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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Jan 07. 2020

'뮤즈'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유명한 예술가들은 자신에게 영감을 준 누군가를 일컬어 '나의 뮤즈'라 불렀다. 그리고 그런 뮤즈를 보며 떠올린 영감으로 세상에  길이 남을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 다소 아이러니한 점은 예술가와 뮤즈라 불린 이와의 관계가 대부분 연인이었다는 것과 피카소 같은 이에게는 뮤즈라 부르던 연인이 여러 명이었다는 것이다.


뮤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9명의 여신을 뜻한다. 그 9명이 각기 예술의 특정 분야를 상징한 까닭으로 뮤즈라는 단어가 예술과 깊은 관련을 맺는 것은 당연시되는 것 같다. 그러나 꼭 예술을 하는 이들만이 뮤즈를 가져야 하고, 뮤즈의 존재 이유를 예술로만 한정시켜야 할까? 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예술과 거리는 멀었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나의 뮤즈를 찾고 있었다. 돌이켜봐도 왜 찾고 싶어 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단지 뮤즈라는 그 단어가 너무도 좋았고, 꼭 나의 뮤즈를 찾고 싶었다. 피카소처럼 연인이 될 뮤즈를 찾는 건 아니었다. 나에게는 뮤즈가 굳이 이성일 필요도 없었다. 인자한 선생님과 같은 사람도 내가 원하는 뮤즈는 아니었다. 서로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갖지 못한 무언가나 배울 점이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뮤즈로 찾고 있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 나는 뮤즈를 찾았을까? 다행히 삼십 년이라는 시간은 꽤 긴 시간이었나 보다. 나는 뮤즈인 것 같은 두 사람을 찾았다. 두 사람이라고 내가 나쁜 놈은 아니다. 나는 피카소와 같이 뮤즈를 연인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당당하다. 나와 뮤즈의 관계는 친구, 절친한 친구에 가까웠다.


가장 처음 만난 나의 뮤즈는 대학교 친구였다. 그 애는 영리했고, 친절했으며, 자신의 이익을 따져가며 누군가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는 나를 배려하면서도 내가 좀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혹시 지하철역 앞에서 '빅이슈'라는 잡지를 팔고 있는 사람을 본 적 있나? 나는 대학생 때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들이 노숙자였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 세상에 나가고자 그 잡지를 팔고 있다는 것을... 스스럼없이 그들에게 다가가 잡지를 사고, 나에게 저분이 그런 분이라며 너도 여유가 있다면 팔아주는 것도 괜찮겠다고 말하던 그 친구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제는 뮤즈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 친구는 멋졌고, 여전히 멋진 친구다.


두 번째로 만난 나의 뮤즈는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당당하고, 친절하며, 심지어 재능도 많았다. 그는 나의 고민과 걱정을 친절하게 들어주었고, 내가 나답게 살기를 응원해주었다. 내 방 한 곳에는 그가 이별의 선물로 그려준 내 모습이 액자에 담겨 놓여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외국에 나간 그. 그는 나에게 왜 내가 나만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었다. 너만의 삶을 살아! 말은 정말 쉽다. 그러나 이 친구처럼 자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이는 드물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그 친구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 글을 보며 누군가는 " 그건 그냥 친구지.. 뮤즈라고 하기에는 좀... "이라고 나에게 말하고 싶은 이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를 더 괜찮은 사람이 되게 도와주고, 나만의 삶을 살라고 응원해주는 이가 당신의 곁에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 말이 달라질 수도 있다.


나는 유명한 예술가들처럼 뮤즈에게 받은 영감을 통해 세상을 놀라게 할 예술품을 만들 능력은 없다. 근데 그게 내가 뮤즈를 갖지 못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나의 뮤즈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내가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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