이 고대에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으니 혹시 또 모를일이다. 어차피 너무 달고 건조해서 두세개 먹으면 더이상 안먹게 된다. 게다가 델리에서 시작된 설사가 너무 심해서 먹을 힘도 없다. 아무튼 오늘은 고대 페르시아 전사의 다이어트다.
엄청나게 흔들리는 구형 열차에서 볼일 보는게 참 어렵다. 큰일 보는중에 넘어지지 말라고 푸세식 변기 옆에 손잡이도 따로 있다. 거의 묘기 수준으로 균형을 잡으며 볼일을 봐야한다. 잠깐이나마 흔들리는 열차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고유감각 훈련으로 매우 좋다. 몸이 휘청하고 흔들리는 타이밍에 힘으로 버티는 것이 아닌 적당히 흔들림을 허용하며 힘들이지 않고 중심을 잡는 연습이다. 좁은 침대칸 열차에서 잔뒤에 찌뿌둥했던 온몸이 화장실 갔다가 구석구석 개운하게 다 풀린 느낌으로 다시 나왔다. 일전에 한국에서 소마틱스에 입문한 뒤로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고유감각 훈련으로 명상 상태를 유지하는 나만의 비결이 생겼는데 아프리카, 이란, 인도에서 장거리 이동을 많이 하다보니 비행기, 열차, 버스 내에서 각각의 환경을 이용해 고유감각을 훈련하는 시도를 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단순히 루틴을 넘어 고유감각을 동원한 의식Ritual이 되었다. 특히 아프리카 종단 여행 중 잠비아에서 탄자니아로 이동하는 장거리 열차에서 3일을 보낸적이 있었는데 얼마나 흔들림이 심했던지 화장실에도 가려고 이동하려면 중심을 잃고 복도 벽에 수십번씩 부딪혔다. 이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억은 한 식당칸 직원이 그토록 흔들림이 심한 열차에서도 넘칠듯 말듯 펄펄 끓는 기름 솥에 생선을 튀기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처럼 살랑살랑 움직이되 자신의 발바닥은 나무 뿌리를 내린듯 중심을 잡고 동시에 넘실대는 기름이 쏟아지지 않게 컨트롤 했다. 마치 중국 영화 속 쿵푸 고수 같았다. 당장 1초 뒤에 어떠한 방향과 강도로 흔들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이를 대하는 그의 움직임과 태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이미 터득한 사람만 같았다. 마치 중력과 친해지는 방법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랄까. ‘쿵푸’는 중국어 발음이고 한자어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부工夫다. 장인 공工, 지아비 부夫가 합쳐진 말이다. 공工 자는 위 ‘一’하늘과 아래 ‘一’땅을 연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부夫 자는 위 ‘一’하늘과 아래 ‘一’땅을 연결한 주체가 ‘人’사람이라는 뜻이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마땅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과업이 바로 공부다. 중국 소림사에서는 몸과 마음을 분리할 수 없으므로 몸을 단련하는 행위가 곧 마음을 단련하는 것이라 믿었다. 몸을 단련하는 행위를 통해 마음으로 하늘과 땅을 연결해 진리로 나아가는 그들의 수련을 ‘쿵푸’ 즉, ‘공부’라 했다. 내가 여행에서 그토록 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공부'였구나. 여행 중 흔들리는 열차에서 중심을 잡는 모든 고유감각 훈련은 물론 중심을 잡고 진자운동 하는 방망이를 휘두르는 고유감각 훈련 또한 이 바로 그 공부였으며, 이 땅에서 여행자로 사는 중 내가 해야할 것이 바로 ‘공부'였다. 그렇게 끊임없이 공부하여 머리를 하늘에 두고 하늘의 법을 따르되 발은 땅에 붙이고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참 사람이라는 존재로서 완성되었을 때 졸업학점을 채우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모든 순간이 공부가 될지 아닐지는 바로 그 순간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에 달려있었다. 관점은 ‘나는 이렇게 보겠다’하며 마음먹는 것이며 마음먹기에 따라 달리는 열차에서 필사적으로 중심을 잡으며 똥싸는 순간 마저도 공부가 될 수 있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중요한 깨달음이란 자고로 여행 중 마주하는 위대한 자연 앞에서 감격하며 얻게 될 줄 알았는데 흔들리는 기차 안 조악한 화장실 안에서 얻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델리에서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했던 순간들과 충분히 그래도 됐을 법한 상황들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을 택한 선택의 순간들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갔다. 또한 몸 편히 바라나시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어도 이정도의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