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생각 없이 손을 들면 좋겠어
'세린아, 삼촌은'
"세린아, 삼촌은 네가 생각 없이 손을 들면 좋겠어"
세린아, 삼촌이 얼마 전에 영화를 하나 봤거든. 그 영화는 건축과 관련된 영화였는데, 솔직히 삼촌은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었어. 그래서 영화를 보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 그리고 그건 혼자 고민해본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어.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는 대학교 강단에 서는 몇몇 분들이 무대로 나와 영화에 관해 설명해주는 시간도 있었어.
무대로 나온 교수님들이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짧게나마 해주셨지만, 삼촌이 궁금했던 것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어. 그런데 그 직후, 진행자가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신 분은 손을 들고 교수님에게 질문해 달라고 했어. 그 순간 삼촌은 갈등했어. 내가 질문을 해도 될까? , 만약 질문한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 내가 너무 멍청해 보이지 않을까... 등등의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더라. 삼촌은 다른 사람들이 질문하는 동안 내가 하고자 하는 질문을 논리적으로 말하기 위해 급히 생각하고 있었어. 근데 거기 있던 사람 중에 아무도 손을 들지 않더라. 아마 삼촌과 다르게 다들 건축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은 있었나 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진행자가 그러더라. 건축 영화이니만큼 다들 건축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이 오신 것 같다고.. 그리고는 그럼 오늘 영화 GV는 이것으로 마치겠다는 말을 하더라. 결국 삼촌은 마음이 급해져서 손을 들었어. 건너 건너 일단 마이크는 받았는데 손이 덜덜 떨렸어. 그리고 거기 모인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어. 삼촌에게는 그게 마치 무슨 대단한 질문을 하려고 손을 들었느냐는 그런 시선같이 느껴졌지. 머리는 하얘지고 손은 떨리고. 결국 삼촌이 한 말은 횡설수설에 가까웠어. 돌이켜보면 "바우하우스에 나오는 건축은 인문학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왜 한국에서 건축은 이공계로만 느껴질까요?"라고 짧게 말했으면 됐을 텐데 삼촌은 어떻게 말했는지 아니?
"영화 정말 잘 봤습니다. 그러나 제가 부족한 관계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교수님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제가 영화를 잘 본 건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서 바우하우스는 (생략)... 부족한 질문이지만 답변해 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아마 너는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어. 알지 못해서 하는 게 질문인데, 답을 구하기 위해 하는 게 질문인데 왜 그렇게 삼촌이 질문을 어려워하느냐고 말이지. 그런데 삼촌은 그 과정이 정말 어렵더라. 손을 들기까지도 어려웠고, 말을 하는 것도 어려웠어. 그것도 자, 이제 물어보세요. 하는 시간에 손을 든 건데도 말이야. 손을 든 게 삼촌 하나였다는 것도 이상해 보이지 않니? 분명 더 있었을 거야.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손을 들지 않은 거지.
세린아. 너는 앞으로 유치원을, 학교를, 어딘가를 가게 될 거야. 그리고 질문을 하고 싶은 순간들이 계속해서 너를 찾아오겠지. 그럼 그때마다 네가 그냥 손을 들었으면 좋겠어. 해도 될까? 하지 말까? 어떻게 할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를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실제로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는 그렇게 하고 있거든. 밝게 웃으며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나에게 바로바로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잖아. 지금 그런 네 모습이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게 맞는 거니까 그냥 외워라, 빨리빨리 풀어라, 무례하고 버릇없이 행동하지 말아라, 묻지 말고 시키는 거나 똑바로 해라... 삼촌이 살았던 인생은 이랬다? 나는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존재인데 마치 기계가 되길 원하는 것처럼 말하더라. 분명 시대가 변하고 있어, 그래서 세린이 네가 살아갈 시대는 다를 수 있어. 삼촌은 꼭 그랬으면 좋겠어.
삼촌은 살면서 멋진 사람들을 만났었어. 그리고 그 사람들 중 하나가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사람이었어.
눈치 보지 않고,
돌려 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
나는 네가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
내 앞에 서서 나에게 과자를 매우 매우 강하게 요구하는 너를 보며 흐뭇한 나의 마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