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 상추씨를 심다
제주살이의 로망이 또 있었다. 텃밭 가꾸기!
텃밭을 가꾸어 우리가 재배한 채소를 식재료로 사용해 제철음식을 차려 먹는 것!
역시 또 그것은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역시 이상을 현실로 이루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구나.
제주살이 2년 차 3월, 텃밭에 상추씨앗을 심었다.
한 달 정도 지나니 이렇게 상추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상추 잎이 참 부드러웠고, 끼니때마다 따서 싱싱하게 먹는 재미도 있었다.
먹는 속도보다 자라는 속도가 빨랐다. 무럭무럭 자라서 이 정도로 풍성해지니 겉 부분은 억센 나뭇잎같이 질겨져 먹을 수가 없었고, 속에 있는 부드러운 상추만 일부 뜯어먹었다.
딸보다 커진 상추!!! 이렇게도 자랄 수 있다니!!!
우와.... 가만히 두었더니 상추 나무가 되었다. 껄껄.
마당에 나갈 때마다 딸보다 키가 커진 상추가 보여서 웃음이 났다. 이때부턴 도대체 얼마나 커지려나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7월이 되자 상추에서 꽃대가 올라오더니 귀엽고 동그랗고 산뜻한 노란색의 꽃을 피워냈다. 꽃을 피우고는 더 자라지 않았다.
상추야, 네가 이런 모습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짜잔, 그렇게 만난 상추 꽃.
내 인생에서 처음 본 상추 꽃이었다.
샛노란 색이 싱그럽고, 동글동글해 정말 귀엽다.
상추 꽃이 정말 귀여웠다. 꽃잎이 톱니바퀴처럼 뾰족뾰족한 것도 참 신기했다.
‘마당 있는 집에서 텃밭을 가꾸는 것.’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잡초 씨앗들이 여기저기서 날아와 엄청난 생명력으로 곳곳에서 자라나기 때문에 때마다 적절히 가꿔주지 않으면 금세 텃밭은 정글이 되었다. 텃밭엔 지네, 쥐며느리 등 다양한 벌레가 살고 있기 때문에 그것도 조심해야 했다.
그럼에도 텃밭을 통해 예상치 못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상추 꽃을 마주한 기쁨'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상추 꽃은 마음에 쏙 드는 생김새였다. 내 눈에는 봄 제주의 유채꽃보다 상큼하고 귀여운 꽃이었고, 하루하루 쭉쭉 길어지는 상추의 모습이 신기했다. 등원할 때마다 상추 옆에 아이들을 세워두고 키를 재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상추가 이렇게도 자랄 수 있다니...!
“텃밭 채소 도전기”는 1회 도전 후 중단된 상태이다.
아직은 텃밭에서 채소를 키울 때가 아니라 두 아이를 잘 키울 때인 것 같다. 하하.
무언가 키운다는 것은 시간과 정성이 꼭 필요하기에 텃밭에 시간과 정성을 쏟을 수 있을 때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이렇게 제주살이의 로망을 현실 속에서 이루어내긴 어려웠다.
하지만 이 과정 자체가 나에겐 참 기쁨이었다. “예상치 못한 기쁨”은 예상한 기쁨보다 훨씬 더 컸다.
글을 쓰면서 상추 꽃을 다시 떠올려도 싱그럽고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상추 꽃은 내게 “3월에 심고, 7월에 마주한 기쁨”이었다. 이런 순간이 제주살이의 진짜 매력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