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ya Oct 22. 2023

사소해

뭐.. 그치만 사소한 일이잖아


고등학교 친구가 차를 뽑았다.

요새 자동차 참 잘 나온다. 용인에 사는 친구는 가끔 고향 울산으로 차를 몰고 오는데, 크루즈 컨트롤이면 조금 과장해서 잠도 자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도 한 5년 전에 차를 뽑았다 (뽑아졌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그때는 운전이 익숙지 않았다. 깜빡거리는 빨간색 신호등에 멈춰있다 뒷 차의 경적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경적은 사소한 일이다. 근데 괜히 가슴에 은은하게 머물다 떠난다. 큰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하지 않나. 오랜 여자친구였던 분은 유독 커다란 소리에 겁을 냈다. 일종의 생존 본능이랄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맹수들의 울부짖음과 포효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본능에 충실한 인간들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큰 소리에 반응하는 것과 그 여운이 머물다 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발생적이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가 경적을 누른 뒤에는 표정이 한동안 굳어있었다. 잔뜩 미간에 힘을 주고는 아.. 씨 같은 마찰음을 뱉어냈다. 내가 누른 경적은 내면의 화를 외부로 표출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소리는 내부의 매질을 뒤흔들며 내 귀로 들어왔다. 그렇게 내면의 화는 소리를 통해 한 번 더 증명되었다.



 친구 차를 얻어 타고는 '더현대 서울'로 향했다. 직진 신호와 좌회전 신호가 함께 있는 구간이 있었다. 우린 빨간 불에 멈춰 서야 했는데 뒤차가 경적을 울렸다. 경적소리에 짜증이 묻어난다. 신호도 틀린 게 아녔는데. 기분이 확 나쁘다.


사소해.


친구의 사소하단 말에는 쾌감이 묻어난다. 더 이어질 생각의 꼬리를 단숨에 잘라내는 정글의 마체테 같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반응을 '침습적 사고'로 표현한다. 신호가 맞지 않았나? 우린 직진 아니었나? 빨간 불이 깜빡거렸나? 저렇게 까지 짜증 낼 일인가? 등의 애꿎은 혼잣말들이다. 어쨌든 그것은 말 한마디에 사라졌다. 나는 그 '사소해'라는 말에 만족을 느낀다. 도로 위 대부분의 사건은 사소하다. 앞차가 조금 느리게 가거나, 네비가 잘못된 길을 가르치거나, 빠져야 할 길을 놓치거나, 신호에 매번 걸리는 일들이다.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 난 그런 거에 궁상맞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후회할 시간이 없단 말. "사소해"로 퉁치기로 했다. 혼잣말처럼 들리지는 않고, 살짝 말 끝을 올리며 하는 말. 그렇다고 질문은 아닌데 설명하기 참 어렵다. 굳이 풀어쓰자면, "뭐.. 그치만 사소한 일이잖아?" 정도의 표현.


여의도 한복판에 더 이상 맹수는 없다는 사실. 

그 친구는 잘 알고 있었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mueh와 알파 웨이먼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