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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Jan 14. 2020

'결혼'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서로 다른  사람이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결혼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사랑의 결실로 두 사람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떠올렸다. 노년의 나이가 되면 둘이 손을 꼭 잡고서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모습도 상상했다. 그렇게 나는 결혼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이런저런 미래를 떠올렸다.


스무 살쯤 되었을 때부터였다. 서른이 지나면 나도 결혼을 하겠지라는 생각을 한 것은. 내 옆에 누군가가 있었을 때도, 내 옆에 누군가가 없었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은 정말 애매한 단어였다. 분명 내가 하는 선택인데 보기가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 그런 문제 같았다.


가장 컸던 건 두려움이었다. 혼자면 망해도 누군가에게 피해는 끼치지 않는데, 혹시 결혼을 해서 내가 망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실직, 발병, 사고, 심지어 고부 갈등까지도 나의 걱정 범위에 속했다. 나는 자신이 없었고, 용기도 부족했다. 그럼에도 내 곁에서 미소 짓는 어떤 이의 존재로 나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떨쳤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점점 아이를 낳기 어려워지는 상황도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살기 험한 세상, 부족한 육아 지원, 헬조선이란 단어가 확산될 만큼 비관적인 전망. 누군가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아이를 위하는 거라는 자조 섞인 말도 했다. 내가 상상한 것과 현실은 매우 달랐다. 이렇게 힘든 세상에 왜 자신을 낳았냐고 나를 원망하는 아이의 모습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 손을 꼭 잡아주는 어떤 이의 존재로 나는 아이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또 다른 걱정이 찾아왔다.


결혼 후 내가, 혹은 상대방이 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지금은 이렇게 좋은데 결혼 후 관계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서로 대화가 줄어들고, 말이 날카로워지고, 서로에게 집안일 같은 할 일을 미루고... 상상만으로 식은땀이 났다. 그러나 내 걱정을 들은 어떤 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그래서 나는 그 걱정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모든 걱정을 어느 정도 해소했으니 나는 결혼을 해야 했다. 분명 그게 맞았다. 그러나 서른이 넘은 나는 혼자가 되었다. 나는 걱정이  많아서 결혼을 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그 사람을 결혼할 만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람도 결혼을 할 만큼 나를 사랑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린 결혼을 하지 못했다. 


결혼 후 행복했을지 아니면 내가 생각하던 걱정이 실제로 생겨 힘든 결혼 생활을 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시작조차 하지 못한 건 서로가 결혼을 할 만큼 서로를 사랑하진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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