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으로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

25. #선택 #경계 #건강한관계

by 로지



본 칼럼은 정서중심치료(Emotion-Focused Therapy)를 기반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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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so far




"내 말 좀 들어 봐 봐, 있잖아. 내가 한번 말해볼게"


"그럼 이건 어때? 이 얘기 들어도 그 생각엔 변함없어?"


"세상은 원래 그래, 그게 현실이야. 네 생각은 너무 이상적이야"





상대의 얘기는 잘 못 듣는, 듣지 않는 이런 사람은 정말 많이 존재한다. 아마 장담하건대 잦으면 오늘 하루, 혹은 이번 한 주, 혹은 이번 달에는 한 번쯤 만나봤을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조망이 힘들다. 잘되지 않는다. 즉, 다시 말해 본인이 어떤 모습이고, 상대에게 어떻게 여겨질지에 대해서 자각하지 못한다.




그 사람은 그랬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꺼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조금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니 그 안에 쌓여있던 세상과 사회에 대한 불만, 그리고 자기혐오적 표현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에는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것을 중심으로 듣기 시작했다. 그래서 초반까진 참으로 이해가 되고 공감이 많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그는 대화와 상관없는 자신만의 논리를 주야장천 쏟아내기 시작했다. 딱히 할 말이 없는 상대 입장에선 더욱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는 그 짧은 침묵조차 '자신의 논리에 대한 동의'로 받아들인 듯하다. 이후 어떤 주제가 나오듯 그는 자기중심적으로만 대화를 이어나가고, 상대방이 어떤 마음이나 생각에서 하는 건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그의 말투와 대화방식은 의도가 노골적이었다. 점점 노골적이게 되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상대방이 그의 의견이나 내용에 반하는 의견을 내거나 약간의 짜증이 나타나면 순식간에 꼬리를 내리거나, 대화 주제를 돌리곤 했다. 그냥 갑자기 사라지거나 침묵했다.


그의 가장 큰 구멍은, 정서적인 부분이 그러했다. 상대가 속상하고 억울하다는 의미의 얘기를 할 때는 "그래 그랬구나"라는 전혀 이해가 담기지 않은 기계 같은 반응을 했다. 그래서 상대가 듣기에 '이 사람은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구나'라고 알 수 있는 정도였다. 그 뒤에 그는 다시 자신이 설명하고 싶은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기 시작한다.




나는 원래 공감을 못하는 사람이야




정서에는, 감정에는, 공감에는 '논리'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설명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설명의 예시는 자신의 경험이나 자신의 논리를 보강하기 위한 매체가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그가 드는 예시는 실제 당사자가 그런 의도로 말하거나 만든 매체가 아니었음에도 그는 그 자체를 가져와서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절대적인 증거처럼 사용하곤 했다. 객관성은 무너진,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감정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는 그 부분에 있어서 어려워서 말이야." 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거기에는 노력해 보겠다는, 이해해 보겠다는 시도는 없었다. 그저 "어려운 건 질색이고, 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고, 나는 원래 공감을 못하는 사람이야"라는 자기 비난으로 맺어지곤 했다.




그렇기에 점점 더 그와 나누는 대화는 불편함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그가 이야기할 때는 딴청을 피우거나 딴생각을 경우가 점차 잦아졌다. 상대 입장에선 나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지 않는 사람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진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사람들에게 유독 이런 모습을 더 자주 보였는데, 아무래도 그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하던 대로 느끼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할 때마다 뭔가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고, 점점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반응하지 않거나 은근하게 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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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here and now





자기 자신을 수용하지 못하는


자신이 편한 방식만 선택해 온


공감은 받고 싶으나, 자신은 하기 어려운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모르는, 감정을 문제시하는 그들. 특히, 상대의 얘길 잘 못 듣고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태도 자체가 경직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뭔가 문제라고 느끼긴 하지만, 그에 대해서 더 이해해 볼 시도를 하지 않는다. 혹은 시도를 하더라도 쉽게 다시 좌절해 버리고 멀리해 버리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들과 대화를 해보면, 그들은 본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 정말 멋지고 반박할 여지가 없는 완벽한 무엇이라고 굳게 믿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결국 자신을 고립시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엄청난 취약함을 가져다준다. 그들에겐 "내가 맞아!", "나는 틀리지 않았어!!"라는 왜곡된 신념이 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틀리다는 증거나 의견 등은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회피한다. 이는 다시 악순환을 더욱 가속시킨다.



