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뛰놀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 종종 태풍도 온다.
제주살이를 시작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계절은 "여름"이다. 바다 물놀이를 맘껏 할 수 있는 여름!
와아... 그런데 여름 햇볕이 정말 타는 듯 뜨거웠다. 아이들도 너무 뜨겁다며 힘들어해서 우리는 낮엔 나갈 수 없었다. 늘 해 질 무렵 하늘에 구름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다 구름이 해를 가려주는 날이면 바다로 나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애월은 제주의 서쪽에 있어서 일몰과 노을을 보기 참 좋았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에 둥둥 떠있기도 하고 물장구도 치며 놀다가 모래사장으로 나와 모래를 파다 보면 게와 새우, 보말, 소라게도 만났다. 낮보다 덜 덥기 때문에 해질 무렵에 나온 것도 있지만 이 시간에 나오면 일몰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수평선에 걸려있던 해가 서서히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과 함께
"해님아~ 오늘도 고마웠어. 내일 또 만나"
인사하면 내 마음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 태양이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다음은 여름 밤바다가 빛날 차례다. 해는 지고 있지만 바다 위 수평선에는 불빛이 하나하나 켜지기 시작한다. 한치잡이 배의 불빛이 반짝반짝 켜질 때마다 역시 또 일몰 무렵에 나오길 잘했다며 행복해했다.
늘 이렇게 평화로운 일상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람 많은 제주도". 특히 여름은 일기예보가 수시로 변할 만큼 날씨가 변화무쌍했다. 그래서 때마다 하늘을 보고 바람에 맞춰 일상을 살아갔다. 그렇게 살다 어느 날에는 꼭 무시무시한 "태풍"이 찾아왔다.
사실 제주도에서 살아보려고 마음먹었을 때 제일 무서웠던 것이 태풍이었다. 태풍이 바다에서 발생해 보통은 가장 먼저 제주를 거쳤기 때문에 중계방송으로 제주도를 지나는 태풍의 모습을 보며 "어머어머~~ 날아간다!!" 했던 기억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내가 처음 만났던 태풍은 2020년 8월 말에 상륙했던 태풍 "바비"였다. 유치원 버스가 다닐 수 없어 휴원했었고, 집 안에서 창밖을 보기만 하는데도 야자수가 뿌리째 뽑히는 줄 알았다. 바람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막상 태풍을 겪어보니, 언제나 태풍의 직격타를 맞는 곳이라 그런지 태풍이 오기 전 약속이라도 한 듯 미리 날아갈만한 것들을 밧줄로 잘 묶어두셨었고,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은 제주도민들이 모두 건물 안에서 대기하는 것 같았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익숙하다는 듯이 복구작업도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서 대처를 정말 잘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에는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많으시고, 특색 있는 푸드트럭을 운영하시는 분들, 자연과 어우러지게 야외 공간을 잘 꾸며 운영하시는 가게 사장님들도 많으시기 때문에 "날씨"가 매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특히 푸드트럭 사장님들 SNS 계정을 보면 강풍이 불면 닫으시기 때문에 주말에 날씨가 안 좋으면 내 마음이 괜히 아쉬웠다.
육지에 있을 땐, 확실히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날씨가 안 좋으면 건물에 들어가고, 지하철을 타면 되니까. 제주도에는 지하철이 없기 때문에, 태풍이 온다고 하면 문득문득 지하철이 생각난다.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 모두 함께 일시 정지되는 느낌의 제주도.
제주도민들이 모두 함께 같은 하늘 아래서 숨죽이고 있는 느낌이라 여름 제주를 보내면서 지역사회에 대한 애착이 더욱 커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