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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Nov 11. 2019

노동의 가치와 자부심

하찮게 생각하는 그 직업은 ‘대단할 수도’ 있는 직업이다.

‘승무원이요? 거, 쓰리디 업종인택시 기사 아저씨는 내가 승무원이란 말을 듣곤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랜만에 찾은 부산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친절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이 없었다. 기사님은 무거운 짐 가방을 번쩍 들어서 차에 실어 주시고, 내가 항상 자신 없는 스몰 톡(small talk)을 하셨다. 먼 중동 땅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는 게 신기하셨는지 이것저것 물으셨다. 엄마는 옆에서 내 말에 맞장구치면서 ‘아휴, 거기 승무원들은 대우가 좋아요, 언어가 돼야 거기서 일하지요!’라면서 딸 추켜 세우기 바쁘다. 그 후, 친절하신 기사님과의 대화는 한동안 잔잔하게 여운이 남았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 잊고 있었던 사람들의 시선을 다시금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저 하늘에서 '티, 커피' 서빙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시선은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다. 내가 승무원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오랜 독일 친구도 한마디 했다. 독일에서 승무원 일은 카페 알바처럼 대학생들이 잠깐 하는 직업이라더라. 학업 중간에 잠깐 돈 버는 정도라고. 유럽에서는 오히려 엄마 나이 때 정도의 아주머니들이 많이 한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라 의외였다. 하긴, 유럽에서 여러 서비스업종을 보면 나이가 젊든 지긋하든 함께 일하는 모습을 많이 봤으니까 영 틀린 말은 아닐 거다. 어쨌든, 외국에서도 한국에서 처럼 이 직업의 ‘명과 암’이 비슷하게 평가된다는 걸 느꼈다. 명이라 함은, 유니폼 입은 이쁘장한 여성. 암은 그 밖에 여러 방면으로 거론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사실 명도 암으로 평가되는 거 같다.)



나는 그런 배경 지식이 없었다. 일단, 비행기를 타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기에 승무원이란 직업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기내에서 때 되면 누가 밥을 주긴 했는데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나 가끔 창 밖에 보이는 하늘 아래 자연 풍경에 온통 정신이 쏠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창가 좌석을 선호했다. 지금은 복도 좌석이 최고지만 말이다. 때론, 모르는 게 약이라고. 사실 왜 사람들이 이 직업의 가치를 저평가하는지 와 닿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내 구글맵은 별표와 깃발이 전 세계에 분포돼 있다.




우선, 매 순간이 여행이다. 레이오버가 없어도, 어쨌든 나는 다른 나라의 다른 도시에 손님들과 함께 간다. 매달 한 번씩 나오는 비행 스케줄 표는 말 그대로 ‘세계 여행 일정’이다. 그 나라에 체류하는 시간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이국적인 문화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멀리 갈수록 그만큼 내 세계가 넓어져 가는 걸 느낀다. 어릴 때 주구장천 듣던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인재’에 가장 걸맞은 직업 아닌가?



민간 외교관이라는 자부심도 느낀다. 오글거리는 표현이지만, 사실 이 단어 말고 딱 떨어지는 표현은 없는 것 같다. 나는 회사 유니폼을 입고 일하며 회사를 대표한다. 혹은, 국적기의 이미지 때문에 그 나라를 대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 이름의 명찰을 단 대한민국 국적의 승무원이다. 내가 기내에서 서비스하는 모습이 인상적인지 간혹 여러 나라에서 온 손님들은 내 국적을 묻는다. 자신 있게 ‘코리안!’이라고 외치려면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자국민을 챙길 때 오는 보람도 크다. 암스테르담에서 자리 때문에 곤경에 처한(?) 한국인 모녀가 있었다. 그분들 바로 옆좌석의 외국인 손님한테서 심한 냄새가 났다. 2미터 정도 떨어진 복도에서 조차 맡을 수 있었기에, 차마 그분들을 그냥 앉아라 회유할 수도 없었다. 거의 만석인 상황이라, 그 상황을 슈퍼바이저한테 보고 했을 때도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그래도 같은 한국인이라는 거에 더 마음이 갔다. 나는 일단 승객의 입장을 백번 공감하고, 그만큼 악취가 심하다는 것과 그래도 완전히 만석은 아니기에 어떻게 자리를 마련할 수 없겠냐 대신 호소했다. 결국 지상직원이 와서 몇몇 승객들의 좌석을 재배치하고 그 두 모녀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나는 그분들이 행복해했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같은 한국 사람을 도왔다는 뿌듯함도 말이다.



