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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만의제주 Oct 25. 2022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 제주

억새와 귤.

  어느덧 우리 집 마당의 감나무에 열린 초록 감이 주황색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바닷물은 차가워지고, 아이를 등 하원 시키는 길에서 언뜻언뜻 은빛 억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을. 육지에서는 가을 하면 단풍이 떠올랐지만 제주도에서는 일상 속에서 단풍을 만나기 어려웠다. 한라산 위쪽으로 올라가면 유명한 천아 계곡이 있다기에 가보았는데 주차부터 쉽지 않았고, 돌이 가득한 계곡이라 아이들과 가기엔 좀 위험해 보였다. 육지만큼 흔하게 단풍을 만날 수는 없어서 그 점은 정말 아쉬웠다.


  단풍이 없어도 제주의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억새와 귤"에 있다.

어음리 억새군락지

  애월의 새별오름과 어음리 억새 군락지는 제주 가을의 대표 명소이다. 특히 일몰 무렵 햇빛에 반짝이며 바람에 일렁이는 은빛 억새의 물결은 정말 장관이다. 하원한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잠시 놀다가 일몰 무렵 억새 명소에 가면,

이렇게 키보다 큰 억새 사이를 누비며 숨바꼭질도 하고, 자연스럽게 가을 정취를 온몸으로 느끼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할 수 있었다.


  처음 제주도에 왔을 때는 이 풀들이 갈대인 줄 알았다. 30대 중반이 되도록 억새를 본 적이 없었고, 억새라는 이름조차 낯설어서 계속 갈대라고 불렀었다. 남편이 알려주었는데, 갈대는 냇가와 강가같이 습한 곳에서 자라나는 갈색 풀이라고 했고, 억새는 산과 들에서 자라는 은빛 풀이라고 했다.

어음리 억새군락지. 좀더 높은 고도에도 주차장이 있어 내려다보았다.

여름에 일몰 무렵 바다에 간다면, 가을에는 일몰 무렵 억새 명소에 가는 것이 일상인 나날들.

아이들은 풍경을 감상하기보다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나중에 자라면 내가 담아놓은 풍경과 너희들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겠지.' 싶었다.


그리고 노랗게 익어가는 귤들이 가을 제주의 풍경을 더욱 싱그럽게 했다.

귤나무 하나에 정말 많은 귤이 열린다.

제주살이를 하며 처음으로 제대로 귤나무를 볼 수 있었는데, 내 키만큼 자그마한 나무에 엄청나게 많은 귤이 주렁주렁 열려서 바닥까지 닿아있었다. 그리고 정말 귤밭이 많았고, 일상 풍경 곳곳에 숨어있었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옆에도 귤밭, 우리 집 뒤에도 귤밭, 우리가 좋아하는 카페에도 귤밭. 정말 귤밭 천지였다.


귤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고 나자 다음 해에 그 나무에 하얀 꽃이 피어서 귤꽃의 생김새를 알게 되었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 작고 동그란 초록색 귤이 열려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모습이 정말 신기하고 귀여웠다. 그리고 노랗게 익어갔다.

귤따기 체험

그래서 가을 제주에는 귤 따기 체험을 하는 곳이 참 많다. 귤나무의 키가 생각보다 작아서 아이들 눈높이에서 귤을 볼 수 있었고, 가위에 대해 간단히 교육받고 나면 쉽게 쉽게 귤을 딸 수 있었다.

이 귤은 내가 땄다.


나는 제주의 가을이 제일 좋다.

화려한 봄보다 가을이 좋은 이유는 조급하지 않아서인데,

봄꽃은 금세 피었다 지기 때문에 (특히 벚꽃)

벚꽃과 유채꽃의 개화시기를 맞춰서

하늘이 맑고 날씨 좋을 때 맞춰 다니려면 마음이 바쁘다.


가을은 편안하다.

억새도 귤도 오래간다.

편안하게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가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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