#부적응적 #부족 #문제 #고립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깊이 있는 정서적 교감을 맺기 어렵다. 상대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건 자신의 것은 한쪽으로 내려놓고 상대방의 입장이나 느낌에 집중하는 것이 기본이 된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 조차 너무 어렵고, 해본 적이 없으며, 가장 크게는 그런 경험을 받아본 적이 없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공감하고, 마음을 쓰고, 같이 머물러 본 경험이 현저히 부족한 경우가 많다.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그에 대한 믿음이나 기대는 더욱 없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인지적 능력(해석, 평가 등)에 권위를 두는 경향이 합쳐지면 더욱 끔찍한 혼종이 된다.



정서적으로 결핍된 부분을 해석이나 평가, 논리로 채우려는 시도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서적 결핍은 절대 생각으로 채울 수 없다. 그럴수록 더욱 공감하곤 멀어진다. 타인의 감정은 판단하고, 조언이나 지침을 주려고 하고, 자기 자신에게 과잉 초점화되어 매몰되어 버린다. 타인의 의견은 더욱 듣지 않게 되고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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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양상은, (주지화 intellectualization) 정서중심치료에서는 #정서차단 #Emotional #blocking #정서회피 #Avoidance 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서 차단: 느끼려는 정서가 올라오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이를 막아 감정에 닿지 못하게 하는 과정.

정서 회피: 고통스럽거나 불편한 정서를 애초에 마주하지 않기 위해 상황·행동·생각을 통해 피하는 전략.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서나, 이를 자극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 무시하거나 내버려 두는 대로 반응하거나, 거리를 두는 경우가 있다. 특히 그들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 경우나, 당장에 선을 긋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들의 행동에 서서히 질려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랬어. 너도 그렇게 하면 돼”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믿어버리는 강한 의지가 있다. 상대 이야기를 듣는 ‘척’ 하지만 금방 본인 얘기로 전환된다. 그들의 반응은 빠르지만, 깊이가 없다. 그래서 상대방 입장에서는 공감받지 못한 피로감이 누적된다.



그들 존재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반복하는 말이나 행동이 사람을 질리게 하기 때문에 짜증과 분노, 허탈감과 좌절감 등이 쌓여간다.



실제로 그들과 오래 관계를 맺거나, 배우자나 가족으로 지내는 경우를 보면, 상대방은 거기에 동조되어 있거나 이미 포기한 상태로 껍데기로만 남아있었다.






그들은 두렵다.



그들에겐 감정에 가까워지는 그 느낌이 불편하다. 본인의 감정은 물론 타인의 것에도 그렇다. 감정을 문제시하기 때문에, 감정을 폭발적으로 분출해서 없애려 하거나, 감정을 아예 끝까지 눌러서 잠가버린다. 이는 극단적인 양상으로 자주 나타나며, 중간이 없고 빨리 결과를 내려는 조급함으로 이어진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두렵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그 상황, 그 감정이 오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도 두렵고 공포스럽다.





그들은 외롭다.



그들에게 남은 관계는 정말 그들을 사랑해서 버티고 버텨서 너덜너덜 소진된 사람들이거나, 이미 질려서 거리를 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그에 대한 이유를 외부에서만 찾는다. 아니면 남아있는 관계는 피상적인 경우가 많다. 점점 더, 그들은 마음 놓고 자신의 속 마음을 공유하길 꺼려한다. 속 마음을 공유했다가 좌절하거나 거절당할 수 있다는 과도한 불신과 불안을 느낀다. 그러니 그들 입장에서도 관계의 깊이나 질이 만족스럽지 않고, 외롭다. 사람이 아닌 자신의 일이나 외부의 무엇으로 대체해서 채우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이는 더욱 그들을 정서적으로 고립시키게 된다.





그들은 취약하다.



그들은 특히 생각, 논리, 이성 등에 집착한다. 무언가를 말할 때 그들의 말은 90% 이상이 생각이다. 무엇에 대한 자신의 논리이다.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의도가 가득하다. 그래서 그들의 시도는 더욱 영향력이 없다. 상대를 설득하긴커녕, 더욱 방어적으로 만들고 거부감을 들게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때도 그 문제를 자신의 논리나 생각에서 찾는다. "그래 논리를 더욱 강화해야 해. 더 반박할 거리를 찾아서 제시해야 해. 그러면 동의할 거야. 내 뜻대로 따라줄 거야" 이는 그들이 얼마나 취약한 상태에 있는지는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는 구멍투성이고, 실제로 정확하거나 철저하지도 않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의 표현은 설득력이 없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논리가 아닌, 감정이다. 오히려 상대방에게는 자신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정작 당사자인 그들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된 부분에 집착하거나 몰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부정 #회피 #왜곡 #부적응





어느 누구도 미움을 사고 싶지 않다. 버림받고 싶지 않다. 이별하고 싶지 않다. 거절당하고 싶지 않다.