다른 생각을 가지는 승무원들도 많다. 어쨌든 승무원의 주요 업무는 기내식을 준비하고 제공하는 ‘서버(server)’라는 거다. 비행 중 화장실 청결 유지도 담당한다. 바닥이나 변기에 튄 오물을 닦을 때도 있고, 정말 운 나쁘면 토사물로 막힌 세면대도 어느 정도 치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안전 업무야, 평소에는 승객 입장으로선 확인하기 힘드니 그 이외의 것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승무원 관련 기사 밑에 딸린 댓글창은 이런 것과 관련해서 이 직업을 깎아내리는 글도 종종 본다. 심지어 그렇게 생각하는 동료들도 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직업이 ‘영어도 유창해야 하고, 서비스 매너가 갖춰져 있어야 하고, 여러 문화권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을 요구한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름 글로벌 인재고, 고급 인력이다.



‘사’ 자 들어가야만 대단한 직업인가? 사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부터 장래 희망은 언제나 ‘사’ 자가 들어가는 직업이었다. 집에서도 늘 ‘공부, 공부’하는 소리를 듣고 학교에서는 시험 성적으로 줄 세워진 내 순위를 보며 울면서 공부했다. 성적 좋은 친구들이 알게 모르게 대우받는 모습을 보아 왔고, 일찍부터 공부에 뜻을 접고 기술을 배우려던 친구들은 뒤쳐진 인생이라 평가받는 모습도 봤다. 책상 앞에 앉아 일하는 게 성공한 인생이고, 몸 쓰는 일을 하는 건 실패한 인생이라는 편견은 어릴 때부터 뿌리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거다. 이게 시대에 걸맞지 않은 퇴화된 생각이란 건 2019년을 살아가는 모두가 보고 있지 않은가. 요즘 인기 장래희망이 유튜버라던가, 아이돌 스타라던가 그런 걸 보면 말이다. 



우리 이모는 요즘 산후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산모의 건강을 살피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일을 한다.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고, ‘말이 좋아 산후조리 사지’라며 이모는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옛날 말로는 그냥 식모지 뭐!’ 처음엔 남의 집에 가서 청소하고 뒷바라지해주는 게 창피했다고, 이모는 살짝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그러고, 이모는 이렇게 말했다. ‘근데, 해보니까 재밌어. 내가 제일 잘하는 게 집안일인데, 적성에 맞는 걸 찾은 거지.’ 평생 가정 주부였던 이모는 그래도 자기한테 일이 맞고, 용돈벌이로 쏠쏠하다고 행복해하셨다. 나는 그런 이모에게, 내가 부산에서 만났던 택시 기사 아저씨와 나눈 대화를 이야기해줬다. ‘여전히 승무원을 그냥 쓰리디 직업이라 생각하더라고요?’ 새로운 시대인 만큼, 직업에 대한 가치도 새롭게 평가돼야 하지 않을까.








가치를 인정하게 되면 자부심이 생기게 된다.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 직업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그렇기에, 2년 동안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유럽까지 가서 성취했다. 모두가 생각하는 ‘엄청나게 대단한 직업’은 아니지만, ‘대단할 수도 있는’ 직업이라 말하고 싶다. 적어도 나는,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며 영어로 지구인들과 대화하고, 때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앞장서는 잔다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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