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여름밤 한치잡이 배의 불빛
벚꽃 잎이 떨어진 자리에 초록 잎사귀가 자라나고, 매화가 떨어진 자리에는 동글동글 귀여운 매실 열매가 열리기 시작한다. 벚꽃비가 내릴 때는 찬란한 봄이 끝나는 것 같아 아쉬웠지만 어느새 다음 계절에 대한 기대가 자리한다. 그리고 나는 5월이 되면 저녁마다 2층 베란다에서 매일같이 바다를 보기 시작한다.
하루하루 들여다보던 밤바다에 갑자기 이렇게 불이 켜지면 ‘아하, 때가 되었구나.’ 반가운 마음이 든다.
처음 이 풍경을 보았을 땐 바다 쪽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줄 알고 깜짝 놀랐었다. 며칠 동안 바다 쪽을 볼 때마다 계속 환하기에 이웃분께 여쭤봤었는데 한치를 잡으러 나온 '한치잡이 배'의 불빛이라고 하셨다.
한치는 여름이 제철인 생물로, 살오징어목 오징엇과에 속하며 오징어보다 몸통은 길고 다리는 훨씬 짧은 연체동물이다. 불빛을 쫓아오는 한치의 특성 덕분에 제주의 여름 밤바다는 반짝이는 낭만으로 가득하다. 가을에는 갈치잡이 배의 불빛이 이어져 반짝이다가 겨울이 다가오면 다시 깜깜한 바다가 된다.
5월 중순이면 켜지는 제주 밤바다의 불빛.
이제 여름이 오는구나.
“엄마 한치잡이 배 불빛 보여주세요”
일몰 무렵은 풍경은 더 환상적이다.
노을은 노을대로 아름답고, 수평선을 따라 늘어선 한치잡이 배들에 한 척, 두 척 불이 켜지기 시작하는데 완전히 깜깜한 하늘이 될 무렵엔 수평선에 불빛이 빼곡해진다.
한치잡이 배 불빛이 예뻐서 자꾸만 저녁 산책을 나가게 된다. 반짝이는 수평선이 예뻐서 자꾸만 담게 되는 사진들.
제주에 사는 동안은 5월이 되면 기대감을 안고 매일같이 밤바다를 바라보게 될 것 같다.
반짝, 불이 켜졌다. 여름이 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