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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의 작품관에 라파즈가 영향을 미쳤다니

6년 만에 다시 돌아온 볼리비아

by 남미가 좋아서

쿠바 아바나의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 바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자주 찾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곳에서 다이키리를 즐기며 문학적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그 흔적을 좇아 바를 찾는다. 2019년 휴가로 쿠바에 여행을 다녀왔던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마치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의 호흡을 느끼듯, 낡은 바의 분위기와 오래된 사진 속에서 헤밍웨이의 그림자를 마주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라파스에도 그런 작가가 있었다. 바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외교관이었던 로맹 가리(Romain Gary)다. 그는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자유 프랑스 정부를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볼리비아에 파견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고, 망명 정부는 런던에서 저항의 불씨를 지피고 있었다. 이때 프랑스 청년 로맹 가리는 ‘자유 프랑스군(Forces françaises libres)’에 자원 입대한 채로 외교관으로 활동한다. 로맹 가리는 망명 프랑스 정부(자유 프랑스)의 외교적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중남미 여러 국가와 교류하며, 라파스 주재 프랑스 외교관으로서 볼리비아 정부와의 관계를 조율하는 역할도 맡았다.

당시 볼리비아는 격동의 시기였다. 그해 12월, Gualberto Villarroel(과알베르토 비야로엘) 소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대통령이 된다. 그의 정권은 민족주의적 색채와 사회개혁적 언어를 내세우며, 당시 미국의 눈에 "잠재적으로 파시즘과 유사한" 정부로 비춰졌다. 실제로 비야로엘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승리를 지지하긴 했지만, 미국은 초기에 그 정권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러한 불안정한 정치 상황 속에서, 당시 라파스는 안데스 고산도시의 고요함 이면에 정치적 음모와 긴장이 응축된 공간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이면을 깊이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 그가 집필한 『별을 먹는 사람들』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고지대의 남미 국가, 원주민 출신의 부패한 독재 권력, 미국의 영향력, 환각 속에서 코카 잎과 유사한 물질(별)을 씹는 사람들은 이 시절의 경험이 투영된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코카 잎은 단지 물질이 아니라 하나의 신화였고, 코카잎은 이 땅에서 수천 년 간 살아온 이들의 삶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것이 자본과 권력의 논리로 들어오는 순간, 이 지역은 언제나 침묵당했고, 희화화되었으며, 끝내 착취당했다. 가리는 이런 부조리를 조용한 분노로 기록했고, 나는 그 목소리를 라파스의 산등성이 골목에서 다시 듣는다.


많은 독자들이 로맹 가리의 라틴아메리카 작품을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기억하지만, 나는 오히려 『별을 먹는 사람들』이 그의 가장 내밀한 고백처럼 느껴진다. 코카 잎을 둘러싼 정치 문제와 원주민 출신의 권력자,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는 내가 라파스에 머물면서 목도하고 있는 풍경들이다. 나는 문득 로맹 가리의 라파즈 경험들을 추적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헤밍웨이의 엘 플로디리타 같은 칵테일 바는 없지만, 그가 걸었을 지도 모를 거리, 눈으로 따라갔을 산맥, 어쩌면 매일 지나쳤을 무명의 벽돌집들은 지금도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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