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눈에 비친 엄마의 모순

초보엄마는 웁니다.

by 이슬기
아기의 눈에 비친 엄마의 모순.png


불안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아기를 낳고 가장 많이 한 다짐은 *“내 불안을 아기에게 전하지 말자”*였다.

아기는 직감적으로 엄마의 불안을 안다고 했다. 오랜 시간 불안과 함께 살아온 나는, 그 아픔을 아기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명상과 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그러나 그런 노력과는 별개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

수유, 트림, 기저귀, 울음, 잠… 짧은 간격으로 이어지는 신생아 시기는 끝없는 반복이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생체리듬은 무너졌고, 시공간의 감각은 흐려졌다. 그때는 거창한 고민보다, 하루를 버텨내는 생존의 고민과 작은 생명에 대한 불안이 더 컸다.


나는 늘 불안에 휩싸여 둥둥 떠다니듯 하루를 보냈다.




아기를 바라본다는 것


아기가 점점 자라 깨어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새로운 고민들이 몰려왔다.

아기와 무엇을 하며 놀아줄까, 낮잠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루의 대부분은 검색과 정보에 매달려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자는 아기를 보며 생각이 스쳤다.

“벌써 이렇게 자랐구나. 나는 아기 자체보다 ‘잘 키우는 기준’에만 집착했던 건 아닐까?”

그 순간 깨달았다. 지금 봐야 할 건 ‘육아의 기준’이 아니라, 바로 내 앞의 ‘아기’라는 것을.


그때부터 나는 아기의 눈빛과 몸짓을 더 깊이 바라보려 했다. 아기가 보내는 메시지를 읽으려 애썼다.




모순을 마주하는 시간


아기는 무사히 첫 번째 생일을 지나 작은 첫발을 내디뎠다.

여전히 아기의 세상은 엄마였고, 많은 것을 나를 따라 했다. 하지만 가끔은 혼자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옹알옹알 나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어느 날, 아기가 주방 서랍 속 도구들을 하나씩 꺼내 거실로 옮겼다. 걷기 연습처럼 반복하며 혼자 신나게 놀았다. 나는 호응해 주고 응원했다.


며칠 뒤, 급하게 외출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옷 입을 시간도 빠듯한데 아기가 또 도구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순간 짜증이 치밀어 *“안 돼, 그거 꺼내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고 말았다. 아기는 동작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아직 말을 못하는 아기는 “지난번에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왜 안 된다고 하는 거야?” 하는 눈빛이었다.


그 순간 너무 미안했다. 일관적이지 않은 내 모습을 마주하니 당황스러웠다. 아기에게 얼른 사과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의 하루는 깨달음의 조각


아기와 함께하는 하루는 이렇게 나의 모순과 후회를 드러낸다.


“내가 왜 그랬을까” 돌아보며 반성하고, 또 깨닫는다.


결국 엄마의 하루는,

수많은 깨달음의 순간이 모여 쌓여가는 시간이 아닐까.



이 이야기는 아기를 낳고 16개월 동안 내가 마주한 깨달음 중 작은 일부이다.
작가의 이전글엄마의 시간을 건너는 중