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순이가 보인다

아버지의 커리어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단연코 떠오른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리고 할머니다.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 애순이가 나오는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마자, 바로 아버지에게 카톡을 보냈다. “할머니 댁에 가서 같이 폭싹 속았수다를 보세요! 아빠랑 할머니가 엄청 공감하실 것 같아요.”라고.


할머니는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셨다. 전쟁통에 부산에서 상경해 공부하셨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엘리트셨을 것이다.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셨고, 이후에는 할아버지와 결혼하면서 커리어를 이어가진 않으셨다. 하지만 무용, 서예, 가곡 등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셨고, 시도 꾸준히 읽으셨다. 가끔은 본인이 끝내 예술가로 등단하지 못한 현실을 한탄하시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마도 그 유전자를 물려받으신 것 같다. 할머니는 종종 아버지의 초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하신다. 점잖게 책을 많이 읽어서 선생님들이 “영국 신사”라고 부르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점잖았던 아버지는 대학에 가셔서는, 그 감수성에 청승맞음을 한 스푼 더 얹으셨다. 한양대에 다니셨지만, 술에 취하면 연세대까지 걸어가 윤동주 시비 앞에서 소주를 마시며 시를 읽었다고 한다. 시를 읽고, 또 쓰셨다.


(아버지의 청승맞음을 이야기하니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타임라인이 맞다면, 아버지는 그 시절 연세대에 다니던 초등학교 동창인 문학 청년을 연모하기도 했다고 한다. 술을 마시고 전화를 걸며 진상을 부리기도 했다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고 조언해주는, 여성주의를 대표하는 거장 소설가가 되신 분이다.)


이렇게 감수성 넘치셨던 아버지가 대학 시절부터 써온 시들은 우리 집 피아노방 책장 한 켠에 책자 형태로 꽂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피아노방은 참 귀중한 공간이었다. 어머니의 악보집도, 아버지의 시집도 그 방에 나란히 꽂혀 있었으니까.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들이 그냥 누렇게 변해가는 종이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아마 지금도 그 집에 살고 있었더라면, 그 피아노방이 남아 있었더라면, 나는 매일 드나들며 그 보물들을 꺼내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 집에 살지 않는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가족은 큰 풍파를 겪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집은 더 좁아졌다. 피아노방도 사라졌다. 생필품이 아닌 것들은 모두 버려지거나, 팔리거나, 맡겨졌다. 당연히 시집은 ‘사치재’로 분류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언제나 어떤 재능이든 열정을 더하면 직업 활동으로 승화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재능이 늘 안타까웠다. 아버지는 결국 시인이 되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할아버지를 따라 PD 시험을 준비하셨지만, 끝까지 도전하시진 않은 듯하다. 여러 언론사 시험을 동시에 준비하셨고, 그중 하나였던 미디어 경영직에 일찍 합격해 직장 생활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어떤 이유에서인지 회사를 그만두셨다. 이후로는 아버지의 재능과는 관계없는 일들을 이어오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다시 시를 쓰셨으면 했다. 작년에 번역서 출간을 경험하면서, 책을 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시를 다시 써보라고 권유드렸다. 아버지가 읽고 싶다고 하셨던 시집 『날개 환상통』도 사드렸다. 실제로 한동안 시를 쓰셨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아버지에게 부족했던 건 ‘열정’이었다. 몇 편 써놓으시고는 감감무소식이 되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의 보완적 관계에 늘 관심이 많다. 어떤 개인이든, 다른 사람보다 두드러지는 고유한 강점이 있다고 믿는다. 각자의 비교우위를 극대화해 협력한다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 이는 경제학의 리카르도 비교우위론과도 맞닿아 있다.


가족에 대한 글을 쓰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콘텐츠는 부족하지만, 일단 마음을 먹으면 무엇이든 해내시는 분이다. 대인관계를 탐구해보니, 강한 실행력과 조직력을 지니고 계시다. 반면 아버지는 콘텐츠는 풍부하지만, 열정이나 추진력이 다소 부족하신 편이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아버지의 시집 출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주도하신다면 어떨까? 두 분이 각자의 강점을 살려 함께한다면, 분명 멋진 결과가 나올 것이다.


얼마 전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삶과 가치관을 다룬 다큐멘터리 ‘자연과 영혼’을 보았다. 놀랍게도 그가 30대 후반까지 만든 애니메이션과 만화는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수차례 좌절 끝에, 40대에 발표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그의 첫 성공작이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생각했다. 아버지라고 못하실 이유가 뭐가 있을까. 이제 은퇴 나이도 되셨고 시간도 여유도 있으시다. 언젠가 아버지도 애순이처럼, 시와 관련된 일을 시작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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