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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만의제주 Sep 25. 2022

전략적 봄 꽃놀이, 꽃 안 좋아하는 아이들과 꽃놀이하기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나는 애월에 살고 있다.

애월에서는 한담 해변, 애월 해안도로 등 해안가가 관광객에게 아주 유명한 곳이나 우리 집은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중산간에 위치해 있다. 우리 동네는 주거지에 가깝다.


보통 꽃 명소들은 제주시보다 서귀포시에 많지만 우리 동네 애월 중산간에도 귀한 꽃 명소가 한 곳 있다.

바로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올레길 16코스를 걸으면 만날 수 있는 명소이다.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는,
13세기 말엽 삼별초가 원나라 침략에 맞서 끝까지 항거한 "마지막 보루"였던 곳이다. 원종 14년(1273) 1만 2천여 명에 달하는 여몽연합군의 총공격을 받아 항파두성이 함락되고 삼별초 군사들이 전원 순의 한 곳이다. 그래서 항파두리 유적과 순의문, 순의비가 있고 실내 전시실도 있다.


이곳은 유적지이기도 하지만 꽃 명소이기도 하다. 때마다 계절 꽃을 심고 가꾸신다. 봄에는 유채꽃, 벚꽃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해바라기와 수국이 핀다. 여름의 절정에는 백일홍, 배롱나무꽃도 피어난다. 가을에 메밀꽃, 코스모스가 피어나고 나면 겨우내 또 땅을 일구어 봄꽃 심을 준비를 하신다.


우리 아이들은 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꽃놀이를 안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자연 그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고, 놀이터가 있거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어떠한 코스가 아니면 쉽게 꽃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계절꽃을 좋아하는 엄마다.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엄마 자동차!
쉽게 포기할 엄마가 아니지.


봄꽃이 피어날 무렵, 아이들을 등원시키자마자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로 달려갔다. 꽃이 피었는지 안 피었는지, 꽃의 안부가 그렇게나 궁금했다.

드디어 벚꽃도 유채꽃도 예쁘게 핀 것을 확인한 날, 하원길에 아이들에게 색깔 탐정이 되어 탐험을 떠나자고 제안했다.


"탐험"

아이들은 "탐험"이라는 말을 들으면 눈도 두배로 커지고, 귀도 두배로 커져서 쫑긋 세워지는 것 같다.

"꽃놀이"라고 하면 엄마 혼자 갔다 오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탐험이면 신나게 출동한다.


이미 나는 유채꽃, 벚꽃, 하귤나무, 광대나물 꽃, 녹차밭의 위치를 파악해 두었고, 아이들에게 “색깔 탐정” 이 되어보자고 제안했다. 엄마가 이야기한 색깔을 모두 찾으면 껌을 주겠다고 했더니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뛰어다니며 색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먼저 주차장 근처에서 노란색 유채꽃을 찾았고,

유채꽃밭

그 반대편 넓은 잔디밭에서 분홍색 벚꽃을 찾았다.

벚꽃나무 아래. 집에 가고싶어해서 설득 중 찍은 모습.

잔디밭의 하귤나무에서 주황색 하귤을 찾았고,

길 건너 꽃밭에서 보라색 광대나물 꽃도 찾았다.

초록색 녹차밭은 좀 멀었다.

그럴 때 우리 아이들을 뛰게 만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길"이다.

우리 아이들은 나무데크길이든 오솔길이든 길이 나 있으면 질주본능이 깨어나는지 시키지 않아도 걷기 시작한다.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 토성가는 길

길이 보이면 이렇게 앞장서서 간다. (하늘이 맑은 날 풍경을 담아보고자 다른 날 사진을 담았다.)

우다다다 내려가면, 푸른 하늘 아래 중산간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초록 잔디밭이 펼쳐진다. 신나게 내려가는 아들의 뒷모습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녹차밭

쭉~ 내려가 드디어 만났다. 초록색 녹차밭. 초록색도 찾았다.

길이 이어져서 따라서 내려가 보니, 이야... 여기가 또 벚꽃 명소였네.

아~무도 없는 정자 아래 흐드러진 벚꽃.

이곳이 있는 줄은 모르고 데리고 왔었는데 아이들의 질주본능 덕분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다. 이 날은 전래동화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같은 시공간에서 다른 것을 누렸다.

나는 봄꽃들을 보며, 그 아름다운 풍경 안에 아이들도 함께 담았다.

아이들은 화려한 봄꽃들 속에서 색깔 탐정이 되어 "노란색, 분홍색, 주황색, 보라색, 초록색"을 만났다.

특히 길의 끝에서 녹차밭을 만난 것이 가장 자랑스러웠는지 스스로 ”녹차밭 탐험대"라 이름 붙였다.


아이들이 정말 신기하게, "항파두리 항몽유적지"에 가자고 하면 가지 않는다.

“녹차밭 탐험대 출동하자”라고 하면 눈빛을 번뜩이면서 유적지로 출동한다. 심지어 나보다 앞장서서 녹차밭을 향해 꽤 먼 길을 달려간다.


그래서 내가 꽃을 보고 싶거나 유적지 산책을 하고 싶어 지는 날이면 아이들에게 제안한다.

"녹차밭 탐험대 출동하자!"


- 개인적으로, 꽃 명소 중 항몽유적지가 어린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우선 넓은 평지라 아이들이 걷기 좋고 (토성 가는 길 계단 제외), 주차장, 잔디마당, 꽃밭이 넓고 가까워서 이동이 편하다. 주차장에 깨끗한 화장실도 있는데 무엇보다도 입장료, 주차비가 모두 무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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