그들도 그렇다. 그들과 함께 하는 사람 역시 그렇다.



안정감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닌, 함께 빚어 가는 것이다.

한쪽이 자신의 존재를 불태우고 갉아 내리면서 다른 한쪽에게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안정감이 아니다. 자기 학대에 가까운 불안정이다. 그건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안정감 #외로움 #공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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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앞으로

from now




분명하고 단단한 경계가 필요하다

경계가 희미해지는 순간이 반복되면

그 틈은 괴로움으로 가득해질 것이다




나를 위한 중요한 선택: 경계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우선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들의 왜곡된 사고와 부적응적 행동에 분명한 경계를 지어야 한다. 그와 함께, 어떤 경계를 얼마나 둘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다. 실제로 상담에서도 이 같은 어려움이 누적되어 괴로움으로 전이된 사례가 자주 있는데, 이때 변화의 핵심은 본인의 의지와 자신의 취약함을 마주하겠다는 인정과 수용이다. 이 과정은 장기적으로 진행되곤 한다.




그러니, 그들과 일상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라면, 전문가(치료자)도 오래 걸리는 이 과정을 혼자서 애쓰고 자신을 갉아먹는데 써서는 안 된다. 당신에게 당신은 소중하고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마땅한 존재이다.


그들이 당신의 말을 잘라먹거나, 또 자신의 얘기로 대화를 이끌어가려고 하면, 적극 적으로 대항하지 않더라도 “그 말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당신 자신을 말하고 있는 거구나”라고 속으로 정리하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그들의 말을 계속 귀담아서 경청해선 안된다. 그들의 논리에는 답이 없다. 그저 그들이 원하는 반응을 상대가 보여주기 전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 들어주는 역할에 머물러 있지 않고, 대화의 흐름을 마무리 짓는 시도가 중요하다. 오히려 그들에게 반응하거나, 생각이나 의견을 내게 되면 그 대화는 더 이상 건강하지 않다. 오히려 매우 해로워진다.




그들에게 감정 표현이 묵살될 경우, 그 관계에서 당신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도 건강한 전략이다. 그들은 상대의 감정은 물론, 자신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한다. 어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감정적 반응이나 표현을 하는 시도는 줄여가야 한다. 내 감정이 무시당할 수 있는 공간에 오래 머물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한다.




당신은 치료자가 아니다.




그들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닌, 나를 위한 경계와 선택이 중요하다. 그 선택은 절대 쉽지 않다. 절대 마음이 편할 거라고 말하지 않겠다. 때론 씁쓸하기도, 서글프기도, 억울하기도, 사무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건강한 관계를 맺는 중요한 선택이다.




당신은 그들의 치료자가 아니다.




당신이 그들을 애정하고 아끼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기 자신을 애정해 주길 바란다. 그들을 향하는 당신의 애정이 별거 아니라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당신의 마음은 그 누구의 것보다 당신에게 소중하다. 최소한 그 마음에 존중을 다해주길 바란다.




그들에게 안정감이 중요한 만큼, 당신에게도 관계에서 경험하는 존중과 이해가 중요하다. 그들의 반복되는 존중 없는, 무례한, 이기적인 말과 행동에 기대를 거두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자기 돌봄이다. "나만 계속 노력하고 양보하는, 인내하는 관계인가?"라고 물어보자. 이는 당신이 관계에서 균형을, 경계를 짓는 중요한 순간이다.



정서적 소통이 불가능한 관계라면, 나를 위해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담대한 결심과 선택이다. 그것이 지금의 관계와 이후의 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맺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자기 돌봄, 자기 존중감 등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닌, 내가 얼마나 나의 감정, 마음, 생각을 존중하는 경험이 누적되어왔느냐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타인에게 존중을 받을 것이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누군가를 돌봐줄 수 있다. 그것이 건강한 관계이다.



#자기돌봄 #자기존중감 #책임

#경계 #결심 #선택





로지 상담심리사, 심리학 박사 ㅣ Semicolon 심리상담센터

https://linktr.ee/semicoloncoun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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